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_퍼옴] 아우슈비츠의 여자들과 인류
2015. 3. 12. 11:18ㆍBook
[책의 향기]“오늘은 살아남았다” 안도하는 내가 罪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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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2-28 03:00:00 수정 2015-02-28 03:00:00
◇아우슈비츠의 여자들/캐롤라인 무어헤드 지음/한우리 옮김/536쪽·1만8000원·현실문화◇인류/로베르 앙텔므 지음/고재정 옮김/466쪽·1만9500원·그린비

70주년을 맞아 국내에도 나치 수용소를 소재로 한 두 권의 책이 나란히 출간됐다. 영국의 기록문학 작가 캐롤라인 무어헤드가 아우슈비츠에서 생존한 프랑스 여성의 구술과 관련 기록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르포르타주 ‘아우슈비츠의 여자들’과 프랑스의 행동하는 지식인 로베르 앙텔므(1917∼1990)가 자신의 수용소 생활을 풀어낸 증언문학 ‘인류’다. 각각 현지에서 2011년, 1947년 출간돼 크게 주목받았다.

세실은 나치 독일에 맞서 끝까지 저항했던 프랑스 레지스탕스의 중요 조직원으로 일했다. 그는 남편과 이혼하고 여덟 살 딸까지 어머니에게 맡기고 활동에 투신했다. 딸 생각을 하라는 어머니의 말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아이가 있기 때문에 제가 이런 일을 하는 거예요. 제 아이를 이런 세상에서 키우고 싶지 않으니까요.”
아우슈비츠로 끌려간 세실은 ‘걸어 다니는 시체’가 된 산 자와 벌거벗긴 채 쌓인 죽은 자가 있는 아비규환의 생지옥을 마주한다. 그는 시신 운송 작업에 투입됐을 때 목숨이 붙어 있는 여자를 발견한다. 산 자는 그의 발목을 잡으며 살려 달라고 애원하는데, 이를 본 독일군은 그의 눈앞에서 곤봉으로 여자의 머리를 으깬다. 그는 시체를 태우는 굴뚝 연기를 보며 살았다는 안도감과 죄책감을 동시에 느껴야 했다.
생지옥 같은 29개월의 수용소 생활이 끝나고 230명 중 49명이 프랑스로 살아 돌아왔다. 마구잡이로 죽어나가는 수용소에서 비교적 많은 여성이 목숨을 건졌다. 가학적인 학대 속에서도 여성 간의 우정과 연대는 꽃을 피웠다. 세실은 “우리는 누구를 좋아하고 또 누구를 좋아하지 않는지 스스로에게 물어가며 행동하지는 않았다”며 “그것은 우정이라기보다는 연대감이었다. 우리는 어느 누구도 홀로 있게 두지 않았다”고 말한다. 훗날 ‘31000번’ 생존자들은 수용소 생활을 증언할 때 꼭 주어를 ‘나’ 대신 ‘우리’라고 말했다.
앙텔므의 ‘인류’에선 수용소 생존자만이 깨칠 수 있는 인류, 인류애에 대한 깊은 통찰을 들려준다. 그도 1943년 레지스탕스에 가담했다가 수용소에 수감됐다. 그는 “우리는 인류는 단 하나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왜냐하면 최악의 희생자로서 우리가, 박해자의 힘이 가장 악질적으로 행사되는 상황 속에서도, 그 힘은 인간의 힘들 중 하나인 살해의 힘일 뿐임을 확인하는 것 외에 다른 길이 없기 때문이다. 박해자는 인간을 죽일 수는 있지만, 인간을 다른 것으로 바꾸지는 못한다.”
인류의 사전적 의미는 ‘세계의 모든 사람’을 뜻한다. 단, ‘인류는 하나다’란 전제조건이 성립될 때 사전적 의미도 빛을 볼 것이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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