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최순옥 선생님] 지역 풀뿌리 운동 10년

2010. 3. 4. 13:14eunpyeong

 

 

 

지역 풀뿌리 운동 10년, 최순옥을 만나다.

"지역 일꾼 1세대는 이제 다른 역할을 해 주어야 한다", 새로운 지역 비전을 만들어야

 
부미경
 
 
 
10월 어느 날, 동네에 새로 생긴 ‘마을까페’에서 오랫동안 최순옥(45세)을 붙들고 수다를 떨었다. 달그락거리는 설거지 소리, 까페를 찾은 사람들과 까페지기들의 웃음소리를 배경삼은 인터뷰였다. 아니, 인터뷰라기보다는 ‘어떻게 지냈니, 뭐해?’, ‘아이들은?’ 하면 고구마 줄기처럼 온갖 이야기가 쏟아지는, 오랜 친구와의 만남처럼 최순옥은 동네이야기를 두고 참 많은 수다를 풀어놓았다.

“이성적인 비판보다는 관계 안에서 긍정의 에너지를 만드는 내 감수성이 동네일 하는데 잘 맞았어요.”
 
35살, 두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 유치원생일 때 동네일을 시작했으니 햇수로 10년째다. 1999년 열린사회은평시민회가 실업극복 국민운동본부 지원으로 은평구 내 실직가정 상담과 지원 사업을 벌일 때 그 일을 맡으면서 인연을 맺었다.
 
2000년 갈현2동 폐기물 적환장으로 쓰던 갈곡리 공원을 아이들의 놀이터와 주민들의 쉼터로 되찾기 위한 활동을 했고, 이때부터 시작한 마을축제가 9년째다. 아이들을 위한 여름 영화제도 8년째 이어지고 있다. ‘갈곡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아래 갈사모)’ 회원들은 지난 2005년 갈현1동 주민자치회관이 만들어질 때 ‘녹색가게’ 공간을 확보해 자원활동 중이다. 갈현동에서 갈사모 네트워크도 넓어졌다. 2003년부터 ‘갈사모’ 독자적으로 진행하던 축제도 지역유지들이 참여하는 주민자치위원회와 손잡고 공동으로 치르고 있다.
 
“기존 민주화운동의 관행에서 벗어나 관을 일방적으로 비난하지 말고, 지역 발전을 위한 그림에 동의한다면 한계가 있더라도 협력하자는 생각이었죠. (발전 전략이) 관에서 나오지 않는다면 우리가 먼저 나서서 제시하자. 그 결과물로 제대로 된 행정, 좋은 프로그램을 통해 주민에게 이익이 돌아간다면 최대한 지원한다고 할까요.”
 

 

 

▲     ©은평시민신문

 

 

2010년 민관파트너쉽 수준은 어디까지 왔을까?
 
“지역사회의 중심 흐름(메인 스트림)은 웬만해서는 바뀌지 않아요. 지역사회의 구조화된 무능과 보수화된 관료적 질서가 쉽게 잘 안 바뀌지요. 주민자치사업의 파트너인 행정기관이나 공무원은 의욕적, 진취적이지 않아요. 10단계에서 매번 1 ~2단계 일을 반복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라며 “은평구 행정은 고인 물처럼 사고의 대전환을 요하는 어떤 계기가 없었다.”고 토로한다.
 
갈현동을 중심으로 지역운동의 대안 모델을 만들어냈다. 그의 표현대로 이제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세력으로 ‘지역에 등록’도 했다. 벼룩시장, 영화제, 마을축제로 주민들과 만나는 공간이나 접점을 넓혀나가고, 주민 리더들이 행정에 참여해 주민들의 문화적 요구를 풀어내는 것이 이제는 당연한 주민 권리로 특별하지 않은 일상 활동으로 자리 잡았다.
 
그 동안 지역시민단체들은 서로 연계해 ‘은평지역사회네트워크’를 만들고 벼룩시장, 어린이날 축제, 마을축제를 해왔다. 하지만 10년 지역운동에 대한 최순옥의 평가는 냉정했다. 그만큼 고민도 깊었다.
 
“주민 조직을 통해 주민이 성장하고, 지역사회에서 건강한 삶과 건강한 시민의식이 보편적인 흐름으로 자리 잡았는가에 대해서 회의적이기 때문이에요.” 최순옥은 “주민 속으로 들어가 사업을 하자는 10년 전의 초심은 변하지 않았지만요.”라며 고민을 토로했다.
 
“참여하는 시민들, 함께하는 주민들이 지역사회 운영능력을 실질적으로 키워나가는 활동, 그 결과 문화, 자치 시민교육이 많아지고, 그런 사람이 많아지는 지역사회가 건강”한데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 ‘지역’이라는 화두로 공감대를 형성하는데 10년이 걸렸다면, 이제 막연한 공감대를 구체적인 지역사회 활동이나 ‘정책’으로 풀어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     © 은평시민신문

 

 

“어느 선배가 이런 말을 했어요. 지역운동 1세대는 이제 다른 역할을 해 주어야 합니다. 지방정치의 교두보로 진출해 정책적 영역, 정치적 활동영역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지역운동도 고여서 썩는 물이 되고 맙니다.”
 
최순옥은 요즘 세대론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이제 지역 일꾼 1세대는 다른 역할을 해주어야 할 때예요. 일세대가 지방정치의 교두보로 진출하지 않고 후배들이 다양하게 활동할 영역이나 차지해 자기 앞가림이나 하고 있다면 지역사회의 건강한 시민자원이 성장할 가능성을 빼앗는 일이지요.”
 
“원래 시민사회단체들은 본래의 역할인 제도 개선, 권력 감시, 비민주적인 행정질서 개선을 주된 사업으로 해야 하지만, 열린사회은평시민회의 활동은 그러지 않았어요. 이제 10년 동안 지역 활동을 한 성과로 만들어진 지역네트워크를 통해 행정 모니터링이나 정책 감시 등 지방자치활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든다면 5~6년 전보다는 힘 있게 추진할 수 있는 자신감이 있습니다. “
 
그 동안 지역운동 대안모델을 만드는 일에 주력했다면, 이제는 필요에 의해서라도 목적의식적으로 낡은 질서를 바꾸기 위해 결의하고 힘을 모아낼 때라는 이야기다. 각오가 느껴졌다.
 
지난 10년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 10년, 새로운 지역 비전을 만들기 위해 최순옥은 쉼 없이 ‘지역활동가의 건강한 에너지’를 보여줄 것이다.

기사입력: 2009/12/22 [11:38]  최종편집: ⓒ 은평시민신문 Copyrights ⓒ epnews.net 이 기사의 저작권은 은평시민신문에 있습니다. 무단 전재와 상업 목적의 재배포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