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이 살맛나야 지역이 건강해진다] 골목 파고드는 대기업

2010. 3. 4. 13:28eunpyeong

 

 

골목 파고드는 대기업 유통, 영세 상인들 울상

북가좌, 증산, 수색 인근 슈퍼사업자들 이마트 입점에 사업조정신청 내고 안간힘

 
부미경
 
 
20년 넘게 슈퍼에서 잔뼈 굵었건만
 
“이 곳에서만 20년이 넘었다.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지금 농협 자리에 있던 슈퍼에 취직해 직원으로 일하다 3년 전에 가게를 인수해 지하매장으로 옮겼다”
 
김 모씨(42세)는 슈퍼마켓 직원으로, 이제는 슈퍼마켓 사장으로 내리 20년 이 분야에서 잔뼈가 굵었다. 11일, 10분 정도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서너 명의 손님이 다녀간다.
 
“38개, 46개짜리고, 15kg입니다. 대봉은 54개고요”, “익으면서 줄어들죠, 지금 팽팽할 때죠. 순창 게 좋아요. 맛도 괜찮고” 손님의 이런 저런 말에 응대하는 솜씨가 베테랑급이다. 지나가던 택시운전사가 차를 세워두고 물건을 보다 사간다. 길 건너 차 뒤 칸에 짐을 부려준다. 야채를 사러 나온 아주머니에게 파와 갓을 담아주고, '오징어는 생물'이라는 말을 건넨다. 김 사장은 이렇게 매장 안이 아니라 바깥에서 오전시간 슈퍼마켓 일을 보고 있다.
 
그는 갈현동에 사는 은평구 토박이기도 하다. 일터가 이곳이다 보니 그는 “인근 주민들을 많이 안다. 저쪽 개발되는 통에 많이 이동하시잖아요. 그래도 여기 사는 사람들과 안면이 많고 옛날부터 거래하던 단골도 많다.”고 말한다. 
 

▲     © 은평시민신문

 

그는 지난 10월 이마트가 개점한다는 말을 듣고  골목상권을 위협하는 것 아니냐는 판단에 따라 북가좌동 인근 영세 자영업자 40명의 서명을 받아냈다. 처음에는 중소기업청에 사업개시 중지를 요구했지만 반영되지 않았고, 지금 상생조정안을 내 협의 권고를 받은 상태다.
 
장사가 어떠냐는 질문에 “이마트가 생겨서 그런 건지는 아직 모르겠고, 방송에서 괜찮다 좋아졌다 하지만 명절 지나고 나서 힘들다.”고 말하며 근처에 SSM 홈플러스가 들어온 지 2년 4개월이 되고 12년 된 GS마트가 있고, 남가좌동에는 롯데마트가 들어왔다고 설명한다.  
 
그는 “대기업이 밀고 들어오는데 가격은 경쟁할 수 있는데 품목에서 밀린다.”고 말하며 “대기업은 이것저것 다 하는데다 사람들이 이미지와 메이커를 쫓으면서 소규모 점포가 어렵다. 행사품목은 싸지만 가격이 싸다고 할 수도 없는데도 사람들이 무뎌지다보면 그곳이 자리 잡는 것 같다.”고 덧붙인다.
 
그는 모 대학식당에 10년 동안 야채 등을 납품해 왔는데 3개월 전 L 대기업이 하는 업체에 자리를 뺏겼다고 한다. “개인은 큰 회사에 뺏긴다. 우린 약자다. 어려워진다. 큰 회사는 계속 덩어리가 커지는데 규제가 필요한 거 아니냐?” “이마트 앞에서 데모라도 한다면 힘을 보탤 생각”이라는 그의 항변은 이유가 있었다.
 

 

 

▲     © 은평시민신문
SSM 홈플러스에 밀려나 다시 시작, 이제는 대형마트때문에 죽을 맛
 
증산시장 근처에서 슈퍼마켓을 하는 박 아무개씨(56세). 그는 2년 전 신사동에서 10년 가까이 터 닦고 자리 잡았던 슈퍼마켓을 SSM 홈플러스에 내주고 옮겨왔다. 집기시설비 명목으로 권리금을 받았지만 떠밀려났다는 생각이다. 임대료를 올리려는 상가 주인의 암묵적인 압력도 있었던 데다 자신이 그 자리를 내놓지 않으면 바로 인근에 들어오려고 알아보는 걸 보고 그곳에서 장사를 접기로 했던 것.
 
그의 말에 따르면 SSM 홈플러스는 90% 외국 자본으로 본사 물류창고와 영업망을 갖고 직접 경영한다. 컴퓨터 망을 통해 모든 지점의 오전, 오후 저녁시간대 시세를 관리한다고 한다. 한때 그 회사 물품 공급을 받고 로열티를 주고라도 영업을 할 수 없을까도 알아보았지만 직원을 파견하는 직영체제로 독립적인 영업을 인정하지 않는 시스템이라고 한다.
 
그가 새로 자리잡은 이곳은 수색증산뉴타운 재개발로 2~3년 후면 대부분 상가가 문을 닫아야 한다. 그는 ‘조합과 협의 여하에 따라 권리금을 받아 나갈 수 있고, 최근 용산사태로 영업보상비가 2개월에서 3개월로 늘어났다.’며 비교적 낙관하고 있었다. 문제는 그 2년 기간을 두고 이마트가 미리 들어서는 바람에 초죽음이 되게 생겼다는 것이다.
 
그는 여러 차례 “방법이 없다.”는 말을 내뱉었다. 그러면서 “등록제는 누구든지 하겠다고 하면 받아주는 거다. 허가제로 바뀌어야 한다. 정치인들이 빨리 정신 차려서 등록제가 아니라 허가제로 해야만 자치단체에서도 달라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법이 허가제로만 되어 있었다면 상인들이 머리띠 두르고 데모하는 상황을 염려해 자치단체가 쉽게 허가를 내주지 못할 것이고, 이마트가 들어오는 것도 간단치 않았을 거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     © 은평시민신문

 

허가제로 법 바꾸어야, 서민경제 위한다는 건 말뿐
 
이마트가 개점하기 전 북가좌동, 증산, 수색 등 서부지역 영세슈퍼사업자 136명이 중소기업청에 사업조정신청을 냈다. 중소기업청은 사업개시 중지를 할 경우 대형마트가 입는 손실이 크므로 영업은 개시하되 상생조정안을 놓고 협의를 하도록 권고하는 결정을 했다. 이마트가 상대방이 될 경우 영업 개시 중지 권고는 전국적으로 단 한 차례 뿐일 정도로 영업중지 권고 결정은 드물다.
 
슈퍼사업자 대표들은 대전 중소기업청을 오가며 ‘무료배달 금지, 전단지 세일행사 제한, 현수막 벽보 차량홍보, 홍보도우미 금지, 사은품 경품행사 금지, 영업시간 제한, 술 담배 판매 금지’ 등 6가지 조정안을 놓고 이마트 측과 협상 중이다. 10일 경 이마트 앞에는 개장을 알리는 현수막 없이 조용히 영업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며칠 후 수색을 지나는 버스에 수색점 개점을 알리는 홍보 광고가 실리기 시작했다.
 
박사장은 ‘2~3년 후면 이 지역 중소 영세 상인들은 자연스럽게 존폐의 기로에 처하고 실제 이주가 이루어지면 장사를 하기 힘든 상황인데 이렇게 벼랑으로 모는 이유를 모르겠다.’며 “아직 상권이 형성되려면 5년은 지나야 함에도 미리 선점하고, 법이 바뀌기 전에 안착하려는 대자본 횡포가 비정하다“고 말한다.
 
박사장은 “골목 상권이 살아있고 서민경제가 활성화 되어야지 이마트 들어선다고 집값이 오르겠나”라며 “미국처럼 멀리 떨어져서 따로 상권을 만든다면 모르지만 골목골목까지 파고 들어와서 영세상인 죽이고 나면 식료품이든 뭐든 모든 게 대기업 유통업자들 손에 좌지우지되는 거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들에게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이마트 수색점이 126호점이라며 이렇게 많다는 것도 놀랍지만 한개 구에 두 곳이나 들어선 곳은 은평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허가제가 아닌 등록제 상황에서 중소기업청에서 사업개시 중지를 내리지 않는 한 구청은 요건사항과 구비서류만 갖추면 사업허가를 다 내주어야 한다는 점도 이해한다고 말했다. 자칫하면 대기업으로부터 손해배상청구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은평구청이 중소기업청에  ‘수색 인근이 허허벌판으로 마땅한 구매처가 없다. 주민 생활편의 측면에서 도움이 되고, 지역주민들이 지역이 활성화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취지로 말했다는 사실을 전해듣고, 그는 “골목상권 살리고 서민경제 위한다고 말만 할뿐 대형마트 위한 쪽으로 다 짜고 치는 고스톱이다.”며 깊은 배신감을 드러냈다.
 
수십 년 골목 상가를 지키며, ‘고지식해 큰 돈은 못 벌었지만 폭리를 취하지는 않았다. 내가 버텨서 인근 물가를 잡았다.'고 자부하는 그. 몇 년 후면 장사를 접겠다고 마음먹었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다’ 싶어 영세 자영업자 자구책을 위해 서명을 받고 나설 수밖에 없었다. 막막한 현실에 어디에 하소연해야 할지 모른 채 답답해 하는 지금 대한민국 영세 자영업자의 자화상이다.

기사입력: 2009/11/18 [11:00]  최종편집: ⓒ 은평시민신문 Copyrights ⓒ epnews.net 이 기사의 저작권은 은평시민신문에 있습니다. 무단 전재와 상업 목적의 재배포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