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 잠든 유럽을 깨우다'

2015. 6. 18. 22:06Book

 

 

"공자와 동양사상은 유럽 근대의 뿌리였다"

황태연·김종록 '공자, 잠든 유럽을 깨우다' 출간

(서울=연합뉴스) 임형두 기자 = "공자는 18세기 유럽 계몽주의의 수호성인이었다" "로코코 문화도 동양 선비문화의 복사판이었고 영국의 젠틀맨(신사) 또한 선비를 동경했다"

서세동점(西勢東漸)에만 익숙해온 서구맹종주의자들은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린가' 싶을 것이다. 근현대 세계사상사를 주름잡아온 서양이 공자를 숭배했다니 가당키나 하느냐며 머리를 심하게 흔들어댈지 모른다. 뜬금없는 뚱딴지 같아서다.

하지만 황태연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와 작가 김종록 씨는 공저 '공자, 잠든 유럽을 깨우다'에서 이 같은 주장이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라며 실증자료를 풍부하게 내놓는다. 책을 읽다 보면 동서 간의 흥미진진한 철학교류 이야기들에 저절로 빠져들게 된다.

 

서울문묘의 명륜당 현판
서울문묘의 명륜당 현판

 

"공자는 용서, 사은(謝恩), 인애, 겸손을 촉구한다. 공자의 제자들은 사해가 다 동포임을 과시한다. 지구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가장 존경할 만한 시대는 바로 사람들이 공자의 도를 따르는 시대였다."

누구의 말일까? 프랑스 계몽사상가 볼테르의 단언이었다. 그는 ""공자는 선지자가 아니고, 조금도 계시적인 것을 말하지 않는다"며 "그의 도덕은 순수하고 엄격하며 동시에 인간적이기도 하다"며 추앙한다.

"공자의 언행은 그리스 철학과는 비교할 수 없는 도덕철학의 보고다. 공자는 덕과 학식이 뛰어났고 신의 섭리에 의해 중국에 선물된 사람이었다. 그는 그리스도가 유럽에서 받는 것과 똑같은 대우를 중국에서 받는다."

이는 1721년 프로이센제국의 왕립 할레 대학에서 총장을 맡았던 크리스티안 볼프의 이임식 연설 내용이다. 볼프는 공자의 무신론적 도덕철학을 높이 칭송했다. 유럽의 기독교계는 이 발언으로 충격에 빠졌고 독일 대변혁의 불씨가 됐다. 물론 볼프는 대학과 조국에서 쫓겨나야 했다.

이들뿐 아니었다. 라이프니츠, 루소, 흄, 애덤 스미스 등 우리가 아는 18세기 유럽의 최고 지식인들이 공자를 추앙하고 숭배했다. 더불어 동아시아의 공자사상으로 근대 유럽을 개화하려 애썼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태동에도 공자는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쉽게 믿어지는가?

저자들은 자신있게 역설한다. 믿어도 좋다고 말이다. 그러면서 이야기를 하나하나 풀어간다.

 

중국 산둥(山東)성 공자사당에서 거행된 제례의식
중국 산둥(山東)성 공자사당에서 거행된 제례의식

 

일찍이 유럽에 불었던 동아시아 열풍은 14세기 르네상스의 물적 토대가 됐다. 그리고 18세기에 분 공자 열풍은 계몽주의의 정신적 바탕이 된다. 유럽의 경험주의자들은 공자철학의 지원을 받아 스콜라철학과 그리스합리주의를 분쇄하는 사상투쟁을 벌인다. 프랑스대혁명은 그 산물이었다.

중국에 대한 비방과 예찬을 놓고 몽테스키외와 볼테르가 격돌했던 사례도 들려준다. 물론 볼테르의 판정승. 경제학의 창시자이자 '유럽의 공자'로 불린 프랑수아 케네 등 수많은 중농주의자들과 중국 애호가들이 볼테르의 편에 서며 사상적 지각변동을 일으킨다.

 

저자들은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은 사마천의 '자연지험(自然之驗)'을 표절한 것이라고 역설한다. 스미스의 자유시장 경제학이 '중국산'이라고 단언한 영국 사상사 레슬리 영의 1996년 논문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공자 철학이 유럽에 건너가게 된 연유는 뭘까? 유럽 선교사들은 중국에 기독교를 효과적으로 전파하기 위해 중국 문화를 배워야 했다. 그러다 만난 공자에 일거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공자를 번역하다 공자의 매력에 절로 빠져들었고 거꾸로 유럽에 열렬히 전파하기에 이르렀다.

실제로 공자의 철학과 사상은 기독교적 세계관에 젖어 있던 유럽인들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급기야 유럽사회에 공자 열풍이 불었고, 기독교 선교사를 유럽에서 중국으로 보낼 게 아니라 공자 선교사를 중국에서 유럽으로 파견해야 옳다는 주장까지 나오게 됐다. 그 결과 2천년 동안 동아시아를 풍미하던 공자사상은 18세기에 유럽을 강타한 계몽주의라는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낸다.

 

이랬던 동아시아가 왜 서구 열강에 참패하고 말았을까? 세계 1위의 문화국가였던 중국이 서구 콤플렉스에 빠짐은 물론 그 정치문화적 지배를 받게 된 이유는 과연 뭘까?

 

저자들은 "18세기 중국과 조선은 부족할 것 없이 두루 갖춰져 있어 다른 문화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며 "어느 문명이건 정체는 곧 퇴보로 이어진다. 두 나라의 몰락은 지나친 자부심이 원인이었다"고 안타까워한다.

반면에 16~18세기 유럽은 동양과 여타 세계에 많은 관심을 두고 세계 각지로 진출하며 도처에서 문물을 받아들이는 개혁개방을 계속해 서구문명을 꽃피웠다. 번영과 풍요에 안주한 결과 동양은 서구에 뒤지고 지배당하는 치욕을 맛봐야 했다는 얘기다.

 

성균관에서 봉행된 추기석전
성균관에서 봉행된 추기석전

 

이 대목에서 다시 묻자. 유럽은 이후에도 내내 공자를 존숭하고 그의 철학에서 배움을 얻어나갔던가. 별안간 제국주의로 옷을 갈아 입은 서구 열강은 19세기 내내 문명개화라는 명목으로 세계를 악마처럼 지배하고 약탈했다. '남이 너 자신에게 해주기 바라는 그것을 남에게 해주라'는 공자의 가르침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지옥도의 나락으로 빠져들고 만 것이다.

 

저자들은 "뒤늦게 서양을 배우고 추격한 동아시아의 한·중·일 삼국은 이제 서양과 대등하게 또는 서양을 능가할 정도로 발전하고 있다"면서 "보편적 생명애와 공감의 정치철학인 공자사상은 오늘날 파탄에 처한 서구 합리주의를 대신할 대안철학"이라고 덧붙인다.

 

책은 읽으면 읽을수록 깨달음의 기쁨을 새롭게 안겨준다. 예컨대 18세기까지만 해도 가난한 산간벽지 국가에 불과했던 최빈국 스위스가 1인당 GDP(국내총생산) 8만 달러라는 세계 최고의 지상낙원으로 떠오르게 된 것도 동양 문화의 적극적인 흡수 덕분이었단다. 그 도입의 주역은 네덜란드와 프랑스에서 들어온 개신교도 위그노들. 중국의 무위사상과 중농주의를 받아들이며 대대적인 국가변혁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백성을 따르는 치자(治者)'가 다스리는 지덕(知德)의 나라로 바뀌었다는 것.

 

전북 정읍 출신으로 동서양 철학교류사에 정통한 황 교수는 5권짜리의 '공자와 세계'를 이미 내놓은 바 있다. 이번 공저 '공자, 잠든 유럽을 깨우다'는 이를 저본 삼아 한 권의 교양서적으로 김종록 작가와 함께 엮어낸 것이다.

 

김영사. 368쪽. 1만4천800원.

 

 

ido@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5/06/04 09:37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