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nsitivity(133)
-
불평등의 토양, 교육시스템
토마 피케티의 『자본과 이데올로기』 중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사민주의자들이 빈곤층 아이들의 교육을 자기네 아이들의 엘리트 코스만큼 신경써왔노라고 설득하지 못하는 그 무능력이(이것이 별로 놀랍지 않은 이유는 사민주의자들이 교육 영역에서 정의롭고 투명한 정책을 진정으로 발전시켜왔던 적이 없기 때문인데) 분명 사민당이 어쩌다 고학력자들의 정당이 된 건지 그 이유를 상당 부분 설명해준다.” 2000년대 초반부터 벌어진 한국사회의 교육정책의 문제점, 신자유주의 방식의 교육정책이 사회에 침투하고 경쟁과 능력 위주의 교육철학이 주류가 되었던, 하지만 그 바탕에는 부모의 자산능력이 바탕이 되는 기존 계급‧계층 부류가 장악한 교육 시장, 또 한 축은 새롭게 부를 축적한 소위 두뇌에 좌파와 신자유주의 논리가 공생하는 ..
2021.08.16 -
세월호의 아픔
독일 베를린 시내 한가운데의 Holocaust Mahnmal 독일의 유대인 학살의 처참한 역사를 잊지 않으려고 만든 조형물이다. 오랜 시간의 토론을 거쳐 잊지 않으려고 베를린 시내에 조성하기로 한 기억의 공간이다. 600만 명 이상의 유대인이 이데올로기에 의해 죽임이라는 배제의 길로 들어섰다. 혐오 대상의 멸종을 위한 1차 방식인 교배를 뛰어넘는 실존의 중단을 선택한 것이다. 그 비극의 역사를 잊지 않아야 한다는,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다짐의 상징으로 베를린 시내에 위치한 추모와 기억의 공간.... 젊은이들과 아이들은 그리도 기억하려고 하는데 잊지 않으려고 하는데, 어른들은 이념으로 편 가르고 권력의 가면을 쓰고 공격한다. 젊은이들과 아이들은 가슴 울컥, 남의 일로 느끼지 않는데, 어른..
2021.07.30 -
좌파라는 이름
토마 피케티의 『자본과 이데올로기』 중에서 나오는 내용...‘브라만 좌파’, 피케티는 선거 좌파는 노동자의 정당에서 고학력자들의 정당이 되었고, 그들의 이름을 ‘브라만 좌파’라고 부르자고 제안한다. 또한 피케티는 이들의 이데올로기를 ‘공화주의적 엘리트주의(élitisme républicain)’라고 규정한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보다 새로운 고학력 특권계급과 그들의 자녀들에게 더 관심을 갖는다는 가설을 제시한다. 그들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것은 “세습특권과 무관한, 기회의 평등과 능력에 근거하고 공익에 복무하는 정당한 엘리트주의”라는 자기 확신이며, 좌파정당은 이 새로운 ‘브라만 좌파’의 최상의 변호인이자 보증인이 된다는 점을 지적한다. 현대 유럽 사민주의 정당의 문제점을 지적한 내용이다. 소제목이 “..
2021.07.30 -
벽
벽 세월이 묻고 묻어야 낯설지 않고 묵직해 보인다. 세월과 씨름하며 부딪히고 안고 튕기며 시간의 색상을 만든다. 그래서 그저 편안하다. 담쟁이 넝쿨도 벽이 있어야 그 벽을 옆 넝쿨에 의지하며 오르면서 흔적을 남긴다. 그 시간의 빛깔은 흉내가 아니라 흔적이다. 우린 그렇게 흉내가 아니라 흔적으로 세상에 빛깔을 만들어야 한다. 그 대단한 변화도 그 시간의 흔적이 남긴 색감 위에서 시작된다. 그리 오랜 시간 각고의 노력이 있어야 색은 변하고 자연과 함께 어울린다. 그리려 하는 사람들은 항상 머리 속에 세상이다. 하지만 세상사는 세상사가 그린다. 내버려둬라...세상사에 맡기면 될 문제다. 바꾸겠다 우기면 그 배는 한 치도 전진하지 못할게다. 그저 맡겨라. 겸손하게. 호들갑 떨지 말자. 변화를...무겁게 받아들면..
2021.06.12 -
꽃
꽃 오만해보이고 싶다. 그냥 피어도 빛 받으면 방자하고 건방져보이는 꽃처럼 독선적이고 싶다. 그냥 피어도 빛 받으면 홀로 모든 곳을 밝게하는 꽃처럼 무능하고 싶다. 그렇게 피었다 비라도 내리고 세차게 바람불면 그저 떨어져 버리는 꽃처럼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다. 바람불면 찰랑이고 볕 받으면 환해지고 한바탕 내리는 비에 흠뻑 적셔지면 더욱 색 깊어지는 꽃처럼 채 피지도 않았는데, 드러내려고 폼내려다 피지 못하는 것들....꽃망울만으로 끝나버릴 것을...그저 잠깐 스쳐가는 봄일 뿐이다...
2021.04.28 -
좋은 풍광
좋은 풍광 가슴이 느끼는 감정으로 삶을 이야기하고, 발목이 느끼는 통증으로 길을 이야기하고, 손목이 느끼는 고통으로 노동을 이야기하자. 눈물이 말하는 슬픔으로 약자와 눈 맞추고, 들썩이는 어깨로 약자와 기쁨을 나누고, 어깨 위로 올린 손으로 약자와 연대를 느끼자. 뛰다 넘어져도 벌떡 일어나 두 손 툭 털고 다시 달리자. 먹먹하다가도 이내 웃으며 서로 보듬고 그 길 가자. 맞잡은 손의 온기로 모진 삶 이겨내는 민초처럼 그렇게... 잠깐이다...사람들이 걸으면 길이 된다. 손 맞잡고...
2021.0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