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 옹프레 지음, 전혜영 옮김] 우상의 추락

2013. 9. 16. 16:41Book

 

 

프로이트의 이론들 어디까지 믿으세요?

등록 : 2013.09.15 20:32수정 : 2013.09.16 11:23

       

 

한 주를 여는 생각

우상의 추락
미셸 옹프레 지음, 전혜영 옮김
글항아리 펴냄

서구 지성사에서 지그문트 프로이트(1856~1939)는 정신분석이라는 거대한 블루 오션을 20세기와 함께 열어젖힌 남자로 평가된다. 그가 발견한 걸로 간주된 것은 무의식이었다. 1900년 발표한 <꿈의 해석>은 그 무의식의 텍스트다. 그가 이룩한 ‘정신분석학의 성채’는 저 진화론의 창시자 찰스 다윈이 부럽지 않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리비도(성 충동), 거세 공포, 근친상간 욕망 같은 그의 용어들은 문학과 대중문화에서도 깊숙한 그늘을 드리웠다.

하지만 프랑스의 철학자 미셸 옹프레(54)는 프로이트의 성채는 거짓과 환상 위에 건축됐다고 주장한다. 그의 신작 <우상의 추락>은 한 세기를 풍미하며 우상이 된 이 남자, 프로이트에 대한 논쟁적이고 비판적인 평전이다.

2006년에야 연구자들 열람이 가능해진 프로이트가 지인들에게 보낸 편지를 훑고 그의 저작들을 연대순으로 정독하는 방법을 통해 옹프레는 ‘권력의 화신’이자 ‘트라우마로 가득 찬 한 인간’, 프로이트의 민낯을 드러내고자 한다.

프로이트는 임상사례를 글로 발표할 때마다 노상 자신의 분석이 성공적 효과를 봤다고 썼다. 한스도 도라도 안나 오(O)도 쥐인간도 치료했다고 했다. 하지만 그가 임상사례를 발표해버린 탓에 유명세를 치르게 됐던 그 환자들 중 누구도 완치된 예는 없었다. 옹프레의 말을 옮기자면, 프로이트는 업적을 위해 임상사례를 부풀렸으며, 이론의 독창성을 인정받기 위해 자신이 영향받은 선학들의 존재를 부인하고 그 흔적을 지웠다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의 히트 용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대해서도 옹프레는 “모든 사람에게 일반화하기 어려운 현상”이라고 단언한다. 아들이 어머니에게 성적 욕망을 느끼고 아버지를 살해해야 할 적으로 본다는 이 콤플렉스는 프로이트 개인의 아주 독특한 가족사에서 비롯된 프로이트 자신의 이야기일 뿐이라고까지 주장한다. 여성을 ‘위축된 페니스’로 규정짓고 여성이 남근을 선망한다는 주장은 또 어떤가. “프로이트의 이론들은 아무리 복잡해 보여도 확실한 공통분모를 지녔다. 바로 여성 혐오와 남성 우월주의에 기반한다는 점이다.” 

허미경 기자 carmen@hani.co.kr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지그문트 프로이트. <우상의 추락>의 지은이 미셸 옹프레는 “지난 1세기 동안 역사적으로 미화된 프로이트의 신화적 이미지를 깰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글항아리 제공

“개인사를 일반화한 남성우월론자” 프로이트 난타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은 ‘남성 우월주의’를 바탕에 깔고 있다. 지은이는 프로이트 저작을 문학적으로 구축된 전기로 읽어야 하며, 이를 통해 인간 프로이트를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정해진 운명, 그것이 바로 해부학이다.”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지그문트 프로이트(1856~1939·사진)가 1912년 ‘연애에 관한 일반적인 과소평가’란 글에 쓴 구절이다. 여성은 여자로 태어난 신체적 조건에 순응하며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프로이트는 여성이 직업을 선택하고 경제적 권한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는 여성의 신체 특징을 지적하며 페니스(남근)가 중심이 되는 자신의 개념 수립에 방해가 된다고까지 말했다. 1883년 약혼녀에게 보낸 편지에선 여성은 아름다움과 친절함을 미덕으로 여겨야 하며 그 이상을 바라면 안 된다고 적었다. 1917년 ‘시와 진실에 관한 유년 시절의 추억’이란 글에선 “여성은 남성의 페니스를 부러워했고 결국 그런 선망이 남성을 향한 적대감으로 이어졌다”고 했다.

<우상의 추락-프로이트, 비판적 평전>(글항아리 펴냄)에서 지은이 미셸 옹프레(54·프랑스 캉 자유대학 교수)는 요컨대 이렇게 얘기한다. “프로이트가 보기에 여성의 문제는 남성이 아니라는 데 있었다. 프로이트의 의식세계에서 여성은 그저 남근이 부재한 남성이며, 페니스는 곧 절대적 법과 같은 권력이었다.”

저 유명한 여성 환자 도라의 사례를 보면 이런 남근 우월주의가 잘 드러난다. 1900년 어느 날, 열여덟 살 도라는 아버지 손에 이끌려 프로이트 진료소를 방문했다. 도라 아버지의 친구는 4년 전 열네 살이던 도라를 성적으로 유혹했지만 소녀는 그의 제안을 거절했다. 그러자 그 남자는 소녀의 따귀를 때리며 마치 도라가 자신을 유혹한 것처럼 행동했다. 프로이트 진료소에 왔을 때 도라는 기침을 많이 하고 목소리가 잠겼으며 심각한 우울증과 자살 충동까지 드러냈다.

그에 대한 프로이트의 진단은 도라가 히스테리를 앓고 있다는 것이었다. <정신분석학의 다섯 강의>에 도라 사례가 소개됐는데, 프로이트는 ‘한 남자가 여자에게 다가가 발기된 성기를 몸에 문질렀고 여자는 겉옷 위로 남자의 단단한 신체 부위를 느끼고 성적 흥분을 경험한다’고 해석했다. 도라가 느낀 불쾌감을 프로이트는 이해하지 못했다. 도라는 그 남자의 요구를 여러 차례 거부했는데, 프로이트는 이 ‘거부’를 두고도 성적 욕망이 왕성한 사춘기 여자로서 속으로는 리비도(성 충동)의 만족을 느끼고 싶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분석했다. 도라의 목이 자꾸 잠기는 것은 구강 섹스를 상상하기 때문이며, 잦은 기침은 부모가 성관계 때 내는 거친 숨소리를 따라 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프로이트는 도라가 그 남자의 제안을 거부한 것, 곧 외면적인 거부반응이 히스테리의 원인이라고 보았다. 소녀가 속(무의식)으로 그 남자와 성관계를 하고 싶어 하는 욕망이 지나치게 큰 나머지, 동침을 거부한 것을 후회하고 이로 인해 고통(히스테리)을 겪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프로이트는 아버지뻘 소아 성욕자 남자의 결백 주장을 믿어주고 외려 어린 도라의 잘못을 지적한 것이다.

그런데 도라는 처음부터 프로이트의 분석에 동의하지 않았다고 지은이는 전한다. 자신의 임상사례가 공개된 데 대해 도라는 프로이트의 분석에 대한 자신의 불만족 표시에 맞서 프로이트가 복수한 것이라고 여겼고, 그해 말 도라는 치료를 그만뒀다.

이 책을 쓴 미셸 옹프레는 한국철학사상연구회가 알랭 바디우, 마이클 샌델, 슬라보이 지제크 등과 함께 ‘우리 시대의 사상가’ 47명 중 한 명으로 소개했던 프랑스의 철학자다. 열렬한 니체주의자임을 자부하는 그는 책 제목 <우상의 추락>도 프리드리히 니체의 책 <우상의 황혼>에서 따왔다.

이 책에서 그는 무의식은 프로이트가 혼자서 발견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프로이트의 무의식 가설은 신화와 문학은 물론, 19세기 역사와 과학에 관한 수많은 선학들의 책에 힘입었을뿐더러, 무엇보다 니체 철학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 프로이트는 니체보다 12살 아래다. 그는 동시대를 풍미한 니체의 책을 읽지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대학 시절 니체 철학을 수강했고 친구 빌헬름 플리스에게 보낸 편지에는 니체 책을 구입했다는 대목도 있다.

니체의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에는 한 남자의 여성상을 결정짓는 정신적인 원형은 어머니라는 내용이 있으며, <즐거운 지식>에는 의식이 본능적이고 충동적인 무의식을 원천으로 하며 이 무의식 세계는 의식으로 파악하는 것에 한계가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니체의 <도덕의 계보>엔 망각현상이 정신세계의 질서를 유지하는 데 역동적 구실을 한다는 내용이 있다. 프로이트는 망각현상을 통해 욕망의 억제이론을 발전시켰다. 금욕적 이상을 실현하는 것과 병증 사이 상관성을 말한 니체처럼 프로이트는 신경증에 의한 성적 병인학에 주목했다고 지은이는 본다.

프로이트는 정신분석학이 임상 징후를 관찰하여 객관적으로 분석한 과학이며, 인간 본능과 집단의식을 다룬 과학적 이론이라고 강조하곤 했다. 이에 맞서 옹프레는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은 심리학에 적용된 문학이라고 이야기한다. 그의 정신분석학이 “문학의 주체가 겪은 전기를 분석해 그 사람의 문학 행위를 설명하고 그 사람 자체를 이해하는 기능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옹프레는 프로이트 이론이 그 개인의 자전적이고 존재론적인 경험에 바탕을 둔 것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자기 존재를 둘러싼 숱한 고통을 견디며 살기 위해 스스로 존재론적 물음을 던지며 터득한 답, 프로이트의 지극히 개인적인 삶이 반영된 이론”이라는 것이다. “어린 프로이트는 근친상간에 대한 환상을 품게 되면서 어머니를 성적으로 갈망했고 어른이 되고는 소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일반적 현상으로 이론화시켰다.”

옹프레는 프로이트가 꾼 꿈들과 전기적 삶을 톺아내리면서,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차지하는 신화 속 오이디푸스에 대한 프로이트의 선망이 그의 가족관계에서 나왔다는 주장을 펼친다. 프로이트는 아버지 야콥이 41살, 어머니 아말리아가 21살 때 태어났다. 아말리아는 야콥의 세 번째 아내였고, 프로이트의 배다른 형 필립과 프로이트 어머니는 한 살 차이였다. 늙은 아버지 야콥은 어린 프로이트와 길을 가던 도중 유대인이라고 멸시하며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에게 아무 대응도 못하고 비굴하게 굴었고, 이는 프로이트에게 큰 상처로 남았다. “어린 프로이트는 상상 속에서, 어머니만큼이나 젊고 쾌활한 배다른 형이 어머니와 관계하는 생각을 하며 자기 대신 아버지에게 벌을 주길 바랐다”는 것이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이런 가족사에서 탄생했다는 주장이다.

<우상의 추락>은 2010년 프랑스에서 출간돼 화제를 일으켰던 전기다. 그해에 번역 출간 계약을 하고 작업을 진행하던 중, 번역을 맡았던 정신분석학 연구자가 “(학계 반응이) 부담스럽다”며 중도 포기하는 바람에 출간이 늦어졌다고 출판사 쪽은 전했다. 그만큼 논쟁적인 책이랄 수 있겠다.

허미경 기자 carme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