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정치의 위기](3) 진보정치의 재구성
2012. 6. 28. 15:40ㆍdiscourse & issue
[진보정치의 위기](3) 진보정치의 재구성
ㆍ‘고쳐 쓰자’는 혁신론, ‘새로 짓자’는 건설론 갈림길에
진보정치의 재구성은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통합진보당 사태가 불러일으킨 ‘진보정치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해법들이 제기되고 있다. 바닥까지 추락한 진보정치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고, 사회적 약자를 대표하는 진보정치의 ‘새판’을 짜야 한다는 요구들이 ‘진보정치 재구성’으로 수렴되고 있는 것이다. 그 진보정치 재구성의 방향은 크게 두 갈래로 나타나고 있다. 통합진보당을 진보정당답게 개조해야 한다는 혁신론과 통합진보당을 대체하는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론이다.
통합진보당 혁신론은 “낡은 진보를 무덤으로 보내고 미래형 진보를 세우기”(김민웅 성공회대 교수) 위해 재창당에 가까운 전면적 혁신을 이뤄내야 한다는 취지다. 일차적으로는 비례대표 부정 경선 파문과 중앙위원회 폭행 사태를 통해 여실히 드러난 낡은 정파 질서를 타파하고 민주주의 원칙과 가치를 회복해야 한다는 데 초점이 모아진다.
▲ 세력화 주체·핵심 가치 등
제도적 방향 의견차 뚜렷
일부 ‘노동·녹색 정당’ 논의도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정파등록제 같은 제도적 방안으로는 안된다. 새롭게 헤쳐 모이는 수순을 밟아야 한다”며 “국민 상식과 안 맞는 세력과의 결별도 각오하지 않으면 내부 쇄신은 어렵다”고 말했다.
이념 경직성과 폐쇄적 소통 구조를 개혁하고 새로운 변화에 맞춰 당을 현대화하는 것도 혁신을 위한 과제로 제기된다. 정해구 성공회대 교수는 “다양한 대중이 참여해야 대중정당으로서 기반이 넓어진다”며 “이질적인 것들과 끊임없이 토론하면서 계속 자기를 쇄신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 같은 입장은 통합진보당에 가입해 구태를 청산하고 혁신을 이루자는 ‘진보 시즌2’ 운동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정태인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원장은 이번 사태의 와중에 이미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정당, 젊고 대안을 내놓는 정당으로 가는 데 일조하겠다”며 입당했다. 비례대표 14번을 받은 서기호 전 판사도 “미래형 진보는 정치·정파 논리가 아니라 건전한 상식을 갖춘 국민의 눈높이로 하는 진보정치”라며 힘을 보태고 있다.
통합진보당의 혁신을 위해선 보다 근원적으로 진보정당으로서의 대표성과 책임성을 강화하고 새로운 진보적 가치들을 끌어안아야 한다는 제언도 나온다. 혁신의 초점이 절차적 민주주의에만 맞춰질 경우 진정한 진보정당 건설은 요원하다는 인식에서다.
구체적인 방안으로는 ‘노동 없는 진보정치’의 극복이 손꼽힌다. 김윤철 교수는 “절차적 민주주의만 갖춘다고 국민이 지지하는 게 아니다”라며 “비정규직 문제나 사회 양극화 문제 등 국민 상식과 시대적 요구에 맞는 정책과 이념, 비전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도 지난 16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진보정치의 재구성’을 위해 사회 소외세력을 더 가까이 다가가 대표하고, 실현가능한 구체적인 문제를 이슈화하고 정책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일각에선 통합진보당이 재창당 수준의 혁신을 이뤄낸 뒤 ‘진보대통합’으로까지 나가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진중권 동양대 교수는 북한에 대한 명확한 입장 표명과 민주적 절차와 가치에 대한 존중, 진보정당의 현대화를 토대로 한 “새로운 진보대통합의 계획”을 진보 재구성의 조건으로 제시하고 있다.

통합진보당 혁신론에 대해선 회의적 시각도 존재한다. 민주적 절차의 제도화에만 매몰될 가능성이 있는 데다 자유주의 정당으로의 ‘우경화’가 진척될 수 있다는 점에서 노동 중심 진보정당으로의 개조가 불가능하다는 이유 때문이다. ‘진보대통합’ 주장에 대해서도 자유주의 세력을 포괄한 통합진보당 창당 과정에서 갈라진 진보세력들의 물리적·화학적 통합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점이 지적된다. 무엇보다 통합진보당 내홍이 분당으로 치달을 경우 ‘진보의 재구성’은 훨씬 복잡하게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
통합진보당 혁신론과 다른 차원에서 제기되고 있는 것이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론이다. 통합진보당에 진보정치의 미래를 걸 수 없는 만큼 ‘실종’된 노동정치와 진보정치를 복원할 새로운 진보좌파정당을 건설해야 한다는 것이다. 통합진보당 사태 이전부터 있었던 주장이지만 이번 사태를 계기로 구체성을 띠는 모습이다.
대표적으로 ‘진보세력의 연대를 위한 교수·연구자모임’(진보교연)의 김세균 서울대 교수가 노동자 대중을 주축으로 한 대중적 진보정당 건설론을 주창하고 있다. 김 교수는 지난 10일 진보교연 총선 평가 토론회에서 “자유주의 세력과 선을 긋고 대중적 진보정당 노선에 찬성하는 제 진보정치세력이 연합해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에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이 같은 주장은 민주노총 주도하에 이뤄진 ‘위로부터 노동자 정치세력화’가 통합진보당 사태로 최종적으로 파탄했음을 인정하고, 민주노총의 틀에 들지 않는 노동운동이 새로운 정당을 만드는 ‘제2의 노동자 정치세력화’에 기초한다. 김 교수는 특히 통합진보당 외부에서 이 같은 운동을 전개해 통합진보당 인사들도 들어올 수 있도록 해야 하고, 민족해방(NL) 세력의 문제의식도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와는 다르게 새로운 진보좌파정당 건설의 목표를 ‘노동·녹색 정당’에 둬야 한다는 논의도 있다. 주로 진보신당 창당준비위원회에서 제기되고 있다. 통합진보당이 창당과 야권연대 과정에서 ‘진보’의 가치를 상당 부분 잃은 만큼 ‘노동’과 ‘녹색’(환경)을 두 축으로 좌파 정치지형을 새로 구축해야 한다는 방향이다.
이들은 특히 자유주의 세력은 물론 통합진보당과 이를 지지하는 민주노총 상층부의 흐름에 대해서도 선을 긋고 있다. 민주통합당 중심의 연립정부를 전략적 목표로 삼아 진보좌파의 이념과 노선, 정책을 종속시키려는 경향에도 반대한다. 통합진보당의 길과는 다른 진보세력의 독자적 정치세력화를 지향하자는 것이다.
강상구 진보신당 부대표는 “통합진보당이 분당을 하든 야권연대를 하든 진보적 내용이 약화되는 것”이라며 “미력하게나마 새로운 진보정당이 의미 있는 정치세력으로 자리잡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론은 과거 진보정치의 위기나 선거 때마다 등장했지만 진보세력 내부의 의견차 등으로 실현되지 못했다는 점에서 이번에도 전도를 낙관하기 힘들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진우 기자 jwkim@kyunghyang.com
진보정치의 재구성은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통합진보당 사태가 불러일으킨 ‘진보정치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해법들이 제기되고 있다. 바닥까지 추락한 진보정치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고, 사회적 약자를 대표하는 진보정치의 ‘새판’을 짜야 한다는 요구들이 ‘진보정치 재구성’으로 수렴되고 있는 것이다. 그 진보정치 재구성의 방향은 크게 두 갈래로 나타나고 있다. 통합진보당을 진보정당답게 개조해야 한다는 혁신론과 통합진보당을 대체하는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론이다.
통합진보당 혁신론은 “낡은 진보를 무덤으로 보내고 미래형 진보를 세우기”(김민웅 성공회대 교수) 위해 재창당에 가까운 전면적 혁신을 이뤄내야 한다는 취지다. 일차적으로는 비례대표 부정 경선 파문과 중앙위원회 폭행 사태를 통해 여실히 드러난 낡은 정파 질서를 타파하고 민주주의 원칙과 가치를 회복해야 한다는 데 초점이 모아진다.
통합진보당 사태를 계기로 진보정치의 재구성 논의가 분출하고 있다. 1997년 국민승리21 창당 이후 창당과 분당, 통합을 거치며 진전해온 진보정치가 새로운 재편의 요구에 직면하고 있다. 위에서부터 2000년 1월30일 서울 올림픽역도경기장에서 개최된 민주노동당 창당식, 2008년 3월6일 여의도 대하빌딩에서 열린 진보신당 현판식, 2011년 12월1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통합진보당 출범식. | 경향신문 자료사진
▲ 세력화 주체·핵심 가치 등
제도적 방향 의견차 뚜렷
일부 ‘노동·녹색 정당’ 논의도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정파등록제 같은 제도적 방안으로는 안된다. 새롭게 헤쳐 모이는 수순을 밟아야 한다”며 “국민 상식과 안 맞는 세력과의 결별도 각오하지 않으면 내부 쇄신은 어렵다”고 말했다.
이념 경직성과 폐쇄적 소통 구조를 개혁하고 새로운 변화에 맞춰 당을 현대화하는 것도 혁신을 위한 과제로 제기된다. 정해구 성공회대 교수는 “다양한 대중이 참여해야 대중정당으로서 기반이 넓어진다”며 “이질적인 것들과 끊임없이 토론하면서 계속 자기를 쇄신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 같은 입장은 통합진보당에 가입해 구태를 청산하고 혁신을 이루자는 ‘진보 시즌2’ 운동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정태인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원장은 이번 사태의 와중에 이미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정당, 젊고 대안을 내놓는 정당으로 가는 데 일조하겠다”며 입당했다. 비례대표 14번을 받은 서기호 전 판사도 “미래형 진보는 정치·정파 논리가 아니라 건전한 상식을 갖춘 국민의 눈높이로 하는 진보정치”라며 힘을 보태고 있다.
통합진보당의 혁신을 위해선 보다 근원적으로 진보정당으로서의 대표성과 책임성을 강화하고 새로운 진보적 가치들을 끌어안아야 한다는 제언도 나온다. 혁신의 초점이 절차적 민주주의에만 맞춰질 경우 진정한 진보정당 건설은 요원하다는 인식에서다.
구체적인 방안으로는 ‘노동 없는 진보정치’의 극복이 손꼽힌다. 김윤철 교수는 “절차적 민주주의만 갖춘다고 국민이 지지하는 게 아니다”라며 “비정규직 문제나 사회 양극화 문제 등 국민 상식과 시대적 요구에 맞는 정책과 이념, 비전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도 지난 16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진보정치의 재구성’을 위해 사회 소외세력을 더 가까이 다가가 대표하고, 실현가능한 구체적인 문제를 이슈화하고 정책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일각에선 통합진보당이 재창당 수준의 혁신을 이뤄낸 뒤 ‘진보대통합’으로까지 나가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진중권 동양대 교수는 북한에 대한 명확한 입장 표명과 민주적 절차와 가치에 대한 존중, 진보정당의 현대화를 토대로 한 “새로운 진보대통합의 계획”을 진보 재구성의 조건으로 제시하고 있다.

통합진보당 혁신론에 대해선 회의적 시각도 존재한다. 민주적 절차의 제도화에만 매몰될 가능성이 있는 데다 자유주의 정당으로의 ‘우경화’가 진척될 수 있다는 점에서 노동 중심 진보정당으로의 개조가 불가능하다는 이유 때문이다. ‘진보대통합’ 주장에 대해서도 자유주의 세력을 포괄한 통합진보당 창당 과정에서 갈라진 진보세력들의 물리적·화학적 통합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점이 지적된다. 무엇보다 통합진보당 내홍이 분당으로 치달을 경우 ‘진보의 재구성’은 훨씬 복잡하게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
통합진보당 혁신론과 다른 차원에서 제기되고 있는 것이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론이다. 통합진보당에 진보정치의 미래를 걸 수 없는 만큼 ‘실종’된 노동정치와 진보정치를 복원할 새로운 진보좌파정당을 건설해야 한다는 것이다. 통합진보당 사태 이전부터 있었던 주장이지만 이번 사태를 계기로 구체성을 띠는 모습이다.
대표적으로 ‘진보세력의 연대를 위한 교수·연구자모임’(진보교연)의 김세균 서울대 교수가 노동자 대중을 주축으로 한 대중적 진보정당 건설론을 주창하고 있다. 김 교수는 지난 10일 진보교연 총선 평가 토론회에서 “자유주의 세력과 선을 긋고 대중적 진보정당 노선에 찬성하는 제 진보정치세력이 연합해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에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이 같은 주장은 민주노총 주도하에 이뤄진 ‘위로부터 노동자 정치세력화’가 통합진보당 사태로 최종적으로 파탄했음을 인정하고, 민주노총의 틀에 들지 않는 노동운동이 새로운 정당을 만드는 ‘제2의 노동자 정치세력화’에 기초한다. 김 교수는 특히 통합진보당 외부에서 이 같은 운동을 전개해 통합진보당 인사들도 들어올 수 있도록 해야 하고, 민족해방(NL) 세력의 문제의식도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와는 다르게 새로운 진보좌파정당 건설의 목표를 ‘노동·녹색 정당’에 둬야 한다는 논의도 있다. 주로 진보신당 창당준비위원회에서 제기되고 있다. 통합진보당이 창당과 야권연대 과정에서 ‘진보’의 가치를 상당 부분 잃은 만큼 ‘노동’과 ‘녹색’(환경)을 두 축으로 좌파 정치지형을 새로 구축해야 한다는 방향이다.
이들은 특히 자유주의 세력은 물론 통합진보당과 이를 지지하는 민주노총 상층부의 흐름에 대해서도 선을 긋고 있다. 민주통합당 중심의 연립정부를 전략적 목표로 삼아 진보좌파의 이념과 노선, 정책을 종속시키려는 경향에도 반대한다. 통합진보당의 길과는 다른 진보세력의 독자적 정치세력화를 지향하자는 것이다.
강상구 진보신당 부대표는 “통합진보당이 분당을 하든 야권연대를 하든 진보적 내용이 약화되는 것”이라며 “미력하게나마 새로운 진보정당이 의미 있는 정치세력으로 자리잡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론은 과거 진보정치의 위기나 선거 때마다 등장했지만 진보세력 내부의 의견차 등으로 실현되지 못했다는 점에서 이번에도 전도를 낙관하기 힘들다는 지적이 나온다.
[진보 가치의 재구성]재벌 문제, 진보정당 핵심 명제… 실천전략 구체화 과제
ㆍ(3) ‘재벌해체’ 수정론 배경과 고민
재벌해체론은 진보정당의 대표 상품 중 하나로 통한다. 2000년 민주노동당 창당 시 당 강령에 명시한 이래 일반 시민들도 진보정당의 경제정책을 ‘재벌해체’로 인식할 정도다. 구체적인 실현 방안이 바뀌거나 추가되긴 했어도 당 강령이나 정책에서 이 의제가 빠진 적은 없다. 대북관 문제처럼 당내 이견이 불거진 주제도 아니었다.
통합진보당 새로나기 특별위원회가 지난 18일 ‘진보적 가치의 혁신과 새로운 비전 재정립’ 과제의 하나로 재벌해체론을 거론했을 때 “당의 근간을 건드린 것” “진보정당의 색깔을 빼는 것”이라는 비판이 터져나온 것은 이 때문이다.
자본주의 극복과 기득권 타파를 주장해온 진보진영은 한국 자본주의의 현실적 형태이자 기득권의 정점에 선 재벌체제를 극복해야 한국 사회가 진보의 방향으로 나갈 수 있다고 봤다. 정경유착과 각종 특혜를 통해 문어발식 성장을 해온 재벌이 민중의 기본권을 억압해 불평등을 심화시켰다는 것이다.
이에 민노당은 2000년 1월 창당하면서 당 강령에 ‘민주적 경제체제 수립’을 넣고, 그 첫째 구현 방안으로 ‘재벌해체와 민주적 참여기업으로의 전환’을 내세웠다. 2011년 통합진보당이 출범할 때도 ‘재벌의 소유·경영의 독점 해소 등을 통한 독점재벌 중심 경제체제 해체’를 강령에 뒀고, 2012년 총선에선 ‘재벌규제법으로 30대 재벌 해체해 3000개 전문기업으로’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하지만 보편적 복지와 경제민주화가 시대적 화두가 되면서 재벌개혁에 대해선 여야를 막론하고 관련 공약과 정책을 경쟁적으로 쏟아내는 상황이 됐다. 재벌해체냐 재벌개혁이냐를 두고 진보학자들 간 논쟁도 벌어지고 있다. 통합진보당으로선 진보정당으로서의 선명성을 유지하면서도 구체적이고 실현가능한 방안을 내놓으라는 요구에 직면할 수밖에 없게 됐다.
새로나기 특위가 재벌해체론에 대해 “방향을 부정하지 않으나 현실성과 타당성 면에서 재검토돼야 하며 전반적인 경제개혁의 구상 속에서 수립돼야 한다”고 밝힌 것은 이 같은 고민을 반영한다.
재벌을 해체하고 제재하는 방향에는 동의하지만 “국민은 물론 당내의 공감을 얻고 있는지, 또한 실현가능하고 타당한 정책인지 진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진보정당이 실현가능성이 의심되는 정책을 주장하고 기득권을 해체하기 위한 정책만을 전면에 내세우거나 나열하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문제의식이 깔려 있다.
지향하는 가치를 당장의 정책으로 제시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특위가 집중적으로 문제삼은 것은 지난 4·11 총선 공약으로 내걸었던 “30대 재벌 해체해 3000개 전문기업으로 만들자”는 정책이다. 보고서는 “과연 이것이 현실적인 정책이냐”고 했다. 보고서 작성에 참여한 천호선 특위위원은 “30대 재벌을 3000개 전문기업으로 나눈다는 것은 총선 당시 정당홍보물의 주 메뉴였는데 당내에서조차 가능하냐는 의문이 있었다”며 “그것이 옳은 방향인지, 실현가능한지, 국가경제나 고용의 차원에서 좋은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재벌해체론에 대한 특위의 문제 제기는 “진보정당의 정체성을 내려놓는 것”이라는 반박에 직면하고 있다.
보고서 발표 다음날 통합진보당 이의엽 전 정책위의장은 “하다못해 민주당조차 재벌개혁을 하자고 한다”며 “누가 문제 제기를 한 것도 아닌데 우리 스스로 항복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진보신당 강상구 부대표는 “진보정당이 미래의 구상을 제시하는 역할을 포기한다면 그야말로 민주당과 다를 바 없다”고 했다.
재벌해체는 진보정당의 정체성, 나아가 존재 이유와 직결된 민감한 사안 중의 하나다. 이번 특위 보고서가 재벌해체론을 거론한 이상 당내 논쟁은 불가피하다. 혁신비상대책위가 주한미군 철수 재검토와 더불어 이 문제에 대해 특위 보고서를 채택하지 않은 것은 이런 민감성을 반영한다. 심도 있는 토론과 논쟁을 통해 재벌해체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정리하지 않는 한 진보정당의 확장성은 제한될 수밖에 없다.
안홍욱 기자 ahn@kyunghyang.com
재벌해체론은 진보정당의 대표 상품 중 하나로 통한다. 2000년 민주노동당 창당 시 당 강령에 명시한 이래 일반 시민들도 진보정당의 경제정책을 ‘재벌해체’로 인식할 정도다. 구체적인 실현 방안이 바뀌거나 추가되긴 했어도 당 강령이나 정책에서 이 의제가 빠진 적은 없다. 대북관 문제처럼 당내 이견이 불거진 주제도 아니었다.
통합진보당 새로나기 특별위원회가 지난 18일 ‘진보적 가치의 혁신과 새로운 비전 재정립’ 과제의 하나로 재벌해체론을 거론했을 때 “당의 근간을 건드린 것” “진보정당의 색깔을 빼는 것”이라는 비판이 터져나온 것은 이 때문이다.
자본주의 극복과 기득권 타파를 주장해온 진보진영은 한국 자본주의의 현실적 형태이자 기득권의 정점에 선 재벌체제를 극복해야 한국 사회가 진보의 방향으로 나갈 수 있다고 봤다. 정경유착과 각종 특혜를 통해 문어발식 성장을 해온 재벌이 민중의 기본권을 억압해 불평등을 심화시켰다는 것이다.

이에 민노당은 2000년 1월 창당하면서 당 강령에 ‘민주적 경제체제 수립’을 넣고, 그 첫째 구현 방안으로 ‘재벌해체와 민주적 참여기업으로의 전환’을 내세웠다. 2011년 통합진보당이 출범할 때도 ‘재벌의 소유·경영의 독점 해소 등을 통한 독점재벌 중심 경제체제 해체’를 강령에 뒀고, 2012년 총선에선 ‘재벌규제법으로 30대 재벌 해체해 3000개 전문기업으로’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하지만 보편적 복지와 경제민주화가 시대적 화두가 되면서 재벌개혁에 대해선 여야를 막론하고 관련 공약과 정책을 경쟁적으로 쏟아내는 상황이 됐다. 재벌해체냐 재벌개혁이냐를 두고 진보학자들 간 논쟁도 벌어지고 있다. 통합진보당으로선 진보정당으로서의 선명성을 유지하면서도 구체적이고 실현가능한 방안을 내놓으라는 요구에 직면할 수밖에 없게 됐다.
새로나기 특위가 재벌해체론에 대해 “방향을 부정하지 않으나 현실성과 타당성 면에서 재검토돼야 하며 전반적인 경제개혁의 구상 속에서 수립돼야 한다”고 밝힌 것은 이 같은 고민을 반영한다.
재벌을 해체하고 제재하는 방향에는 동의하지만 “국민은 물론 당내의 공감을 얻고 있는지, 또한 실현가능하고 타당한 정책인지 진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진보정당이 실현가능성이 의심되는 정책을 주장하고 기득권을 해체하기 위한 정책만을 전면에 내세우거나 나열하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문제의식이 깔려 있다.
지향하는 가치를 당장의 정책으로 제시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특위가 집중적으로 문제삼은 것은 지난 4·11 총선 공약으로 내걸었던 “30대 재벌 해체해 3000개 전문기업으로 만들자”는 정책이다. 보고서는 “과연 이것이 현실적인 정책이냐”고 했다. 보고서 작성에 참여한 천호선 특위위원은 “30대 재벌을 3000개 전문기업으로 나눈다는 것은 총선 당시 정당홍보물의 주 메뉴였는데 당내에서조차 가능하냐는 의문이 있었다”며 “그것이 옳은 방향인지, 실현가능한지, 국가경제나 고용의 차원에서 좋은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재벌해체론에 대한 특위의 문제 제기는 “진보정당의 정체성을 내려놓는 것”이라는 반박에 직면하고 있다.
보고서 발표 다음날 통합진보당 이의엽 전 정책위의장은 “하다못해 민주당조차 재벌개혁을 하자고 한다”며 “누가 문제 제기를 한 것도 아닌데 우리 스스로 항복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진보신당 강상구 부대표는 “진보정당이 미래의 구상을 제시하는 역할을 포기한다면 그야말로 민주당과 다를 바 없다”고 했다.
재벌해체는 진보정당의 정체성, 나아가 존재 이유와 직결된 민감한 사안 중의 하나다. 이번 특위 보고서가 재벌해체론을 거론한 이상 당내 논쟁은 불가피하다. 혁신비상대책위가 주한미군 철수 재검토와 더불어 이 문제에 대해 특위 보고서를 채택하지 않은 것은 이런 민감성을 반영한다. 심도 있는 토론과 논쟁을 통해 재벌해체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정리하지 않는 한 진보정당의 확장성은 제한될 수밖에 없다.
[진보 가치의 재구성]“재벌해체 철회 안된다” “민주당과 정책 차별화를”
ㆍ진보 학자들, 특위 보고서 엇갈린 반응
통합진보당 새로나기 특별위원회가 재벌 문제를 두고 “재벌해체 방향에는 동의하지만 구체적 방법은 재검토해야 한다”고 제안한 데 대해 진보학자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긍정론은 실천가능한 정책을 구체화해야 한다는 점이, 부정론은 재벌해체론이 보수주의·자유주의 정당과 차별화하는 진보정당의 가치로서 필요하다는 점이 주된 근거로 제시됐다.
재벌해체론 수정안에 공감을 나타내는 학자들은 현실성과 실천가능성을 이유로 많이 꼽았다.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는 “진보가 집권해서 실천할 수 있는 경제정책 내용을 구체화하는 쪽으로 접근해야 한다”며 “체제 밖 야당으로 주장만 앞세우는 것으로는 기여할 게 없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재벌해체로 어떤 경제구조를 만들지에 대한 책임 있는 대안이 있다면 문제가 없지만 ‘누가 더 세게 재벌을 비판하느냐’는 차원에서 내거는 강한 주장에 불과하다면 당연히 잘못된 것”이라고 부연했다.
고원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재벌해체 방향을 부정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재벌해체론은 방향이나 현실타당성 등 모든 면에서 전면 재검토 대상”이라고 했다. ‘재벌해체’라는 용어 자체를 폐기하라는 주문이다. 그는 “네거티브적 급진성이 한국 진보의 현 주소”라고 진단하며 “대안적 비전을 제시하는 방향으로 재정립돼야 한다”고 했다.
재벌해체론 깃발을 현 단계에서 내릴 필요가 없다는 부정론도 상당하다. 배성인 한신대 교수는 “한국자본주의 구조적 문제의 핵심에는 재벌이 놓여 있다”며 “재벌의 독점 심화와 후계체제 문제 등을 고려하면 재벌해체가 진보정당에 적합한 정책”이라고 했다.
진보정당이 다른 정당과 구별되는 지점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는 “재벌해체론은 여전히 진보정당의 가치로서 존재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민주통합당 진보파와 차별성을 견지할 수 없다”고 봤다. 손호철 서강대 교수도 “통합진보당이 재벌해체를 포기한다면 민주통합당과의 결정적 차이는 무엇이냐”고 반문했다.
이들은 ‘대중적 진보정당’을 위한 수정의 필요성에도 반론을 제기한다. 배 교수는 “자신들의 정책을 대중에게 동의를 얻는 것도 중요하지만 설득하는 작업도 매우 필요하다”고 했고, 조 교수는 “진보정당은 ‘집권가능 정당’이 아니라 ‘소금정당’이어서 재벌해체를 포기한다고 대중성이 더 생기는 게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진보정당이 대중성을 지나치게 의식하면 자신의 색깔을 잃어버릴 것이란 얘기다.
새로나기 특위의 제안이 비례대표 부정경선 사태에 직면한 상황에서 급조됐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동춘 교수는 “전반적으로 방어적·절충적 기조를 보이고 재벌개혁 문제에선 한국 경제 전반의 발전과 개혁의 관점에서 보질 못하고 있다”며 “이 시대의 진보 가치가 무엇인지 정의하지 않고 진보 가치를 확장한다는 것만으로는 대중적 설득력을 갖는 데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재벌해체는 경제민주화·사회정의를 위해, 한국 경제의 성장동력을 찾기 위해, 노동자들의 참여와 불평등 극복이라는 관점에서 필요함을 강조해야 한다”고 했다.
용어 논쟁보다는 ‘재벌 체제’의 틀을 깰 수 있는 실제적 노력이 필요하다는 대안론도 있다.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특위 제안에) 대체로 동의한다”면서도 “재벌해체론 자체에 대한 갑론을박이 아니라 족벌 경영, 승자독식 경영의 폐해를 어떻게 해결할지를 중심으로 논의를 재구성하는 게 현실적이고 타당하다”고 말했다.
이창언 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 교수는 “과거 민주노동당이나 최근 통합진보당의 재벌해체 공약이 현실과 구체성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점에 공감한다”며 “재벌해체냐, 재벌개혁이냐는 것보다 산업이 노동자를 소외시키면서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사회적 관계를 끊고 민주화하는 데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정영태 인하대 교수는 “용어를 바꾸는 것은 무방하다”면서 “그러나 재벌 대기업의 전횡 구조·제도를 바꾸는 것을 포기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통합진보당 새로나기 특별위원회가 재벌 문제를 두고 “재벌해체 방향에는 동의하지만 구체적 방법은 재검토해야 한다”고 제안한 데 대해 진보학자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긍정론은 실천가능한 정책을 구체화해야 한다는 점이, 부정론은 재벌해체론이 보수주의·자유주의 정당과 차별화하는 진보정당의 가치로서 필요하다는 점이 주된 근거로 제시됐다.
재벌해체론 수정안에 공감을 나타내는 학자들은 현실성과 실천가능성을 이유로 많이 꼽았다.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는 “진보가 집권해서 실천할 수 있는 경제정책 내용을 구체화하는 쪽으로 접근해야 한다”며 “체제 밖 야당으로 주장만 앞세우는 것으로는 기여할 게 없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재벌해체로 어떤 경제구조를 만들지에 대한 책임 있는 대안이 있다면 문제가 없지만 ‘누가 더 세게 재벌을 비판하느냐’는 차원에서 내거는 강한 주장에 불과하다면 당연히 잘못된 것”이라고 부연했다.
고원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재벌해체 방향을 부정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재벌해체론은 방향이나 현실타당성 등 모든 면에서 전면 재검토 대상”이라고 했다. ‘재벌해체’라는 용어 자체를 폐기하라는 주문이다. 그는 “네거티브적 급진성이 한국 진보의 현 주소”라고 진단하며 “대안적 비전을 제시하는 방향으로 재정립돼야 한다”고 했다.
재벌해체론 깃발을 현 단계에서 내릴 필요가 없다는 부정론도 상당하다. 배성인 한신대 교수는 “한국자본주의 구조적 문제의 핵심에는 재벌이 놓여 있다”며 “재벌의 독점 심화와 후계체제 문제 등을 고려하면 재벌해체가 진보정당에 적합한 정책”이라고 했다.
진보정당이 다른 정당과 구별되는 지점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는 “재벌해체론은 여전히 진보정당의 가치로서 존재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민주통합당 진보파와 차별성을 견지할 수 없다”고 봤다. 손호철 서강대 교수도 “통합진보당이 재벌해체를 포기한다면 민주통합당과의 결정적 차이는 무엇이냐”고 반문했다.
이들은 ‘대중적 진보정당’을 위한 수정의 필요성에도 반론을 제기한다. 배 교수는 “자신들의 정책을 대중에게 동의를 얻는 것도 중요하지만 설득하는 작업도 매우 필요하다”고 했고, 조 교수는 “진보정당은 ‘집권가능 정당’이 아니라 ‘소금정당’이어서 재벌해체를 포기한다고 대중성이 더 생기는 게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진보정당이 대중성을 지나치게 의식하면 자신의 색깔을 잃어버릴 것이란 얘기다.
새로나기 특위의 제안이 비례대표 부정경선 사태에 직면한 상황에서 급조됐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동춘 교수는 “전반적으로 방어적·절충적 기조를 보이고 재벌개혁 문제에선 한국 경제 전반의 발전과 개혁의 관점에서 보질 못하고 있다”며 “이 시대의 진보 가치가 무엇인지 정의하지 않고 진보 가치를 확장한다는 것만으로는 대중적 설득력을 갖는 데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재벌해체는 경제민주화·사회정의를 위해, 한국 경제의 성장동력을 찾기 위해, 노동자들의 참여와 불평등 극복이라는 관점에서 필요함을 강조해야 한다”고 했다.
용어 논쟁보다는 ‘재벌 체제’의 틀을 깰 수 있는 실제적 노력이 필요하다는 대안론도 있다.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특위 제안에) 대체로 동의한다”면서도 “재벌해체론 자체에 대한 갑론을박이 아니라 족벌 경영, 승자독식 경영의 폐해를 어떻게 해결할지를 중심으로 논의를 재구성하는 게 현실적이고 타당하다”고 말했다.
이창언 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 교수는 “과거 민주노동당이나 최근 통합진보당의 재벌해체 공약이 현실과 구체성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점에 공감한다”며 “재벌해체냐, 재벌개혁이냐는 것보다 산업이 노동자를 소외시키면서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사회적 관계를 끊고 민주화하는 데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정영태 인하대 교수는 “용어를 바꾸는 것은 무방하다”면서 “그러나 재벌 대기업의 전횡 구조·제도를 바꾸는 것을 포기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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