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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주를 여는 생각
이것을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 있을까?셸던 월린 지음, 우석영 옮김
후마니타스 펴냄‘부정선거’ 논란, 전체주의를 연상시키는 맹목적 여론몰이 같은 일들이 한국 같은 후발 민주주의 국가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2000년 11월 미국 대선 당시 플로리다주에서 투표방해 등 여러 불법행위가 있었다는 주장이 쏟아졌다. 재검표가 시작됐지만, 재검표가 끝나기 전 연방대법원이 조지 부시 당시 공화당 후보의 승리를 선언하고 앨 고어 민주당 후보가 이를 수용하면서 ‘부정선거’ 논란은 봉합됐다. 1년 뒤 9·11 사태가 터지자 미국 국민들은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목표에 일사불란하게 합의한다. 2003년 부시 정권은 대량살상무기 보유를 명분으로 이라크를 침공하지만, 결국 그런 것은 없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것은 자신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민주주의 체제라고 자랑스레 떠벌리는 사회에서 일어난 일이다.” 미국의 원로 정치철학자 셸던 월린 전 프린스턴대 교수는 <이것을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 있을까?>에서 미국의 현 정치체제가 기껏해야 ‘관리되는 민주주의’, 냉정하게 말하면 ‘전도된 전체주의’의 징후를 보이고 있다고 진단한다. 보수 기득권층이 이 체제의 ‘주범’이지만, 일반 시민들 역시 ‘공범’이다. “간혹 부패 정치인들에 대해 투덜거리지만 정치적 동면에 들어갔다가 (선거 때만) 투표하러 나오는 시민은 자기 자신을 조작하기 쉬운 대상으로 만들고, ‘민주주의란 하나의 유용한 환상’일 뿐이라는 엘리트들의 민주주의관을 확증”시켜주기 때문이다.기득권층의 권력남용을 제어하고 민주주의를 되살릴 수 있는 것은 시민들의 변화뿐이다. “민주주의의 생존과 번영은 정치적 수동성을 벗어던지고, 그 대신 데모스(인민·민중)의 성격을 획득하게 되는 ‘사람들’에 달려 있다. 민주주의자가 된다는 것은 곧 자신의 자아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안선희 기자 shan@hani.co.kr
미국은 자국이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민주주의 체제라고 여기며, 그 ‘민주주의’를 다른 나라에 ‘수출’까지 하려 한다. 하지만 현재 미국의 정치체제는 ‘전도된 전체주의’로 나아가고 있다. 대중들은 선거 때만 반짝 관리되는 ‘유권자’에 머문다. |
대중을 ‘탈동원화’하고
기업권력에 국가권력이 종속된다
민주주의는 억압되지 않고 ‘관리’된다 무엇보다 개개인의 ‘변신’이 필요하다
자아의 민주화가 없다면
정치적 민주화란
형식적인 것에 머무르기 때문이다 각종 여론조사 등을 통해 공표되는 ‘유권자 양극화’는 실제 사회의 양극화가 표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장치들이다. “여론조사들은 무의미할 정도로 광범위한 질문들에 대한 답변을 수집한다. ‘대통령이 업무를 잘 수행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같은 질문들 말이다. 대체 이런 질문들에서 어떤 실질적인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단 말인가? … 중도파의 표를 얻기 위한 경쟁, 이른바 무소속, 부동층의 표를 얻기 위한 경쟁 속에서 사회적·교육적·경제적 불평등이라는 쟁점은 수면 밑에 계속 침잠된 상태로 남아 있고, 정치적 언어를 통해 환기되지 못한 채 정지돼 있다.”이 체제에 맞설 것으로 기대되는 민주당은 ‘사이비 야당 정치’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은 ‘정당은 선거에서 승리하고자 존재하는 것이지, 좋은 사회의 비전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는 게임의 규칙의 덫에 걸리고 말았다.” 민주당이 ‘중도적 입장이라는 최면’에 걸리면서, 가난한 사람, 소수자, 노동계급, 반기업주의자, 환경운동 지지자, 반제국주의자는 자신들을 대변할 야당을 찾을 수 없게 됐다. 이런 사태에는 ‘제3 정당’이라는 대안이 부재한 것도 악영향을 끼쳤다. 월린 교수는 민주당이 선거에서 이긴다 해도 “기업은 민주당이 사회의 방향을 큰 폭으로 바꾸는 일을 정치적으로 불가능한 일로 만들어 버릴 것”이라고 지적한다. 오바마 대통령의 당선 뒤 이런 예언은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민주주의의 어원인 데모크라티아(demokratia)는 데모스(demos)의 통치(kratia)라는 의미다. 고대 아테네에서 데모스는 귀족, 부자, 특권층이 아닌 농부, 장인, 상인 등 일반 민중, 인민을 가리키는 용어였다. 지은이는 “민주주의는 평범한 사람들이 정치적 존재가 됨으로써, 그리고 권력이 그들의 희망과 필요에 반응하게 만듦으로써, 그들이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조건에 관한 것이다. 민주주의는 자신과 타인들의 삶과 삶의 환경에 직접적이고 중대한 영향을 끼치는 권력들을 함께 관리하는 일에 관한 것이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시민 개개인의 ‘변신’이 필요하다. “자아의 민주화가 없다면 정치적 민주화란 그저 형식적인 것에 머무를 것”이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민주주의 재활성화’를 위한 구체적 실천 방안으로 시민들이 자기 지역에서부터 풀뿌리 민주주의에 참여하고 이를 국가 차원으로 넓혀갈 것, 자신의 지식과 기술을 민주적 가치들과 결합시키고 기업권력에 대한 규제, 복지제도, 경제민주화 조처들을 활성화시킬 ‘민주적 성향의 관료’라는 새로운 엘리트층을 육성할 것, 공중파를 다시 공적 소유로 만들고 비상업 방송을 증진시킬 것 등을 제안한다. 평생 민주주의를 연구한 노학자의 통찰력과 비판정신이 엿보이지만, 같은 내용이 상당부분 반복되는 것이 단점이다. 체계적인 정치이론서라기보다는 정치비평서에 가깝지만, 현학적인 문장 때문에 가볍게 읽기는 어렵다.안선희 기자 sh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