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케우치 요시미의 <고뇌하는 일본> <내재하는 아시아>

2011. 11. 16. 12:35Book

 

 

중국의 틀로 사유한 일본의 ‘알맹이 없는 근대화’
[한겨레] 최원형 기자 기자블로그

등록 : 20111115 20:20

 

‘동아시아 담론 선구자’ 다케우치 요시미 선집 발간
중국문학 연구자이자 전후 대표 지식인 재조명
“일본 근대화, 중국과 달리 저항 없어 겉만 화려”
‘방법으로서의 아시아’ 주장, 현실 바꿀 담론 역할

 

» 1960년 일본에서 미-일 상호방위조약 개정을 반대하는 안보투쟁이 일어났을 때 한 강연회에서 강연을 펼치고 있는 다케우치 요시미의 모습. 다케우치는 마루야마 마사오와 함께 전후 일본 사상계를 대표하는 지식인으로 꼽힌다. 휴머니스트 제공
동양, 또는 ‘아시아’라는 실체는 과연 존재하는가? 서양과 대립하는 개념으로서 동양의 공통적이고 보편적인 내적 원리를 찾는 것은 오래됐지만 풀리지 않는 숙제였다. 아시아의 실체가 있다고 상정하는 것은 ‘동북아 허브국가론’ 등 지역 공동체로서 개별 국민국가 공통의 이해관계를 모아내는 데에는 당장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다. 그러나 심층적인 사유로 들어가면 풀리지 않는 어려움과 만나게 된다. 서양에 의해 강제적인 근대화의 길을 걸었다는 사실 말고는 ‘실체’로서 공유하고 있는 것을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서로 소통하고 있다고 여기는 지점도 어차피 서양에서 비롯된 ‘보편적 가치’에 기댄 것들일 뿐이다.

 

2000년대 들어 중국과 일본, 한국에서 마루야마 마사오와 더불어 일본 전후 사상계의 대표적 지식인으로 꼽히는 다케우치 요시미(1910~1977)가 재조명받기 시작한 것은 이 때문이다. 중국문학 연구자이자 평론가였던 다케우치는 아시아의 실체를 인정하는 대신 ‘방법으로서 아시아’를 제기했고, 이는 최근 아시아, 또는 동아시아 담론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고 있다고 평가받는다. 그는 민족주의와 근대주의를 비판하면서도 좌파의 비판담론에 동조하지 않아 좌우 양쪽에서 공격을 당하기도 했다.

최근 다케우치의 주요 논문들을 골라서 묶은 ‘다케우치 요시미 선집’(휴머니스트 펴냄)이 국내에서 처음 출간됐다. 이번 선집은 다케우치 사상의 전체적인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는 데에 의미가 있다. 특히 이번 출간은 내년 ‘쑨거 선집’ 출간으로 연결되는 기획이라는 점에서 눈여겨볼 만하다. 중국 사회과학원 연구원인 쑨거는 현재 가장 적극적으로 ‘동아시아’를 말하고 있는 중국의 대표적인 비판적 지식인이다. 미조구치 유조 도쿄대 명예교수와 함께 ‘중·일 지식인 회의’를 이끌기도 했던 그는, 특히 스승이었던 다케우치의 문제의식과 사유를 계승하고 있다고 평가받는다. 그가 쓴 <다케우치 요시미라는 물음>은 한·중·일 3국 모두에서 출간돼 다케우치 재조명의 계기가 됐다.

 

선집은 주로 일본 문제에 관한 발언을 묶은 <고뇌하는 일본>과 아시아에 관한 발언을 묶은 <내재하는 아시아> 두 권으로 이뤄져 있다. 중국 근대문학의 아버지로 꼽히는 루쉰에 천착했던 중국문학 연구자로서, 다케우치는 중국을 통해 일본을 비판하고 일본을 통해 중국을 사유했다. 다케우치의 사상 가운데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서양에 근대는 자기인식의 확장이지만, 동양의 근대는 유럽이 강제한 결과’라며 서양과 동양의 관계를 철저하게 비대칭적으로 파악했다는 점이다. 그는 “동양은 저항을 통해 자신을 근대화했고, (저항할수록 근대화된다는 측면에서) 패배는 저항의 결과였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그는 독특한 논의를 전개한다. “저항이 없는 경우에 패배는 일어나지 않고, 저항은 있어도 그 지속이 없을 경우 패배감은 자각되지 않는다.” 곧 ‘동양 대 서양’이라는 구도 속에서 동양의 일차적인 저항은 패배하기 마련이지만, 이미 패배한 노예가 되어 서양 속에 내재하게 된 자기 자신을 자각하고 자기 동일성을 거부하는 것은 서양의 근대화에 포섭되지 않은 ‘이차적 저항’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절망 속에서 “길이 없는 길을 가고자 했던” 루쉰의 저항적 문제의식과 맞닿는다.

 

다케우치가 볼 때 저항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었던 일본의 근대화는 겉만 번지르르했지 알맹이가 없는 근대화다. 그러나 중국은 일본보다 늦었지만 이차적 저항으로 자신의 근대를 개척했다고 본다. 그에게 일본과 중국의 비교는 단순히 사실을 따지는 수준의 작업이 아니라, ‘서양 대 일본’이라는 기존의 이항대립 구도에서 벗어나 중국이라는 새로운 좌표축을 가지고 일본의 근대를 따져묻는 철저한 자기비판 작업이다.

 

 
이런 자기비판 작업은 애초에 없는 아시아의 ‘실체’에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주체를 형성하기 위한 방법으로 아시아를 사유한다는 측면에서 ‘방법으로서의 아시아’ 논의로 이어진다. 그는 이를 통해 “서양을 다시 한번 동양으로 감싸 안아 거꾸로 서양을 이쪽에서 변화시키는 ‘문화적 되감기’”를 가능케 할 수 있다고 봤다. 옮긴이 윤여일 수유너머 연구원은 “철저한 자기 성찰을 통해 기존의 서구 중심주의뿐 아니라 사실상 이에 포획되어 있는 반대 논리들까지 극복하려 한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에 다케우치를 소개하는 데 앞장서 온 류준필 인하대 한국학연구소 교수는 “동아시아 담론이 정치·외교 공학적 수단으로 주로 활용되고 있는 지금, 다케우치의 사유는 현실을 변화시킬 수 있는 새로운 주체 형성에 이론적 기반을 제공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