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1. 26. 15:07ㆍ파놉틱 평화 읽기
2010년 동북아와 한반도 정세에 관한 단상
* 이 글은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동향과 분석' 137호(2009년 11월 26일)에 실린 것입니다.
동북아와 한반도 정세가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한미정상회담 공동기자회견 모두발언에서 스티븐 보즈워스 대북정책특별대표가 12월 8일 방북한다고 밝혔다. 클린턴 국무장관이 아닌 오바마 대통령이 직접 언급한 것은 이례적이다. 그만큼 미국의 입장에서 비확산 아젠다는 핵심적이며, 오바마 대통령 개인에게도 정치적 핵심 아젠다임을 알 수 있다.
오는 12월 8일 2박 3일의 일정으로 시작되는 북미 양자 간 대화는 북핵 문제와 동북아 질서의 변화를 상징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즉 ‘보즈워스 프로세스’의 시작으로 북핵 문제가 새로운 해결국면으로 접어들었음을 의미한다.
» >> 이명박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19일 낮 청와대에서 정상회담 뒤 열린 공동기자회견을 마치고 포옹을 하려고 다가서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한겨레신문 2009년 11월 20일)
‘요동치는’ 동북아질서와 ‘갈 길 잃은’ 남북관계
이번 한미정상회담의 결과는 ① 대북 핵 억지력을 보장받으면서 동시에 국제사회의 새로운 위협에 대한 한국의 적극적 참여 확인, ② 북핵문제에 대한 한미 간 ‘공동접근방식’에 대한 합의와 미국의 북한과의 직접대화 착수, ③ 한국정부의 한미 FTA에 대한 재검토 가능성 수용 등으로 정리할 수 있다. 세 가지 문제 모두 상당한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국제사회의 새로운 위협에 대한 한국의 적극적 참여 확인(그 사례로 아프가니스탄 파병)은 한국도 이제 분쟁지역화 될 수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며, 북핵문제에 있어 ‘공동접근방식’에 대한 한미 간 견해 차이를 좁히지 못했으며, FTA 재협상 가능성을 둘러싼 새로운 논쟁으로 한국사회 내부의 갈등이 재연될 수 있다는 점 등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한미정상회담은 미국의 입장에서 성공적인 것이지만 우리 정부에게는 점수를 후하게 줄 수 없다고 판단된다. 그러나 보즈워스 대표의 방북발표로 북핵문제에 있어 새로운 접점이 마련된 점을 동북아질서와 한반도에 상당한 변화를 예고하는 것이다.
중동의 이란과 함께 동북아지역의 북한은 미국의 비확산 정책의 핵심지역이다. 그리고 미국의 아시아 중시정책과 함께 G2로 지칭되는 중국의 부상은 동북아지역의 새로운 변화를 암시하고 있다. 그런 차원에서 북핵 문제의 해결을 통한 동북아 및 동아시아 공동체 구축문제는 향후 핵심문제가 될 것이다. 즉 북핵문제 해결이 동북아질서의 변화와 직결된다는 것이다.
>> 이명박 대통령이 10월10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원자바오 중국 총리, 하토야마 유키오 일본 총리와 한·중·일 정상회담을 하기에 앞서 손을 맞잡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청와대사진기자단(한겨레21, 제783호)
동북아지역은 세 가지의 커다란 흐름이 전개되고 있다. 첫째, 북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각적 접촉이 실행되고 있다. 12월 8일 보즈워스 대표의 방북을 시점으로 북미 양자대화가 시작된다. 또한 일본은 납치문제와 별개로 북한과 정상회담의 가능성을 흘리고 있다. 중국은 북중관계 60주년을 계기로 더욱 결속을 강화하고 있다. 즉 북핵문제의 해법과 동북아지역에서의 자국의 이익을 확보하기 위한 다각적 흐름이 집중적으로 전개될 것이다.
둘째, 북-중-러 경제협력이 급속히 진전되고 있다. ‘나진-핫산 프로젝트’, ‘압록강 프로젝트’ 등 3국의 다양한 경제협력사업이 시작되고, 그 진행속도가 점차 빨라지고 있다. 이는 중국의 동북 3성과 러시아의 극동지역 개발을 목적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북한을 거점으로 활용하려는 것이다. 이러한 흐름에도 불구하고 꼬여 있는 남북관계로 인해 한국은 전혀 개입을 하지 못하고 있다. 즉 동북아 에너지 및 물류체계 구축과정 및 북한과의 경제협력 모두 우리의 의도와 무관하게 진행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셋째, 미-중-일 3국 협력레짐을 통한 동북아 또는 동아시아 지역의 공동체 구상이 단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세계경제의 핵심지역이며 반테러․비확산 등 세계적 위협요소에 대한 대응차원에서 동아시아지역은 중대한 의미를 갖는다. 미국과 중국은 이 지역에서 자국의 이익을 확보하기 위해 다각적 모색을 진행하고 있다. 그 모양새는 미-중의 전략적 관계 구축과 미-중-일 협력레짐이 상위에 배치되고, 6자회담과 아세안+3 등 동아시아 지역회의 구조의 결합을 통한 지역공동체 구상으로 나타날 것이다.
이러한 동북아지역의 흐름 변화에 대응하여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북핵문제와 지역문제에 대한 한국의 외교적 이니셔티브를 확보하는 것이 선결적이다. 그러나 현실은 동북아지역의 변화하는 흐름에 한국 정부가 전략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동북아질서는 요동치고 있는데 그 질서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남북관계는 갈 길을 잃어버렸다. 때마침 북미 양자 간 대화가 시작된 만큼 북한과의 관계를 복원할 수 있는 환경도 조성되고 있다.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그 기회를 확보하는 방법은 남북관계의 복원으로부터 출발되어야 한다.
‘보즈워스 프로세스’와 ‘기로에 선’ 북핵문제
>> 스티븐 보즈워스 미국 대북정책 특별대표(왼쪽 둘째) 일행이 5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별관을 방문해 위성락 외교통상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왼쪽 셋째) 등과 인사하고 있다. 왼쪽부터 성 김 미국 6자회담 특사, 보즈워스 특별대표, 위 본부장, 황준국 외교부 북핵외교기획단장(악수하는 이).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한겨레신문 2009년 9월 6일)
오바마 대통령은 11월 14일 “(북한이 핵 개발을 포기하면) 미국은 북한에 지금과는 다른 미래를 제공할 준비가 돼 있다. 북한에게 분명한 길은 6자회담 복귀와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한반도의 비핵화”라고 얘기했다. 뒤이어 19일 클린턴 국무장관은 북한이 비핵화를 약속하면 관계정상화, 평화협정, 경제지원 등이 검토될 것이며, 이를 6자회담 틀 내에서 진행하자고 제안했다. 바로 다음날 미국 국무부 고위당국자는 북한이 6자회담으로 돌아오겠다는 ‘분명한 암시’가 있었다고 밝혔다.
이와 연동하여 북한은 11월 17일 노동신문을 통해 남북관계 발전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절박한 과제”라고 밝힌 뒤, 이틀 후 현정은 현대회장을 통해 금강산관광 관련 당국자 간 회담을 제의했다. 그리고 23일 노동신문을 통해 북한과 미국 간의 평화보장 체제를 수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제 미국의 ‘보즈워스 프로세스’가 착수됨에 따라 북핵 문제 해결의 구체적인 방법과 방향이 결정될 것이다. 미국은 비핵화를 전제로 관계정상화, 평화협정, 경제지원을 공언한 만큼 북한도 이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 시점을 강조하는 이유는 미국의 국제․국내적 환경 때문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2010년 연두교서를 통해 비확산․반테러에 대한 명확한 입장과 비전을 밝힐 것이다. 뒤이어 4월 핵 안전보장 정상회의와 5월 NPT(핵확산금지조약, Nuclear nonproliferation treaty) 재검토회의가 진행된다. 그리고 11월 미국 중간선거가 실시된다. 내년 미국은 비확산문제와 관련 일정한 국제적 성과를 만들어내야 한다. 가장 가깝게 다가와 있는 것이 북핵문제이다. 북핵문제의 해결은 이란 핵문제 해결에 긍정적으로 기능할 것이다.
또한 오마바 행정부는 2011년에 반테러 문제에 대한 성과를 만들어내야 한다. 이 해 상반기에 반테러 검토회의가 예정되어 있으며 ‘9․11 테러’ 10주기이다. 따라서 2010년 미국은 비확산 문제에 있어서 구체적 성과물을 만들어내고 반테러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
이번 보즈워스의 방북으로 북핵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2002년 10월 제임스 켈리 국무부 차관보가 방북한지 7년 만에 성사되는 미국 대표의 북한 방문이다. 미국이 보스워즈 방북을 결정하게 된 배경은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프로세스가 의미 있게 진전될 수 있다는 판단에 근거한 것이다. 이미 미국은 보스워즈 방북 이후 뉴욕채널을 통한 지속적인 대화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최근의 미국 행보를 볼 때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전략적 방침과 세부적 프로세스가 만들어졌음을 감지할 수 있다. 따라서 미국은 6자회담과 북미 양자회담을 병행하면서 빠른 시일 내에 북핵문제에 대한 해법을 도출하려고 주력할 것이다. 즉 이제 북핵문제가 어떤 국면으로 전개될 것인지의 기로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한국의 역할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미동맹이 굳건하며 북핵문제에 대한 밀접한 협의를 진행하고 있으니 문제없다는 식의 접근은 안이한 발상이다.
미국의 핵심적 세계전략은 반테러 비확산이다. 이 상위 아젠다 아래 동맹 및 우방과의 관계가 놓여있다. 따라서 한국정부의 의지와 무관하게 북핵문제가 전개될 수 있다.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로서 한국정부가 북핵문제 해결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되물어봐야 한다. ‘그랜드 바겐’으로 지칭되는 한국의 북핵 해법은 어느 국가로부터도 수용되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그랜드 바겐’이 안고 있는 문제점 때문이다. 북핵 해결의 핵심적 문제는 신뢰에 있다. 신뢰를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단계적인 꾸러미를 만들어서 동시행동과 상호등가성의 원칙에 의해 진행하는 것이다.
즉 모든 것을 일괄적으로 타결한다고 해도 그 진행과정에 대한 신뢰 확보장치가 없다면, 원점으로 회귀할 수 있다. 우리는 이미 지난 북핵 협의과정에서 확인했다. 따라서 문제는 신뢰다. 그 신뢰의 단초가 이번 북미 양자대화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한국정부도 신뢰를 확보하기 위해 남북관계 복원에 착수해야 한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남북관계 개선 노력은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에 유의미한 역할을 할 것이다.
남북관계의 새로운 계기로서 2010년 상반기
이제 대북정책의 점진적 변화를 통해 남북관계의 새로운 돌파구를 만들어야 한다. 내년 6월은 6․15 공동선언 10주년이며 동시에 한국전쟁 발발 60주년이 된다. 내년 6월은 분단과 대립을 상징하는 한국전쟁과 평화와 대화를 상징하는 6․15 공동선언이 동시에 겹치는 지점이다. 적어도 2010년 상반기에 남북관계의 전환적 계기를 만들고 안정적이며 협력적인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은 궁극적으로 한반도 평화체제의 방향성을 명확히 해야 한다.
북한은 2012년 ‘강성대국’ 건설이라는 구호를 현실로 전환시켜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 다다르고 있다. 2010년 대외관계의 획기적 돌파구(북미관계 정상화, 북일 정상회담 등)를 통해 외부의 자원을 확보해야만 한다. 이런 성과들을 통해 북한정권과 후계구도의 안정성을 도모할 수 있다. 적기는 2010년 상반기다. 남북한 모두 이 계기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그런 차원에서 우리 정부는 남북관계 복원을 위한 ‘평화 프로세스’를 개시해야 한다. 보즈워스의 방북 결과에 따라 많은 변수가 발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결과에 일희일비하기 보다는 정부 차원의 명확한 로드맵을 구축하고 일관되게 추진해야 한다. 즉 이명박 대통령은 내년 시정연설을 통해 남북이 공히 합의한 6․15와 10․4 선언 이행 의지를 천명해야 한다. 그리고 6자회담의 복원과 동시에 남북대화와 각종 협력 사업을 복원․확대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남북정상회담 개최문제를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추진할 필요가 있다.
내년 상반기를 현재와 같은 상황으로 방치한다면 동북아지역에서 한국의 외교적 발언권은 급속하게 약화될 것이다. 내년 상반기는 이명박 정부의 임기 절반이 지나는 시점이다. 그 이전에 어떤 형태의 가시적 성과를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북핵문제와 남북관계는 우리의 의지와 무관하게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급격하게 변화되는 동북아질서와 여전히 제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남북관계의 불균형성을 탈피해야 한다. 6자회담(북핵문제 해결), 북미 양자대화(관계정상화), 남북대화(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가 선순환 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그 적기는 지금부터 내년 상반기다. 이 시점에 한반도의 전환적 계기를 만들고 가시적 성과를 보여줘야 한다.
실용적인 너무나 실용적인(?)
이명박 정부는 중도실용을 얘기하고 있다. 아마도 실용은 정책의 유용성·효율성·실제성을 추구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그렇다면 현 정부의 대북정책이 유용한 것인지, 효율적인 것인지, 실제적으로 실현되고 있는 것인지 검증해야 한다. 그러나 아무리 살펴봐도 실용적이지 못하다. 동북아지역은 많은 변화를 예고하고 있지만 남북관계는 여전히 답보상태다. 이념으로 무장된 대북관을 가지고 실용적으로 접근하겠다는 것은 실용 그 자체가 레토릭에 불과함을 암시한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서는 진정으로 실용적인 접근이 요구된다. 그것은 실사구시(實事求是)다. 있는 현실을 직시하고 그 현실에 발을 딛고 나가야 한다. 변화하는 현실이 아닌 냉전적 대북관에 기초한 이념적 접근으로 한반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그리고 누구를 위한 실용인지도 곱씹어봐야 한다. 남북관계가 안정적으로 진전되어 안보위협을 해소하고, 남북협력의 청사진을 통해 공영의 길을 추구하고, 한반도 평화체제의 구축을 통해 21세기 새로운 비전을 현실화하는 것이 실용적 접근일 것이다. 땅에 발을 딛고 서 있지 않으면 넘어지기 마련이다. 이명박 정부는 현 대북정책이 말로만 치장된 ‘실용적인 너무나 실용적인(?) 접근’이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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