2010. 1. 13. 15:10ㆍ파놉틱 평화 읽기
김근태와 이근안, 유대인과 아이히만
* 사진 한겨레신문 2009년 1월 4일
김근태 전 의원을 고문했던 이근안 목사(?)의 최근 인터뷰가 논란이다.
“나는 고문 기술자가 아니다.”
“왜곡된 언론보도에 따른 내 누명이 재평가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나라를 위해 온갖 어려움을 겪으면서 열심히 간첩을 잡은 대공수사관이 죄인취급을 받고 있다.”
“오늘의 잣대로 과거를 평가해서는 안 된다.”
“4반세기전 안보상황에서 당시의 수사 기준이 있었다.…당시에도 검사 판사 다 있었는데, 당시 (내가 조사한 공안사범들에 대해) 이제 와서 뒤집어 무죄라고 한다.”
“애국 일념으로 밤새가면서 사건처리 했는데, 이제 내가 죄인이 되었다.”
이근안의 인터뷰 내용은 공포이며 MB 정부시대의 산물
* 한국일보 2005월 10월 10일
이근안의 인터뷰는 ‘공포’다. 그리고 MB 정부 시대가 만들어낸 깡패 근성의 발로다. 고문을 했지만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그것은 나의 잘못이 아니다. 당시의 기준에서 지시한 사항을 단지 이행했을 뿐이다. 따라서 누구도 나를 단죄할 수 없다는 논리다.
그래서 그는 당당하게 “나라를 위해 온갖 어려움을 겪으면서 열심히 간첩을 잡은 대공수사관이 죄인취급을 받고 있다”고 항변하는 것이다. 어느 순간 김근태 전의원은 간첩으로 둔갑해버렸다. 김근태 전의원이 간첩이었던가. 김근태란 이름은 1980년대 민주화운동의 상징이다. 범죄자 이근안은 민주화운동을 간첩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간첩이란 죄명 하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고, 차가운 감방에서 그 많은 시간을 보내야만 했는지 우리는 알고 있다.
광주민주화운동이 당시에는 북한의 사주를 받은 간첩들의 소행으로 간주되었다. 그리고 무고한 시민들이 죽어갔다. 이제야 무죄로 판명된 인혁당 사건은 대한민국 과거의 암울한 현실을 너무나 극명하게 드러낸 준 것이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사형판결이 난지 18시간 만에 8인의 무고한 시민들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대한민국의 현대사는 피로 얼룩진 고통의 시간이었다. 국가보안법이란 칼로 무고한 시민들을 죽이고 가두었던 시간이었다.
발전이란 허상 앞에, 반공이란 국시 앞에 모든 것은 희생의 대상이었다. 그 역사를 바로잡기 위한 10여년의 노력이 조금씩 허물어져가고 있다. MB 정부 시대에 촛불을 들고 있으면 집시법 위반이고, 노동조합이 파업을 하면 무조건 불법이고, 최소한의 주거권을 주장하면 ‘도시 게릴라’로 규정되고 있다. 용산참사 희생자들의 장례를 지내기 위해 꼬박 1년을 기다려야만 했다. 먹는 문제를 제기하기 위해 촛불을 들면, 살 공간을 위해 망루에 오르면 그 순간이 불법이다. 가장 기본적인 의식주 문제를 제기하면 그것은 불법이 되는 시대. 그런 시대이기 때문에 이근안 같은 인간이 그 거룩한 이름인 ‘목사’라는 명함을 지니고도 이런 말들을 내뱉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시계를 과거로 되돌리려는 음모들, 대한민국을 보수의 천국으로 만들려는 음모들이 전개되고 있다. 그것도 숨어서가 아니라 공개적으로 드러내 놓고 뱉어내고 있다. MB 정부시대의 자화상이다.
이근안은 나치 친위대 중령이었던 아이히만의 다른 얼굴
* 베를린 유대인박물관의 조형물이다. 이 조형물은 죽임을 당한 유대인들의 얼굴을 형상화한 것이다. 이 위를 걸으면 몸은 중심을 잡기 힘들다. 듣기 거북한 쇠소리가 난다. 그들의 죽음을 몸으로 체험해보자는 의도라고 생각된다.
고문당한 피해자가 있고 고문을 가한 당사자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근안은 “애국 일념으로 밤새가면서 사건처리 했는데, 이제 내가 죄인이 되었다”고 분개하고 있다. 이제 고문행위도 애국일념으로 돌변하게 되었다. 고문을 가한 행위는 애국 일념이기 때문에 죄인취급을 해서는 안 된다는 황당한 논리다. 아니 이것은 황당한 논리가 아니라 공포 그 자체다. MB 시대에는 이런 공포들이 요동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그 광폭한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학살자들 모두가 죄인으로 단죄되지 않았지만 역사청산과 미래를 위해 많은 가해자들이 법의 심판을 받았다. 그것이 현재와 같은 유럽연합이 만들어진 배경이 되었다. 과거의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지 못하면 미래는 암울한 공포 그 자체다.
이 순간 나치 독일 군인 출신인 아이히만의 괴변이 떠오른다. 나치 독일 당시 친위대 중령으로 유대인 학살을 지휘했던 아이히만은 남미로 망명을 했다가 이스라엘 정보부에게 체포되어 예루살렘에서 사형선고를 받았다. 문제는 이 재판과정에서 전개된 아이히만과 그 변호사들의 대표가 뱉어낸 말들이다.
“아이히만은 자신의 동기는 오직 일을 잘 처리하려는 것 - 즉, 상관들이 만족하게끔 하려는 것 - 뿐이었음을 법정에서 피력하려 했다, 그의 동기는 자기 행동의 대상들의 갖는 본질이나 운명과는 전혀 무관했다. 말하자면 아이히만 개인으로서는 유대인에게 악의가 전혀 없었다는 것이며 - 그와 그의 변호사는 그가 아무런 악의도, 증오도 갖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 상황 자체가 악의와 증오의 구현일 수밖에 없었지만 - 그 개인으로서는 집단학살은커녕 한 건의 살인조차 지켜볼 만한 배짱도 없다는 것이다. 달리 말해서, 아이히만과 그의 변호사는 6백만 명의 죽음이 단지 자기 책임을 다 하려는 과정에서 빚어진 부수적인 효과일 뿐이라고 밝혔다.…‘악의는 없었다’는 말인즉 슨, 최선의 효과를 노리고 자기 책임에 따라 행동할 때는, 즉 누군가의 의도, 조직 상급자의 의도를 대행할 때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말이다. 반대로 명령에 불복종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잘못’이다.” 지그문트 바우만 지음․함규진 옮김,『유동하는 공포』(서울: 산책자, 2009), pp. 104~105.
* 베를린 도시 중심부에 위치한 유대인 추모 조형물이다. 관모양을 하고 있고 모두 높이가 다르다. 유대인의 희생을 추모함과 동시에 사회의 다원성과 공존성을 모색하기 위한 의도이다.
* 무수한 유대인들의 나치에 의해 죽어갔다. 이 처참함의 기록과 기억은 다시는 되풀이 되지 말아야 한다는 경고일 것이다.
상부의 지시사항을 열심히 이행한, 그래서 상부가 지시한 대로 고문을 행한 것은 잘못이 아니다. 오히려 당시 상부의 지시를 따르지 않는 것이 잘못이다 라는 논리다. 그래서 지금의 인권 잣대로 과거를 들이대지 말라고 한다. 명예회복이 필요하다고 한다. 인권도 일종의 패션이고 유행인가보다. 어쩌면 MB 시대는 복고의 시대인가 보다.
도처에 도사리고 있는 제2의 이근안, 제3의 이근안
도처에 유동하는 공포들이 차 넘치려 하고 있다. 이근안만 이런 생각이겠는가. 과거로 복귀시키고 싶은 욕망의 공포 덩어리들이 어슬렁거리고 있다. 아마도 이근안 인터뷰는 이근안 개인이 아니라 그를 둘러싸고 있는 과거로 복귀하고자 하는 자들의 공동의 작품인지도 모른다.
권력의 의도와 다른 방향으로 가기만 하면 잡아 가둬 온갖 고문을 일삼는 행위들의 쾌감이 아직도 남아 있는 것 같다. 이 지긋지긋한 극우주의자들의 발상. 그 판도라의 상자를 열게 해서는 안 된다. 공포가 활개 치는 공간에서 인간은 존재할 수 없다. 숨어들어가야만 하고 숨을 편하게 쉴 수도 없다. 몸을 드러내서는 더더욱 안 된다. 공포라는 놈들이 언제 덮칠지 모르니 말이다.
작년 8월 한국사회 민주주의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하셨다. 의문의 교통사고로, 그리고 박정희정권과 신군부의 고문으로 절룩이며 민주주의를 외쳤던 김대중 전 대통령. 그의 죽음 앞에 한 시민의 댓글이 생각난다.
“당신이 절룩거림으로 우리가 바로 설 수 있었다고요. 그렇게 선 걸음으로 이제 당신이 간 길을 따라갑니다.”
다시는 절룩거림이 없는 세상을 갈구하는 모든 시민들의 염원이 현실로 되는 세상에 접어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어디선가 나타나는 공포의 발언들, 이근안의 발언들이 발목을 잡는다. 그것을 가능케 하는 MB 정부의 또 다른 공포가 사회를 휘감고 있다.
아이히만의 괴변이 나오지 못하는 세상, 이근안의 망언이 나오지 못하는 세상으로 조금씩 전진해야 한다. 그것은 평범한 사람들의 민주적 공동체로서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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