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대로 해라

2001. 1. 10. 14:59파놉틱 정치 읽기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1,157억원이란다. 그것도 안기부 예산이란다. 한나라당은 정치공세라고 몰아 부치며 전혀 그런 일이 없다고 발뺌을 하고 있다. 나는 이 대목에서 양비론 같은 해묵은 칼을 빼들지는 않겠다.
돈 유용해서 자기 편한 대로 쓴 놈에게 양비론이라는 면제부를 제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도 그 양비론을 적용한다면 우리는 정치란 놈을 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굳이 애써서 정치를 논하려고 할 필요도 없고 그 매번 나오는 진보라는 표현도 할 필요가 없다.
政治가 무엇인가? "바르게 다스리는 것"이다. 법치가 무엇인가? "법에 의해 다스려지는 것"이다. 바르게 다스리고 법에 의해 통치하라는 국민의 요구를 묵살하고 그 엄청난 돈을 유용한 자들에게는 법에 의해 단죄를 하고 그것을 하나의 준거로 만들어갈 필요가 있다.

요즘 신문은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아 얼마나 재미있는 소스들이 도처에 깔려있는가! 우매한 백성들은 돌아가는 저간의 사정을 알아보려고 가판에 400원을 무수하게 쏟아 붇고 있다. 정치권의 부도덕성에 의한 기사의 폭증은 다시금 국민의 주머니를 줄어들게 하고 있다. 하지만 그 놈의 신문이란 어떻게 된 것이 자신의 의중을 교묘한 양비론에 의탁하여 의도대로 끌고 가려 하고 있다.
이 틈바구니에 진보진영의 입장은 반영되지 않고 있다. 아니 반영되지 않는 다기보다는 진보진영 또한 그 해묵은 양비론에 묻혀 자신의 입장을 개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불법에 대한 엄단이고 이에 대한 제도적 방지책을 선전하고 입법화하기 위한 전략보다 이 사건이 어느 쪽에 더 유리할 것인지라는 정치적 판단이 앞서는 것은 소위 진보진영이 얘기하는 보수정치판이나 진보정치판 모두 대동소이한 것 같다. 이 글이 진보진영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므로 여기서 각설하겠다.

우리는 적어도 원칙을 세워야 한다. 첫째, 검찰수사에 대해 정치권은 왈가왈부하지 말아야 한다. 검찰이 제대로 수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주변에서 짖지 말아야 한다. 공부 좀 열심히 하려는데 주변에서 짖어대면 그 공부가 제대로 되겠는가. 둘째, 잘못한 놈들은 적어도 미안하다고 액션이라도 취해야 한다. 하물며 똥개도 아무대나 똥을 싸고 주인에게 걸리면 꼬리는 내리는게 犬之常情이다. 개만도 못하지는 않을테니 액션을 취하라. 누구인지는 다들 알테니 성명을 밝히는 물의를 일으키지는 않겠다. 셋째, 몰래 해먹은 돈은 토해내야 한다. 어떻게 만들어서 쓰라고 준 돈인데, 그걸 몰래 해먹었다면 이건 그 동안의 이자까지 합쳐서 받아내야 한다. 그걸 어렵게 얘기해서 국고환수라고 하기도 한다. 여기에 덧붙여서 힘들겠지만 '부패방지법', '돈세탁방지법' 등 개혁입법이 국회에서 통과되어야 한다.

이제 진짜 현행법이 마음에는 안 들지만 적어도 있는 법이라도 법대로 해봤으면 좋겠다. 한나라당 당수가 얘기한 법대로 정치가 실현되었으면 좋겠다. 말한 자가 지키지 않으니 이거 참 속이 탈뿐이다. 이번을 기회로 해서 진보진영도 자신의 입장을 명확히 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질러야 한다. 진정 진보정치를 추구한다면 현실을 바꾸는 기나긴 여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 그들의 목소리가 신문지면에 자주 나타나기를 고대한다.

눈다운 눈이 내렸다. 세상이 너무나 아름답다. 온통 하얀나라 얼마만에 맛보는 동심인가!!
이런 날이 항상 12달이길 바란다. 부패가 없는 나라, 법이 지켜지는 나라, 우리가 양비론에 시달리지 않는 나라. 단, 눈이 와도 교통이 막히지 않고 재난재해가 없다는 전제하에...


'파놉틱 정치 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언론개혁, 멈출 수 없다.  (0) 2001.06.23
사립학교법 개정, 그 필요성은  (0) 2001.04.19
공교육 파괴와 이민문제에 대해  (0) 2001.03.19
희망으로 가고 싶습니다.  (0) 2001.02.15
종이를 버려라  (0) 2001.0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