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 가치의 재구성] (2) 북한 인권·3대 세습 입장
2012. 6. 28. 15:34ㆍdiscourse & issue
[진보 가치의 재구성]북한 문제 의도적 무시, 경직된 대북관이 진보정당 성장 막아
ㆍ(2) 북한 인권·3대 세습 입장
진보정당에서 북한 문제는 ‘뜨거운 감자’다. 내부적으론 해묵은 갈등의 축이고, 외부적으론 진보정당 저변을 넓히는 데 발목을 잡는 요인이었다.
통합진보당 새로나기 특별위원회는 최근 북한 인권, 3대 세습 문제를 비판하며 “명확한 입장을 표명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여기에는 대북 문제가 변화와 혁신의 상징이자, 대중적 진보정당으로 향하는 출발선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자주파는 북한 문제에 ‘말하지 않을 권리’를 주장하고 있어 치열한 노선 투쟁이 벌어질 개연성이 많다. 이 때문에 새로나기 특위의 제안이 강령 또는 당론으로 채택될지 장담하기 어렵다.
2000년 1월 민주노동당이 창당된 이후 북한 문제는 토론으로 다루기 어려운 주제였다. 자주파는 “북한의 눈으로 북한을 이해하자”는 ‘내재적 접근론’을 강조하며 북한 비판을 꺼렸다. 북한이 핵실험 등으로 한반도에 긴장을 고조시켜도 ‘유감’이라는 표현조차 쉽사리 쓰지 못했다. 오히려 ‘자위권적 조치’라는 옹호도 나왔다.
▲ 진보진영 내 해묵은 논쟁
보수 색깔론 공격 빌미도
▲ 새로나기 특위 비판 입장
내부 갈등의 ‘뜨거운 감자’
평등파를 중심으로 북한 비판 목소리가 제기되면 자주파는 이를 반박하며 심각한 갈등 상황으로 번졌다. 2010년 2월 평등파가 집단 탈당한 이후 민주노동당 내에서는 이견이 더욱 나오지 않았다. 민주주의 기본 원리가 적용되지 않는 북한 인권, 3대 세습 문제에는 침묵하거나 모호한 태도로 일관했다. 2010년 10월 북한 3대 세습에 우위영 당시 대변인이 “우리 국민들의 눈높이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지점이 있다고 해도 북한 문제는 북한이 결정할 문제라고 보는 것이 남북관계를 위해서도 바람직하다”고 논평한 것이 대표적이다. 여당의 북한인권법 제정 추진에는 “북한을 자극하는 일을 즉시 중단하라”(지난해 6월 이정희 전 대표)고 반발하면서도 북한 인권 현실에는 입을 닫았다.
자주파의 경직된 대북관은 지난해 진보대통합 과정에서도 드러났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간 통합 추진 과정에서 핵심 쟁점은 대북관이었다.
결과는 봉합이었다. 지난해 5월 협상단이 마련한 합의문에서 “6·15 정신에 따라 북의 체제를 인정하고 ‘북의 권력승계 문제는 국민 정서에서 이해하기 어려우며 비판적 입장을 밝혀야 한다’는 견해를 존중한다”고 한 것이다. 이 조항 이상으로 양보할 수 없는 민주노동당, 더 분명한 입장을 담을 경우 통합이 힘들 수 있다고 본 진보신당이 절충한 형식이다.
그러나 진보신당이 최종적으로 이를 포함한 합의문을 거부하면서 통합은 무산됐다. 이후 노회찬·심상정 의원 등 진보신당 탈당파와 국민참여당이 이런 대북 합의 내용에 동의하면서 현 통합진보당이 출범하게 됐다.
민주노동당·통합진보당의 북한 문제 ‘의도적 무시’는 진보정당의 성장을 저해하는 요인이 됐다. 자주파와 평등파, 당권파와 비주류가 북한 문제로 대립하는 진영 간 싸움이 됐고, 자주파·당권파의 패권주의적 당 운영 행태의 계기가 됐다. 북한 문제를 고리로 한 보수 세력의 이념 공세에 휘둘렸다. 19대 총선 비례대표 후보 부정경선 문제가 경기동부연합 등 당권파의 대북 인식 문제로 확전된 데는 보수·우익의 색깔 뒤집어씌우기도 있지만, 그동안 북한 문제에 무비판적으로 외면한 당권파에도 책임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제도권 정치에서 소수정당인 진보정당이 자체 주도력을 가지기 힘든 북한 등 민족 문제에 얽매이면서 진보적 가치·의제에는 전력을 기울이기 어려워진 측면도 있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최근 “민족 문제에서는 보수와 진보의 분명한 차이가 있지만 사회경제 정책에서는 이렇다 할 차이가 없이 애매했다”며 “진보세력이 사회의 갈등축을 잘못 설정하고 사회경제적 대안 형성에 실패했다”고 말했다.
당 새로나기 특위가 ‘혁신 보고서’에서 북한 인권과 3대 세습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한 것은 대중적 진보정당으로 가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봤기 때문이다. ‘혁신 보고서’는 북한 인권에 대해 “인권의 보편성에서 볼 때 매우 심각한 상황이며 북한의 특수성을 이유로 그 현실을 정당화할 수 없다”고 밝혔다. 3대 세습을 두고는 “일반적 민주주의 원칙에서 당연히 비판되어야 한다”고 했다. 보고서는 다만 “북한의 실질적 인권 개선을 위해선 평화 유지가 기본이고 북한 주민 지원이 우선”이라며 “(3대 세습 문제도) 북한 정권과 대화해야 할 정부와 정당이 공격적으로 비판에 앞장서는 것은 현명치 못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통합진보당의 대북 노선은 여전히 당내 갈등의 뇌관이다. 차기 대표가 당권파와 비주류 중 어느 쪽이 되더라도 대북 노선을 두고 예민한 대결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새로나기 특위 위원장인 박원석 의원은 “(당권파의) 대북관이 당 강령과 정강정책 수준을 넘어 경도돼 있다”고 했다. 그러나 당권파인 이의엽 전 정책위의장은 ‘혁신 보고서’에 대해 “당 강령 어디에도 북한을 추종한다고 돼 있지 않다”며 “북한을 비판하면 칭찬을 하지만 내재적 관점에서 보자고 하면 바로 종북이 된다”고 말했다. 북한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결론을 어떻게 맺을지가 통합진보당의 미래를 내다보는 가늠자가 될 수 있다.
김진우 기자 jwkim@kyunghyang.com
진보정당에서 북한 문제는 ‘뜨거운 감자’다. 내부적으론 해묵은 갈등의 축이고, 외부적으론 진보정당 저변을 넓히는 데 발목을 잡는 요인이었다.
통합진보당 새로나기 특별위원회는 최근 북한 인권, 3대 세습 문제를 비판하며 “명확한 입장을 표명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여기에는 대북 문제가 변화와 혁신의 상징이자, 대중적 진보정당으로 향하는 출발선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자주파는 북한 문제에 ‘말하지 않을 권리’를 주장하고 있어 치열한 노선 투쟁이 벌어질 개연성이 많다. 이 때문에 새로나기 특위의 제안이 강령 또는 당론으로 채택될지 장담하기 어렵다.
2000년 1월 민주노동당이 창당된 이후 북한 문제는 토론으로 다루기 어려운 주제였다. 자주파는 “북한의 눈으로 북한을 이해하자”는 ‘내재적 접근론’을 강조하며 북한 비판을 꺼렸다. 북한이 핵실험 등으로 한반도에 긴장을 고조시켜도 ‘유감’이라는 표현조차 쉽사리 쓰지 못했다. 오히려 ‘자위권적 조치’라는 옹호도 나왔다.

▲ 진보진영 내 해묵은 논쟁
보수 색깔론 공격 빌미도
▲ 새로나기 특위 비판 입장
내부 갈등의 ‘뜨거운 감자’
평등파를 중심으로 북한 비판 목소리가 제기되면 자주파는 이를 반박하며 심각한 갈등 상황으로 번졌다. 2010년 2월 평등파가 집단 탈당한 이후 민주노동당 내에서는 이견이 더욱 나오지 않았다. 민주주의 기본 원리가 적용되지 않는 북한 인권, 3대 세습 문제에는 침묵하거나 모호한 태도로 일관했다. 2010년 10월 북한 3대 세습에 우위영 당시 대변인이 “우리 국민들의 눈높이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지점이 있다고 해도 북한 문제는 북한이 결정할 문제라고 보는 것이 남북관계를 위해서도 바람직하다”고 논평한 것이 대표적이다. 여당의 북한인권법 제정 추진에는 “북한을 자극하는 일을 즉시 중단하라”(지난해 6월 이정희 전 대표)고 반발하면서도 북한 인권 현실에는 입을 닫았다.
자주파의 경직된 대북관은 지난해 진보대통합 과정에서도 드러났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간 통합 추진 과정에서 핵심 쟁점은 대북관이었다.
결과는 봉합이었다. 지난해 5월 협상단이 마련한 합의문에서 “6·15 정신에 따라 북의 체제를 인정하고 ‘북의 권력승계 문제는 국민 정서에서 이해하기 어려우며 비판적 입장을 밝혀야 한다’는 견해를 존중한다”고 한 것이다. 이 조항 이상으로 양보할 수 없는 민주노동당, 더 분명한 입장을 담을 경우 통합이 힘들 수 있다고 본 진보신당이 절충한 형식이다.
그러나 진보신당이 최종적으로 이를 포함한 합의문을 거부하면서 통합은 무산됐다. 이후 노회찬·심상정 의원 등 진보신당 탈당파와 국민참여당이 이런 대북 합의 내용에 동의하면서 현 통합진보당이 출범하게 됐다.
민주노동당·통합진보당의 북한 문제 ‘의도적 무시’는 진보정당의 성장을 저해하는 요인이 됐다. 자주파와 평등파, 당권파와 비주류가 북한 문제로 대립하는 진영 간 싸움이 됐고, 자주파·당권파의 패권주의적 당 운영 행태의 계기가 됐다. 북한 문제를 고리로 한 보수 세력의 이념 공세에 휘둘렸다. 19대 총선 비례대표 후보 부정경선 문제가 경기동부연합 등 당권파의 대북 인식 문제로 확전된 데는 보수·우익의 색깔 뒤집어씌우기도 있지만, 그동안 북한 문제에 무비판적으로 외면한 당권파에도 책임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제도권 정치에서 소수정당인 진보정당이 자체 주도력을 가지기 힘든 북한 등 민족 문제에 얽매이면서 진보적 가치·의제에는 전력을 기울이기 어려워진 측면도 있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최근 “민족 문제에서는 보수와 진보의 분명한 차이가 있지만 사회경제 정책에서는 이렇다 할 차이가 없이 애매했다”며 “진보세력이 사회의 갈등축을 잘못 설정하고 사회경제적 대안 형성에 실패했다”고 말했다.
당 새로나기 특위가 ‘혁신 보고서’에서 북한 인권과 3대 세습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한 것은 대중적 진보정당으로 가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봤기 때문이다. ‘혁신 보고서’는 북한 인권에 대해 “인권의 보편성에서 볼 때 매우 심각한 상황이며 북한의 특수성을 이유로 그 현실을 정당화할 수 없다”고 밝혔다. 3대 세습을 두고는 “일반적 민주주의 원칙에서 당연히 비판되어야 한다”고 했다. 보고서는 다만 “북한의 실질적 인권 개선을 위해선 평화 유지가 기본이고 북한 주민 지원이 우선”이라며 “(3대 세습 문제도) 북한 정권과 대화해야 할 정부와 정당이 공격적으로 비판에 앞장서는 것은 현명치 못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통합진보당의 대북 노선은 여전히 당내 갈등의 뇌관이다. 차기 대표가 당권파와 비주류 중 어느 쪽이 되더라도 대북 노선을 두고 예민한 대결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새로나기 특위 위원장인 박원석 의원은 “(당권파의) 대북관이 당 강령과 정강정책 수준을 넘어 경도돼 있다”고 했다. 그러나 당권파인 이의엽 전 정책위의장은 ‘혁신 보고서’에 대해 “당 강령 어디에도 북한을 추종한다고 돼 있지 않다”며 “북한을 비판하면 칭찬을 하지만 내재적 관점에서 보자고 하면 바로 종북이 된다”고 말했다. 북한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결론을 어떻게 맺을지가 통합진보당의 미래를 내다보는 가늠자가 될 수 있다.
[진보 가치의 재구성]“북한 잘못은 지적하고, 남북 협력 모색해야”
ㆍ진보학자들, 특위 혁신안에 대체로 긍정적
진보학자들은 통합진보당 새로나기 특위가 제안한 대북관과 대북정책 혁신안에 대해 대체적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았다. 3대 세습, 인권, 핵개발 등 북한 문제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분명히 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다. 학자들은 다만 북한의 타도를 목적으로 한 우파의 반북주의와는 구별되는 진보적 입장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실익이 없는 북한 때리기에 매몰되는 것을 경계하고, 북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질적인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진보학자들은 민주주의와 인권 등의 관점에서 북한의 열악한 인권 상황과 3대 세습 등의 문제를 지적하고 비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밝혔다. 손호철 서강대 교수는 “주한미군 철수와 재벌 해체가 전술의 문제라면 북한 인권은 원칙의 문제”라고 했다. 북한 인권에 침묵하는 것이 올바른 것임에도 ‘국민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북한 인권 문제를 제기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북한 인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원칙이고 올바른 것이니까 이야기해야 하는 것”이라는 지적이다.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도 “북한에 대해서도 잘못을 말하면서 협력적 남북한 관계를 모색해갈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도 “통합진보당이 사회주의 혹은 사회주의 가치를 수용한다고 했을 때 3대 세습 문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사안”이라며 “이 점을 분명히 해야 재벌·언론·대형교회 등 남한의 세습권력에 대해 비판할 수 있는 명분이 생긴다”고 했다.
북한 및 남북관계의 특수성에 지나치게 경도돼 북한 문제를 사실상 방치해온 진보정당에 대한 비판도 많았다. 박상훈 대표는 “북한 문제가 친북이냐 반북이냐로 논란이 된 데에는 북한이라는 존재를 객관적으로 이해하고 말하지 못한 진보 역시 책임이 있다”며 “보수에 대항해 북한을 옹호해야 하는 이념적 강박관념을 가질 이유도, 필요도 없다”고 밝혔다.
이창언 연세대 교수는 “북한 문제는 ‘적와 아’를 구분하는 정파적인 진영논리의 한 예”라고 했다. 북에 대한 편향적 인식이나 침묵이 ‘북은 통일의 대상, 미국은 적’이라는 민족해방(NL)의 독특한 ‘멘털’(정신)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북한 문제에 대한 입장 표명을 보수 언론과 새누리당의 마타도어(흑색선전), NL과 PD(민중민주)의 대립, 미 제국주의의 진보세력 분열공작의 축적된 결과라는 식으로 보는 ‘위기의 타자화’를 넘어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배성인 한신대 교수는 북한에 ‘명확한 입장’을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민족해방 진영의 북한에 대한 입장을 명확히 관철시켜야 한다. 당내에서 어떠한 방식으로든 결론을 내야 한다”고 했다.
다만 이념과 국가주의 틀을 강요하는 우파와 거리를 두면서 ‘진보적 입장’을 견지한 ‘섬세한 비판’이 필요하다는 주문이 많았다.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는 “북한 문제에 대해 보수 언론은 ‘반북주의적 입장’ ‘공존 대상으로서의 북한 체제 거부’ ‘북한붕괴론적 입장’에 서도록 추동하고 있으나 이런 것과 명백히 거리를 두면서 비판이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조대엽 고려대 교수는 “북한 이슈들 자체는 냉전적 이념과 국가주의의 프레임에 갇힌 이슈들”이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문제들을 재론함으로써 이념과 국가주의의 틀을 재구축하는 역사 회귀가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다. 조 교수는 “적어도 여론과 대중의 요구에 따라 입장을 표명하는 것은 당연히 필요한 일이지만 이것이 진보정치의 새로운 방향에 적극적으로 관여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 보인다”며 “한·미동맹과 북한 인권 등은 생활진보의 맥락에서 시민적 삶의 자기실현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재설정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정영태 인하대 교수와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북한 문제에 대한 지적이 필요하다고 보면서도 실질적인 접근법에 방점을 찍었다. 정 교수는 “북한 주민의 인권상황을 개선하지 못하고 북한 정권과의 관계마저 약화시키는데도 이 문제를 강하게 제기해야 하나”라며 “우리가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북한 이탈주민 인권을 신장하는 정책을 강조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라고 밝혔다. 김 교수는 “보편적 가치의 구현을 위한 현재의 전략적 관점과 방안은 무엇인지로 논의의 방향을 틀고, 그것에 부합하는 실천적 방안이 무엇인지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진보학자들은 통합진보당 새로나기 특위가 제안한 대북관과 대북정책 혁신안에 대해 대체적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았다. 3대 세습, 인권, 핵개발 등 북한 문제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분명히 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다. 학자들은 다만 북한의 타도를 목적으로 한 우파의 반북주의와는 구별되는 진보적 입장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실익이 없는 북한 때리기에 매몰되는 것을 경계하고, 북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질적인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진보학자들은 민주주의와 인권 등의 관점에서 북한의 열악한 인권 상황과 3대 세습 등의 문제를 지적하고 비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밝혔다. 손호철 서강대 교수는 “주한미군 철수와 재벌 해체가 전술의 문제라면 북한 인권은 원칙의 문제”라고 했다. 북한 인권에 침묵하는 것이 올바른 것임에도 ‘국민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북한 인권 문제를 제기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북한 인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원칙이고 올바른 것이니까 이야기해야 하는 것”이라는 지적이다.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도 “북한에 대해서도 잘못을 말하면서 협력적 남북한 관계를 모색해갈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도 “통합진보당이 사회주의 혹은 사회주의 가치를 수용한다고 했을 때 3대 세습 문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사안”이라며 “이 점을 분명히 해야 재벌·언론·대형교회 등 남한의 세습권력에 대해 비판할 수 있는 명분이 생긴다”고 했다.
북한 및 남북관계의 특수성에 지나치게 경도돼 북한 문제를 사실상 방치해온 진보정당에 대한 비판도 많았다. 박상훈 대표는 “북한 문제가 친북이냐 반북이냐로 논란이 된 데에는 북한이라는 존재를 객관적으로 이해하고 말하지 못한 진보 역시 책임이 있다”며 “보수에 대항해 북한을 옹호해야 하는 이념적 강박관념을 가질 이유도, 필요도 없다”고 밝혔다.
이창언 연세대 교수는 “북한 문제는 ‘적와 아’를 구분하는 정파적인 진영논리의 한 예”라고 했다. 북에 대한 편향적 인식이나 침묵이 ‘북은 통일의 대상, 미국은 적’이라는 민족해방(NL)의 독특한 ‘멘털’(정신)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북한 문제에 대한 입장 표명을 보수 언론과 새누리당의 마타도어(흑색선전), NL과 PD(민중민주)의 대립, 미 제국주의의 진보세력 분열공작의 축적된 결과라는 식으로 보는 ‘위기의 타자화’를 넘어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배성인 한신대 교수는 북한에 ‘명확한 입장’을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민족해방 진영의 북한에 대한 입장을 명확히 관철시켜야 한다. 당내에서 어떠한 방식으로든 결론을 내야 한다”고 했다.
다만 이념과 국가주의 틀을 강요하는 우파와 거리를 두면서 ‘진보적 입장’을 견지한 ‘섬세한 비판’이 필요하다는 주문이 많았다.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는 “북한 문제에 대해 보수 언론은 ‘반북주의적 입장’ ‘공존 대상으로서의 북한 체제 거부’ ‘북한붕괴론적 입장’에 서도록 추동하고 있으나 이런 것과 명백히 거리를 두면서 비판이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조대엽 고려대 교수는 “북한 이슈들 자체는 냉전적 이념과 국가주의의 프레임에 갇힌 이슈들”이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문제들을 재론함으로써 이념과 국가주의의 틀을 재구축하는 역사 회귀가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다. 조 교수는 “적어도 여론과 대중의 요구에 따라 입장을 표명하는 것은 당연히 필요한 일이지만 이것이 진보정치의 새로운 방향에 적극적으로 관여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 보인다”며 “한·미동맹과 북한 인권 등은 생활진보의 맥락에서 시민적 삶의 자기실현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재설정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정영태 인하대 교수와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북한 문제에 대한 지적이 필요하다고 보면서도 실질적인 접근법에 방점을 찍었다. 정 교수는 “북한 주민의 인권상황을 개선하지 못하고 북한 정권과의 관계마저 약화시키는데도 이 문제를 강하게 제기해야 하나”라며 “우리가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북한 이탈주민 인권을 신장하는 정책을 강조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라고 밝혔다. 김 교수는 “보편적 가치의 구현을 위한 현재의 전략적 관점과 방안은 무엇인지로 논의의 방향을 틀고, 그것에 부합하는 실천적 방안이 무엇인지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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