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스 커밍스 [미국 패권의 역사]

2012. 1. 16. 13:31Book

 

패권국가 미국, 태평양에서 태어났다

등록 : 20111216 21:05

 

브루스 커밍스 ‘서부개척사’
미, 아시아로 서진하며 부흥
대외정책, 유럽과 차별 여전
“일방·팽창주의 일관” 비판

 

» 이미지자료 서해문집 제공
미국 패권의 역사
브루스 커밍스 지음ㆍ박진빈 김동노 임종명 옮김/서해문집ㆍ4만5000원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지 8년 뒤인 1784년 2월 뉴욕 항구에서는 ‘중국 황후’라는 배가 중국 광둥으로 향했다. 독립 미국이 아시아를 상대로 한 첫 무역선이었다. 배에 실린 교역품은 의외로 산삼이었다. 당시 미 동부의 뉴잉글랜드 상인들은 미국인들에게 야생 풀뿌리에 불과했던 이 산삼을 중국에서 차와 도자기 등으로 바꿔와 1년 만에 3만달러나 되는 순익을 거뒀다. 미국이 멕시코와 전쟁을 해서 캘리포니아를 빼앗아 서부 확장이 완성된 1840년대, 중국은 이미 미국한테 영국·프랑스에 이은 제3위 수출국이었다.

 

 

미국이 아시아의 문을 두드린 첫 교역품이 산삼이었다는 것은 아시아와 미국의 관계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중국인들이 ‘고려인삼’이란 이름으로 조선에서 주로 구했던 산삼의 가치가 250년 전에 이미 미국 장사꾼들에 의해 간파됐지만, 지금도 미국에서는 여전히 산삼과 인삼이란 동양의 이색적 건강식품이 있다는 것을 아는 이조차 드물다. 미국의 치밀한 비즈니스 전문성을 보여주는 동시에 동아시아에 대한 미국의 무지와 편견은 여전하다는 의미다.

 

미국의 한국 현대사가인 브루스 커밍스 시카고대 석좌교수가 쓴 <미국 패권의 역사-바다에서 바다로>(원제 ‘바다에서 바다로의 지배-태평양의 부상과 미국의 패권)는 확장된 ‘미국의 서부개척사’이다. 책이 다루는 ‘서부’는 캘리포니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태평양을 넘어 동아시아까지 미친다. 커밍스는 지금의 미국과 미국의 패권은 미 대륙을 횡단해 태평양을 넘어 동아시아로 서진하면서 형성됐다고 진단한다.

 

책은 본질적으로 미국통사이다. 한국과 동아시아에 천착했던 진보적인 수정주의사가 커밍스가 미국사를 다룬 것은 뜻밖인데, 그의 논지를 보면 이해가 간다. 미국은 동부 연안 뉴잉글랜드에서 기원했으나, 패권국가 미국, 지금의 미국은 캘리포니아와 태평양에서 만들어졌다고 증명한다. 하지만 미국과 그 대외정책은 지금도 여전히 독립 당시 뉴잉글랜드 세력의 대서양주의에 지배되고 있다고 비판한다.

 

커밍스가 대서양주의 자체를 비판하는 것은 아니다. 대서양주의는 미국 내의 고립주의, 일방주의, 예외주의에 맞서는 국제주의, 법치주의, 유럽과의 동반자 관계를 말한다. 문제는 미국 주류세력들인 와스프(백인 영국계 개신교도)들이 대서양주의의 합리성을 미국의 동쪽으로만 투사하고, 서진 과정에서 적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동아시아까지 전개되는 미국의 서부 개척사와 태평양주의는 대서양주의의 국제주의에 대비되는 팽창주의였다고 비판한다.

 

캘리포니아는 커밍스가 논증하려는 미국 서부개척사와 미국 패권 형성의 주요 무대이다. 현재 미국의 세계 장악 수단인 군산복합체 보잉과 록히드마틴, 그리고 정보통신업체들인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 인텔, 구글 등이 모두 캘리포니아 등 서부에 있다. 그리고 그 이전 미국이 대량생산과 소비 혁명을 일으키며 세계 시장을 장악했던 냉장고와 세탁기 등 가전문화 및 자동차 문화, 급속한 도시화와 교외 주택가로 상징되는 중산층 혁명, 할리우드의 오락문화 등이 모두 캘리포니아가 발원지이다. 캘리포니아는 미국이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30%를 차지하는 원동력이다. 또 미국의 제조업이 쇠퇴했다고 하나 미국은 세계를 장악하는 핵심인 캘리포니아의 정보통신산업에 힘입어 여전히 전세계 제조업의 20%를 차지하고 있다.

 

이런 캘리포니아의 오늘은 아시아와의 결합으로 가능했다고 커밍스는 진단한다. 1846년 제임스 포크 11대 대통령이 멕시코의 선제공격을 교묘히 유도해 전쟁을 벌여 강탈한 캘리포니아의 개척사는 중국인 등 외국인 인력을 빼놓고는 성립될 수 없었다. 지금도 캘리포니아 정보통신업체의 창업자들과 핵심 개발인력들은 아시아계를 주축으로 한 외국계 인력이다.


캘리포니아는 또한 세계가 동경하는 아메리칸드림의 원형이다. 그러나 캘리포니아가 뿜어내는 역동성과 코즈모폴리터니즘은 결코 미국과 그 대외정책의 원천이 아니다. 미국은 여전히 동부 와스프에 기반을 둔 편향적 대서양주의와 서양 중심주의, 더 나아가 앵글로색슨 우위주의에 사로잡혀 있다고 커밍스는 비판한다.

 

그는 대서양주의를 부추겼던 냉전과 소련이 붕괴된 1990년대 이후 클린턴 정부 때부터 미국이 새로운 국제주의로서 아시아로 나아갈 것이라 생각했지만, 최악의 팽창주의 경향을 보인 아들 조지 부시가 출현했다고 개탄했다.

흥미롭게도 미국의 대외정책을 가장 신랄하게 비판해온 커밍스는 미국 패권 쇠퇴를 어림없는 소리라고 부인한다. 오히려 중국위협론을 자신이 팽창주의라고 비판해온 태평양주의의 일환이라고 일축한다. 그래서 “우리의 역사적 일방주의를 재고하고 아시아 지역을 쉽게 무력으로 대응하지 않고…평화과 상호이익의 정신으로 대하지 않으면 21세기에 우리는 세계평화를 지속적으로 파괴하는 결과를 맞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책은 미국의 서진 과정에서 벌어진 역사적 사건과 일화 등을 무궁무진하게 파헤쳐 보여준다. 그의 고담준론인 대서양주의와 태평양주의를 모른다고 해도, 이런 흥미진진한 사건과 일화만으로도 수백편의 영화 소재가 나올 법하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