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포동의안 표결에 대한 단상
2023. 3. 1. 12:36ㆍ파놉틱 정치 읽기
체포동의안 표결에 대한 단상
『易經』의 「繫辭下傳」에 서로 다른 생각이라도 다 하나로 통하니 걱정할 필요 없다는 것이며, 그러니 널리 이해하고 관용해야 한다는 뜻으로, “천하에 무엇을 근심하고 무엇을 걱정하랴! 천하는 같은 데로 돌아가더라도 길을 달리하고 하나에 이르더라도 생각을 백 가지로 하는데, 천하에 무엇을 근심하고 무엇을 걱정하랴”라는 문구가 있다. 하물며 『논어』 ‘위정’ 편에는 “이단을 공격하면 해롭다”고 했다. 정조는 신하들의 천주교에 대한 강경 대응에 대해 이 문구를 말하며 반대했다. 이런 관용의 정신이 일상적 종교전쟁을 예방할 수 있었고, 사상의 자유를 지금처럼 확장할 수 있도록 한 측면이 있다. 그러니 가장 핵심은 무제한적 관용이다.
최근 정치 상황을 보며, 그렇게 판단할 수도 있다고 생각된다. 그들이 보기에 그것이 옳다고 판단했고 실행했다면 그것을 뭐라하겠나! 하지만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거짓말이다. 논어의 ‘정자정야(政者正也)’. 정치는 정직해야 한다. 미국의 국부(國父) 중 한명인 벤저민 프랭클린은 “정직은 최선의 정치”라고 일갈했다. 공론의 장에서 자신의 생각을 정직하게 밝히지 않고, 자신의 본심을 위선의 장막으로 가리고 행하는 정치는 사술(詐術)이다. 무엇을 위한 사술인가? 무엇이 두려워 정직하게 말하지 못하는가. 그 많은 반란표에 대해 누구 하나 나는 이런 생각에서 이렇게 행동했다고 말하는 사람이 없다. 왜 나를 공격하느냐고 볼멘소리만 가득하다. 두려운 것은 비판·비난의 목소리가 아니라 공천권과 정치생명이라고 밖에는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다. 그래도 공자의 말씀대로 “이단을 공격하면 재해”니, 그냥 두시라. 단, 정직하게 자신의 주장을 말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생각이 백 가지여도 하나에 이르려는 것이 아니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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