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책임없다던 최경환, 하베스트 인수 수차례 보고받은 정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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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 기획/MB ‘31조 자원 외교’ 대해부]
② 지경부의 강압과 왜곡
하베스트 인수가 긴박하게 진행된 5일 동안, 최경환 부총리가 강영원 석유공사 사장과 수차례 만난 정황이 드러났다. 당시 지식경제부 장관이었던 최 부총리는 하베스트 인수 과정에서 구체적으로 보고받거나 지시한 적이 없다고 말해왔다.
부실 덩어리 하베스트(정유부문)를 2009년 석유공사가 인수하기 바로 전날인 10월21일, 최경환 장관과 강영원 석유공사 사장이 같은 해외 공무출장 중이었으며, 한 호텔에 머물렀던 것으로 확인됐다.
앞서 하베스트 인수 협의차 10월14일 캐나다 현지를 방문한 강 사장이 18일 인천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즉시 과천 정부청사로 찾아가 최 장관에게 관련 사항을 직보한 사실도 드러났다. 하베스트가 문제의 정유부문(날·NARL)까지 공사에서 인수해 달라고 요구한 뒤다.
2009년 석유공사 강영원 사장캐나다 협상뒤 귀국하자마자
최장관 찾아가 보고 최 “5~10분 만났다” 해명했지만
관용차 일지 등 분석결과
1시간 안팎 만났을 가능성
계약 당일엔 최-강 한 숙소에 묵어
강영원 당시 석유공사 사장. |
하베스트 에너지 트러스트 인수 사업
2009년 9월 최경환 지식경제부 장관 취임 뒤 첫 인수합병 사업이면서 석유공사 창사 이래 최대 인수합병이다. 그해 10월22일 4조4958억원(40억6500만 캐나다달러)에 매입계약을 체결했다. 정부가 추진하는 자주개발률 목표 달성이 어려워지자 무리하게 사업을 추진해 3100억원가량 비싸게 매수했다고 감사원이 지적했다. 실제 부실자산인 정유시설(NARL) 부문을 매각하면서 현재 1조2500억~1조3371억원의 손실이 추정된다.
[단독] MB 지시로 뽑은 ‘에너지 보좌관’은 ‘유령’?
‘자원외교’는 외교통상부에게도 기회였다. 이명박 대통령이 2008년 3월 “올해 6% 경제성장 목표 관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세계적 에너지 확보를 위한 자원외교”라고 밝힌 자리도 외교통상부 업무보고에서다.
외교부는 2010년 말 “2년간 외무공무원을 300명가량 증원할 것”이라며 “브릭스(BRICs), 아프리카, 중동 등에서 자원외교를 강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화답했다. 이 대통령 지시로 외교부는 에너지보좌관 제도도 신설했다. 현지 유망사업 발굴, 에너지 동향 파악과 네트워크 구축, 국내 기업 지원 및 애로사항 해결 등의 업무가 맡겨졌다. 이명박 정부 기간 동안 37개 해외 공관이 73명의 외국인 에너지보좌관을 채용했다.
하지만 남미·중동 쪽 에너지 공기업의 현지 인력들 여럿은 “에너지보좌관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알지도 못하고, 만나본 적도 없다”고 전순옥 의원실에 말했다.
네트워크 능력이나 전문성도 의심이 간다. <한겨레> 분석 결과, 전체 에너지 보좌관의 53%가 20대, 30대(각각 19명씩)였다. 22살 청년도 에너지보좌관으로 인도 쪽 공관에 채용됐다.
외교부의 ‘에너지보좌관 성과 평가’를 확인해보니, 주페루대사관의 에너지보좌관은 “이상득 특사, 박영준 지식경제부 차관 등 방문 시 에너지광업부 장관 등 주재국 인사와의 업무 조정 및 미팅 조정”을 한 것이 업무 결과 중 하나였다. 카자흐스탄대사관 에너지보좌관은 “에너지 시장 분석 등 보고서 작성은 매우 우수하나 대인접촉을 통한 능동적 수주 지원은 미흡”했다고 평가받았다. 정부는 외국인 에너지보좌관의 임금·운영비 등으로 나랏돈 41억1300만원을 5년간 썼다. 2014년 10월 기준, 에너지보좌관은 27개 공관에 28명으로 줄었다.
임인택 기자
[탐사 기획/MB ‘31조 자원 외교’ 대해부]
자원외교 사업을 주무한 산업통상자원부가 ‘이명박 자원외교’의 성과보다 과오가 컸다는 취지의 ‘대외비 보고서’를 2013년 말 내놨던 것으로 19일 확인됐다. 그러나 국정조사가 의제화된 지난해 말부터 다시 태도를 바꿔 “전반적 성적은 참여정부와 유사” “석유개발 역량 강화” 등의 논리로 자원외교의 성과와 취지를 내세우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산업부)의 대외비 보고서(‘에너지 공기업 재무구조 개선 방안’)는 이명박 정부에서 추진한 자원외교 사업의 대표적 결점으로 7가지를 꼽았다. △투자 절차의 객관성 미흡 △투자 효율성 악화 △역량강화 소홀 △지나친 재정·차입 의존 △국내 공기업간 과당경쟁 △포트폴리오 불균형 △구조조정 미흡 등으로 구체화했다. 이는 19일 <한겨레>가 전순옥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문서로, 각 전문가로 구성된 산업부 민관합동 총괄티에프(TF)가 5개월 활동 끝에 2013년 10월 채택한 최종 보고서다.
보고서는 스스로 사실상의 ‘낙제점’을 주며 이명박 정부의 해외자원개발 사업 방식을 폐기했다. ‘역량강화 소홀’을 주요 미비점으로 꼽았다. “외형적 규모 확대에 치중하여 장기적 성장에 필수적인 전문인력 확보와 기술역량 강화 등 질적 성장에 소홀”했다는 것이다. 석유공사와 광물공사는 세계 기술의 50~60%, 가스공사는 35% 수준, 기술연구 투자액은 매출액의 2% 수준에 불과한 점 등이 그 근거였다. 5년간 국민 세금 등 31조2000억원의 사업비를 투입한 결과치곤 초라했다.
보고서는 2008년 이후 충원인력이 대부분 초급 신규직원 위주였다는 사실도 지적했다. 사실 수익은 정부나 공사 논리대로 오랜 기간에 걸쳐 일부 만회될 수도 있다. 하지만 재정을 투입한 만큼의 선진 노하우 습득, 전문인력 양성이 무엇보다 이뤄지지 않았다.
또 보고서는 “탐사·개발·생산 등 단계별로 최적화된 포트폴리오 전략 없이 생산자산 위주의 비용·저수익형 투자에 집중”(‘포트폴리오 불균형’)하고, “가치 하락 등 저수익성 사업을 처리하는 노력에 소홀”(‘구조조정 미흡’)했다고 지적했다. 실패한 투자로 결국 석유·광물공사는 2008~2012년 부채가 갑절 이상 커졌다. 이는 본질적으로 “자주개발률 달성을 위해 단기간 인수합병 등 물량 위주의 양적 성장에 치중한 결과”(‘투자 효율성 악화’)라는 것이다.
보고서는 ‘자원외교’의 성과도 담았다. 자주개발률 확대, 공기업 대형화, 핵심지역 진출, 미래 성장잠재력 등 4가지다. 무리한 자주개발률, 양적 성장 정책이 사업 실패의 원인인데, 자주개발률 확대와 공기업 대형화는 실익이 됐다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 시도된 이명박 정부의 자원외교 추진 방식에 대한 ‘반성’은 지난해 말부터 부정되기 시작했다. 지난달 산업부가 국정조사를 대비해 여당인 새누리당에만 제출한 ‘해외자원개발 현황 및 주요 쟁점’ 보고서를 보면, ‘질적 성장’과 ‘공기업 부채’ 두 가지만 해외자원개발 사업의 보완 사항으로 꼽혀있다. 되레 “(2008년 이후) 해외 석유기업 M&A(인수합병) 등을 통해 대형화, 운영권 확보 등을 통한 석유개발 역량 강화”를 성과로 내세웠다. “양적 성장에 치중”해 자원개발 사업의 “역량 강화에 소홀”했다는 전년도 진단은 온데간데없다. △투자비 26조원(석유·광물·가스공사) 대비 30조원이 회수 전망되고, 이명박 대통령 등의 해외 순방 중 양해각서를 체결한 사업에서도 상당한 수익이 예상된다는 점 또한 부각됐다. 박근혜 정부 들어, 기존 사업방식을 애써 ‘폐기’한 이유마저 스스로 회칠한 격이다.
산업부는 비공식 정보나 현지 자문사에 주로 기대 탐사사업을 추진한 참여정부와 달리 이명박 정부에선 대형 자문사가 주로 활용되었다는 점도 치적으로 삼았다. 이에 전순옥 의원은 “3대 공사의 67개 사업 가운데 40건이 당초 민간사업자한테 제안받은 것이며, 수익이 바로 나야 하는 개발·생산 사업으로 대형 자문사가 관여한 24개 가운데 23개 사업의 회수율이 0%”라며 “최근 산업부의 자료는 상당 부분 왜곡·조작됐다”고 말했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탐사 기획/MB ‘31조 자원 외교’ 대해부]
“공기업 경영진은 자기 임기 중 감사로 문제만 안 터지면 된다고 본다. 직원 대부분도 (정부의) 기관평가 잘 받고 그래서 성과급 잘 받으면 된다는 거다.”
해외자원개발사업 전선에 섰던 한 에너지 공기업 고위 임원이 20일 <한겨레>에 던진 푸념이다. 공기업들은 탐사·개발·생산에 걸쳐 여러 ‘공익’ 사업에서 실패했다. 그러나 자신들에게 직접 이득이 된 ‘돈맥’만은 놓치지 않았다.
석유공사의 류아무개(당시 1급)씨는 카자흐스탄사무소 법인장을 맡던 2011년 4월 골프장 법인회원권을 매입했다. 공사 예산 2700만원가량을 사용했다. 본사 승인 사항이지만 무시했고, 회원권 사용 대장도 만들지 않았다. 1년이 더 지난 뒤의 기관 자체감사 결과, 류 소장은 6개월 남짓 만에 가족과 함께 모두 20차례(18홀 기준) 골프를 즐긴 사실이 확인됐다. 한달 평균 세 차례 이상이다. 공사는 류 소장에게 감봉 1개월의 징계를 내렸다. 막상은 포상 실적을 이유로 견책만 줬다.
류 소장은 이듬해 3월 구속된다. 석유공사가 카자흐스탄 석유회사인 숨베사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현지 사무소장 신분으로 한 퇴직 동료와 함께 28억원가량을 챙기다 적발(<한겨레> 1월19일치 3면)된 탓이다. 2011년 8월 이명박 대통령이 강영원 석유공사 사장 등을 대동해 카자흐스탄을 방문했을 때도 류 소장이 현지 책임자였다.
개인 비리나 도덕적 해이로만 치부하기 어렵다. ‘자원외교’라는 거대한 물줄기에 다들 떠 있었기 때문이다.
카자흐스탄은 ‘이명박 자원외교’의 주요 거점이었다. 자원외교 총리를 자처했던 한승수 전 국무총리가 2008년 5월 방문한 이래, 이명박 대통령이 세 차례(2009·2011·2012년), 최경환 지식경제부 장관이 한 차례(2010년) 방문해 ‘자원’을 외치던 나라다. 공기업들이 달려들 수밖에 없었다. 비리도, 돈잔치도 이 줄기에서 배양된 셈이다.
정작 사업 결과는 초라했다. 무분별하게 해외사업을 사들이며, 가령 자산이 2007년 12조6000억원에서 2013년 43조7000억원으로 3.5배 커진 가스공사는 부채 또한 228%에서 389%로 커졌다.
공사들은 돈잔치를 위해 규정도 어겼다. 가스공사는 전년도 월평균 기본급이 성과급 기준이라는 규정을 어기고, 전년도 12월치 기본급을 기준으로 삼아 2012~2013년에만 5억9258만원의 성과급을 더 나눠 가졌다.
석유공사는 영국 다나사를 인수한 2010년 말부터 남은 사업비로 전 임직원 1025명에게 엘이디(LED) 티브이와 노트북을 ‘쐈다’. 13억원가량을 썼다. 이 돈들은 복리후생비로 쓸 수 없는 예산인데도 회사는 이사회 승인 없이 (강영원) 사장 결재로 집행했다. <한겨레> 확인 결과 비정규직은 티브이도, 노트북도, 상품권도 받지 못했다.
해외자원개발에 나선 공사들은 현지 파견 직원들의 어학 지원비나 통화비도 과다하게 지원했다.
민간기업이었다면 이처럼 쓸 수 없는 돈들이다. 대기업 소속으로 아시아 자원개발 사업차 파견 나가 있는 한 직원은 “공기업은 돈 번 사례가 거의 없지만, 우린 자원개발사업으로 돈을 벌고 있다. 사기업들은 돈이 안 되는 사업은 쳐다도 안 본다”며 “사업 명분이나 내용, 씀씀이도 다르다. (공기업들이 이라크 정부 등에 지급한 대가의 일부인) 서명 보너스도 관례라고 말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실제 사기업은 운명을 건다. 에스티엑스(STX)는 조선소, 자원개발 사업 실패 등을 거듭하다 끝내 법정관리에 내몰려 있다.
일본은 무리한 투자로 2조엔에 이르는 손실을 발생시킨 석유공단을 2004년 해체해버렸다.
임인택 김정필 기자
[탐사 기획/MB ‘31조 자원 외교’ 대해부]
▶ 한 눈에 보는 ‘MB 31조 자원 외교’ 대해부
“(이라크) 쿠르드 사업이 나중에 분명히 문제가 될 거라 말했었습니다. 나중에 문제가 터졌을 때 상사들은 임기가 다 끝나서 회사에 없을 거고, 결국은 실무 담당했던 자신이 다 뒤집어쓸 수도 있다고 걱정했습니다.”
그의 아내가 세상에 전해준 말이다. 그 남편의 말을 직접 물을 수 없었다. 그는 2011년 6월3일 자신의 집 안방 화장실에서 삶을 접었다. 아침 7시30분께, 15년 출근길에 맸던 넥타이에 그가 매달려 있었다. 석유공사 중동탐사팀 배아무개 과장이다. 당시 마흔살, 두 자녀의 아빠였다.
당일 아침 남편의 부고를 회사에 알린 아내 임아무개(41)씨는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을 (회사는) 어느 정도 예견한 듯한 분위기였다. 화가 나고 미칠 것 같은 심정이었다”며 “정부가 사활을 걸고 뛰어든 사업에… 이런 말도 안 되고 힘든 환경에서 (남편은) 묵묵히 일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사실은 <한겨레>가 한정애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고 배 과장의 ‘재해조사서’(근로복지공단), 경찰조사 기록 등으로 확인된 내용이다.
유가족의 분노가 회사와 정부를 향한 데엔 까닭이 있다. 석유공사는 대학에서 지질학을 전공한 배 과장의 첫 직장이었다. 과묵하기로 정평 난 그가 “국내탐사팀에 근무할 때 행복했었다”고 한 말을 동료들은 기억한다. 배 과장은 2010년 12월부터 중동탐사팀에서 이라크 쿠르드 사업의 실무 책임을 맡았다. 불행의 시작이었다.
이라크 쿠르드 원유개발 사업은 ‘이명박 자원외교’의 첫 결실이었다. 2008년 2월 이명박 대통령 인수위원회가 개입해 쿠르드 지방정부를 상대로 19억배럴짜리 유전광구를 확보했다는 것이다. 막상 파보니 돈 되는 원유는 많지 않았다. 되레 공사는 약속한 건설투자(SOC)에 발목 잡혔다. 쿠르드 정부가 건설투자 사업이 부진하다며 애초 계약한 보상 원유량을 줄이고, 건설투자비를 아예 현금으로 달라고 계약 변경을 요청하면서다. 배 과장이 인사가 날 즈음인 2010년 말 해당 사업의 손실은 1조3000억원(감사원 감사 결과)에 육박했다.
‘이명박 자원외교’ 북소리에 맞춰, 석유공사는 암초 위에서도 노만 젓는 격이었다. 배 과장 쪽은 “현 정부의 자원외교 국책사업으로, 회사는 석유사업에 참여하는 대신 쿠르드 지역에 사회기반시설을 제공하기로 했으나 탐사가 기대에 못 미쳤다. 그럼에도 회사는 (오히려) 사업 범위를 확대했다”고 말했다.
실제 회사 법무팀의 고아무개 과장(변호사)은 “공사는 민간기업과 그 성격이 달라 (사업 내용에 대한) 일회성 정부 신고에 그치지 않고, 정부 요구 시 수시로 정보를 보고해야 하며, 사업 방향을 점검받아야 한다”며 “공사는 쿠르드 정부와 계약 수정을 통해 사업 범위를 확대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직장 동료는 “사장, 부사장으로부터 많은 지시나 질책을 받아 부담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닷새 중 평균 나흘을 야근하던 배 과장은 무너졌다. 업무 고충 위로 불안감이 포개졌다. 한 동료는 “이라크 사업 자체가 무리한 사업 추진으로 절차적, 법률적 모순이 많다고 (배 과장이) 토로”했다고 말한다. 집에선 수면유도제를 먹기 시작했다. 회사에선 “구속되겠다” “죽겠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언젠가 ‘감사받을 때 다 일러버릴까?’ 묻는 배 과장에게 아내는 “우리나라에선 내부고발자 삶은 너무 힘드니 그냥 자기가 그만두고 나오라고 했다”고만 말했다.
배 과장은 5월30일 사표를 제출했다. 목숨을 내던지기 나흘 전이고, 4월20일자 사표에 이어 두번째였다. 회사가 거부했다.
6월 들어 계약 협상을 위한 쿠르드 출장 준비가 배 과장에게 할당됐다. 강영원 사장, 김성훈 부사장 등이 동행할 참이었다.
그즈음이었다. 화장실 앞에서 쭈그린 채 우는 배 과장을 동료들은 보았다.
6월2일 아침 배 과장은 슬리퍼를 신고 출근했다가 한참 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밤 11시가 넘어 퇴근했다. 종일 회의였다. 귀가한 배 과장에게 아내는 부러 말을 아끼고 데워둔 홍삼즙만 건넸다. 자기 전 담배 피우러 집 밖으로 나가겠다는 배 과장은 속옷 차림이었다. 거실에서 자던 아내가 놀라 옷을 입혔다. 새벽 5시께 배 과장은 깼다. 다시 누웠다 6시30분께 또 깼다. 7시쯤 담배를 피우고 들어왔다. 그리고 배 과장은 영영 출근하지 않았다.
열달 뒤인 2012년 4월 석유공사는 내부보상심의를 열어 배 과장 유족 쪽에 보상금 1억5000만원(장의비 1200만원 별도)을 제공했다. 합의서엔 “(회사) 임직원에게 망인의 사망과 관련한 추가적인 민형사상 책임을 제기하지 아니한다”는 조항이 포함됐다.
사망 1년여 만인 2012년 7월 배 과장은 산재보상보험법상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는다. 가족은 석유공사에서 받은 보상금을 모두 반납했다. 그 또한 합의 사항이었다.
아내 임씨는 “당시 장례식장에 온 (강영원) 사장님에게 제 남동생이 ‘너무 화가 나고 참을 수가 없다’고 했더니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1주일마다 회의를 했는데 배 과장 힘들단 말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더란다”며 “5월30일 사직서가 책상 서랍에서 나왔단 말을 듣고 가슴이 찢어지고 아팠다”고 말했다.
배 과장은 유서도 남기지 않았다. 흑색 빼곡한, ‘자원외교’용 업무수첩만 가족에게 겨우 되돌아왔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탐사 기획/MB ‘31조 자원 외교’ 대해부]
2009년 10월 한국석유공사의 캐나다 하베스트사 인수는 국가적으로 1조원이 넘는 손실을 떠안긴 재앙이었지만, 석유공사에는 ‘축복’이나 다름없었다. 석유공사는 이 거래로 자주개발률을 1.8%포인트 끌어올리며, ‘2009 정부 공공기관 경영 평가’에서 비(B)등급을 맞았다. 그해 석유공사는 임직원 성과급을 211억6600만원 챙길 수 있었다. 시(C)등급으로 116억원을 받았던 2008년보다 한 계단 더 상승했다. 전체 임직원 1인당 평균 1800만원에 가까운 액수였고, 강영원 전 사장은 1억1500만원을 받았다. 당시 석유공사는 하베스트사와 사비아페루 등 바로 생산 가능해 자주개발률을 끌어올릴 수 있는 생산유전을 여럿 인수했다.
정부가 준 당근책으로 ‘돈잔치’
가스공사는 2011년 196억 받아
자원개발 앞장선 공사 사장들
MB와 학연·지연 등으로 얽혀 석유공사뿐이 아니었다. 가스공사는 2010~2011년 캐나다 혼리버, 오스트레일리아 시엘엔지(CLNG) 등 8개 사업에 수조원의 투자금을 쏟아부은 뒤 공공기관 평가에서 전년도보다 한 단계 높은 비(B)등급을 맞고, 각각 184억원과 196억원의 성과급을 받았다. 광물공사도 2009, 2010년 멕시코 볼레오 동광과 마다가스카르의 암바토비에 각각 수천억원의 ‘부실 투자’를 진행했지만, 모두 100억원이 넘는 성과급을 수령했다. 이들 공사를 ‘성과급 잔치’로 이끈 열쇠는 바로 자주개발률 상승이었다. 2008년도 자원 관련 공기업 평가부터 ‘전체 에너지 수입량 중 우리가 직접 생산하는 비율’을 뜻하는 자주개발률이 주요 평가 항목으로 포함됐다. 자주개발률이 공기업 평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점점 높아졌다. 석유공사의 경우 2008년 100점 만점 중 3점에서 2010년 8점까지 치솟았다. 이런 유인장치로 인해 자주개발률은 2008년 5.1%에서 2011년 12.9%로 두 배 이상 급증했다. 자주개발률 제고를 통한 성과급 지급은 다른 한편으로 ‘채찍’이나 다름없었다. 자주개발률을 목표만큼 달성하지 못해 경영 평가에서 나쁜 평가를 받을 경우 사장은 책임을 져야 했다. 직원들이 받는 성과급도 크게 줄어들 수 있었다. 한 공기업 임원은 “책임지지 않는 ‘무데뽀’ 정신”이라고 얘기했다. 본인 임기 안에만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면 목표 달성을 위해 어떤 일이든 강행한다는 것이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 인연이 있는 실세 사장들은 거침없이 내달렸다. 대우인터내셔널 출신인 강영원 전 석유공사 사장은 소망교회를 다녔고, 김신종 광물자원공사 사장은 경북 안동 출신에 고려대를 졸업했다. 주강수 전 가스공사 사장은 현대종합상사에서 잔뼈가 굵은 현대 인맥이다. 이들은 때로는 이사회를 무력화하고(하베스트사 인수), 때로는 해당 국가 대통령의 경고(사비아페루 인수)를 무시하면서 오로지 자주개발률 상승을 위해 돌진했다. 감독 책임이 있는 옛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는 총리실과 청와대에 책임을 떠넘긴 채 ‘모르쇠’로 일관했다. 2009년 9월부터 지경부 장관을 1년 반 가까이 지낸 최경환 현 경제부총리는 지난해 10월 기획재정부 국정감사에서 ‘당시 지경부 장관으로서 책임을 느껴야 한다’는 지적에 “국무총리실에서 주도하고 범정부 차원에서 진행된 일을 개인한테 책임을 물을 상황은 아니다”라고 답했다. 다른 산업부 간부는 “우리는 사실상 자원외교에서 제껴져 있었다”며 “청와대와 총리실 등이 자원 관련 공기업과 직접적인 통로를 갖고 사업을 진행했다”고 말했다. 최현준 임인택 기자 haojune@hani.co.kr
사실 에너지 공기업들 대부분 내부 검열에 게을렀다. 해외자원개발 사업을 추진하다 감사원 감사지적을 받더라도 내부에서 눙쳤다.
석유·가스·광물자원공사에서 2008~2012년 해외자원개발 사업 추진 중 단 11명만 징계(전순옥·김제남 의원실 자료)를 받았다. 실상 감사원·내부 감사로 적발되고, 문책을 요구받은 이는 더 많다. 상당수가 내부 포상 경력 등을 이유로 ‘경고’ 이하로 감경받았다. 징계는 파면-해임-정직-감봉-견책 순이다. 대부분의 공기업에서 경고는 징계가 아니다.
하베스트 사업 상 문제로 김아무개 사업팀장만 ‘정직’을 요구(감사원)받았다. 석유공사는 김 팀장에게 ‘감봉 1월’ 징계로 깎았다. 그는 현재 서문규 현 사장의 비서팀장이다.
이라크 쿠르드 정부로부터 윤아무개 팀장이 사례금을 받았으나 경고(▶[단독] “이상득 의원 준다며 8천달러 걷어가” <한겨레> 1월19일치 3면)만 받았다. 윤 팀장은 콜롬비아 해외광구 탐사사업(CPO 2~3) 상 문제로 징계를 요구받았다. 그러나 포상실적으로 또 경고만 받았다.
회사 승인없이 회삿돈으로 골프회원권을 산 류아무개 소장은 견책에서 경고, 영국사무소에서 회사 차량을 개인적으로 이용한 직원 4명 경우 각각 정직→감봉3월, 감봉→견책(2명), 견책→경고로 줄었다.
성공불융자 업무를 담당했던 가스공사의 사아무개 팀장도 견책에서 경고로 감경받았다.
광물자원공사에서 멕시코 볼레오 사업을 담당했던 최아무개씨는 정직→감봉3월, 블락플라츠 사업을 담당했던 이아무개 실장은 정직→감봉 6월로 감경됐다. 둘은 모두 종료 또는 사업축소가 추진 중인 ‘불량사업’으로 평가받는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탐사기획] MB ‘31조 자원외교’ 대해부
2007년 11월 초. 한국석유공사에 한통의 전자우편이 도착했다. 당시 석유공사는 이라크 쿠르드 자치정부와 바지안 탐사광구에 대한 ‘생산물분배계약’(PSC)을 맺기 직전이었다. 전자우편 발신자는 쿠르드 천연자원부 장관이었다. 천연부 장관의 어투는 단호했다.
‘우리가 유아이(UI) 문제만 해결할 수 있다면 바지안이 블록(Block)이 될 수도 있다. 유아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바지안 생산물분배계약에 유아이를 포함시키는 것이다.’
여기서 언급된 유아이는 국내 에너지개발 전문업체인 ‘유아이에너지’였다. 유아이에너지를 석유공사 컨소시엄에 끼워줘야 계약서에 서명하겠다는 뜻이었다.
석유공사 이사회에선 그동안 유아이에너지 사업 참여를 극구 반대해왔다. 겉으론 컨소시엄에 참여한 다른 민간기업에 비해 규모가 작아 못 미더운 탓도 컸지만, 사실 속내는 다른 데 있었다. 유아이에너지 회장이 바로 김대중 정부 시절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최규선(55)씨였기 때문이다.
쿠르드 정부, 석유공사와 계약전
최씨 회사 컨소시엄 포함 요구 그런데 석유공사가 쿠르드 천연부 장관에게 보낸 답변은 뜻밖이었다. 석유공사는 ‘유아이에너지로부터 의무이행각서를 받고 컨소시엄 회사로부터 지분 할당에 대한 동의를 구한 후 광권계약에 포함시켜줬다’고 했다. 의무이행각서의 내용은 파격적이었다. 국내 은행이 발행한 250만달러(27억여원)짜리 보증신용장을 공사에 제출하는 것이었다. 서명보너스만 2억달러(2176억여원)가 들어간 사업인 점을 고려하면 특혜에 가까운 조처였다.
통상의 거래 행위에서 보기 드문 쿠르드 천연부 장관의 요구와 석유공사의 수용은 쿠르드와 석유공사가 전자우편을 주고받은 지 며칠 뒤인 11월10일 결국 성사됐다. 당시 연매출 276억원에 불과한 유아이에너지는 바지안 컨소시엄 지분 5%를 갖고 참여하게 됐다. 당시 지에스(GS)그룹의 지주사인 지에스홀딩스의 지분 4.75%보다 높았다.
쿠르드 천연부 장관과 최씨 사이에선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최씨는 당시 쿠르드에 머물고 있었다. 최씨는 지난해 12월 말 <한겨레>와 한 전화 인터뷰에서 “이른바 ‘최규선 게이트’ 사건이 끝난 뒤 쿠르드에서 자원개발 사업을 추진해왔다. 석유공사가 진출하기 훨씬 전에 쿠르드 쪽으로부터 바지안 광구의 일정 지분을 받기로 구두 약속을 받은 상태였고, 그 약속의 이행으로 보면 된다. 어떻게 보면 석유공사가 굴러온 돌이었다. (쿠르드에 대한) 로비의 산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최씨 설명대로면 유아이에너지는 쿠르드와 직접 거래를 틀 수 있는 특수 관계였다. 그런데 유아이에너지는 석유공사가 컨소시엄을 꾸린 뒤에야 움직였다. 직거래가 가능한 거래 상대방을 두고, 자신들을 꺼리는 석유공사를 통해 우회적으로 바지안 광구 사업에 참여하려는 이상한 태도를 보인 것이다. 최씨는 이와 관련해 “2007년 4월부터 유전개발 사업을 하려고 쿠르드에 있었다. 유아이에너지는 자본력과 기술력이 없으니까 누가 오퍼레이터로 들어가면 (쿠르드 쪽에) 작은 지분이라도 참여하게 해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실탄’이 없는 최씨로서는 석유공사 같은 ‘물주’가 들어올 때 지분 참여를 노리고 있었음을 짐작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최씨는 쿠르드 바지안 광구 사업 참여로 별 재미를 보지 못했다. 2009년 7월부터 2013년 3월까지 지분 참여에 따른 시추비용 348만달러(37억여원)를 컨소시엄에 냈지만, 바지안 광구에선 원유가 발견되지 않아 사업을 철수했다. 유아이에너지도 지분을 다른 곳에 팔고 나왔다.
그런데 ‘본업’인 유전개발 사업에선 손해를 본 최씨의 계좌에 쿠르드 정부에서 돈뭉치들이 송금된 사실이 확인돼 의혹이 커지고 있다. <한겨레>가 유아이에너지 관계자로부터 입수한 자료를 보면, 최씨는 2012년 8월17일 쿠르드 정부로부터 2100만달러(228억여원)를 받았다. 유아이에너지가 2007년 3월 쿠르드와 계약한 이동식 발전설비 공사대금 명목이었지만, 시공업체인 현대중공업은 2012년 말까지 현지에서 시운전조차 한 적이 없는 상태였다. 2010년 3월에는 쿠르드에서 1958만달러(212억여원)가 송금돼 국세청으로부터 출처를 추궁받자 최씨가 네치르반 바르자니 당시 쿠르드 총리 명의로 위조한 대부계약서를 제출했다가 검찰 수사를 받기도 했다.
원유 발견안돼 손해보고 철수했는데
최씨 계좌로 2차례 4천만달러 입금 <한겨레>가 박범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석유공사의 이라크 사무소 해외 송/입금 내역’을 보면, 유아이에너지는 바지안 광구 시추 비용도 제때 못 내 10차례나 지연이자를 물었다. 그런데도 정작 최씨 계좌에는 쿠르드에서 돈이 송금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최씨와 함께 사업을 했던 유아이에너지의 한 관계자는 “2012년 5월 어느 날 최씨가 회장실로 불러서 갔더니 ‘국외로 100억원을 반출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느냐’고 해서 어렵다고 거절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최씨와 쿠르드의 수상한 돈거래 의혹을 뒷받침하는 관련 증언도 나왔다.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고 요구한 한 회계사는 “유아이에너지 한 임원이 ‘쿠르드 쪽에서 돈이 계속 들어오는데 최씨가 5억원, 10억원씩 들고 나가서는 안 갖고 오는데 비용처리를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조언을 구해 이상하게 생각했다. 돈은 들어오는데 어딘가로 새고, 비용처리는 안 되는 구조로 보였다”고 말했다. 이라크 사정을 잘 아는 한병도 전 의원(현 한국-이라크우호재단 이사장)은 “쿠르드 자치정부 인사들은 정부돈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다. 일단 쿠르드 자치정부로 돈이 들어간 순간 그 돈이 누구의 것인지, 어디로 가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석유공사가 쿠르드에 보낸 서명보너스가 누구 계좌로 송금됐는지, 최종적으로 어디에 갔는지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파트너에 ‘국외 반출 방법’ 물어봐
최씨 작년 “수년전부터 추진 사업” 전순옥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실이 석유공사에서 제출받아 공개한 ‘쿠르드 서명보너스 지급내역 영수증’ 자료를 보면, 석유공사가 바지안 광구 개발을 위한 서명보너스 등 명목으로 쿠르드 천연자원부 장관이 지정한 계좌에 지급한 돈은 3000만달러(323억여원)이다. 석유공사는 5개 광구 계약을 대가로 총 3회의 서명보너스를 지급했는데, 이 가운데 2건은 독일의 중개은행을 통해 이라크 쿠르드 정부로 입금된 증명서가 확인이 됐지만 바지안 광구 계약을 대가로 지급한 서명보너스의 최종 송금 계좌는 중개은행인 영국 에이치에스비시(HSBC)은행이었다. <한겨레>는 최씨에게 돈을 송금한 내역과 관련해 쿠르드 정부 쪽에 전자우편으로 질의서를 보냈으나 답을 받지 못했다. 석유공사의 쿠르드 사업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자원외교 ‘1호 작품’으로 꼽힌다. 석유공사는 이라크 중앙정부 경고를 무시하고 쿠르드와 독자적으로 계약을 맺었다가 중앙정부 사업 입찰에 제한을 받았다. 쿠르드 5개 광구 탐사·개발에 지금까지 8494억원이 투자됐으나, 광구 3개는 원유 발견에 실패하고 사업을 철수했다. 확정된 손실액만 3755억원이다. 김정필 임인택 기자 fermata@hani.co.kr
[탐사기획] MB ‘31조 자원외교’ 대해부
김신종(65) 전 광물자원공사 사장이 암바토비 니켈광산 사업 때 성완종(64·전 국회의원) 경남기업 회장의 부탁을 받고 경남기업 보유 지분을 고가에 매입해줘 공사에 100억원대 손실을 끼친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이명박 전 대통령 퇴임을 두달여 앞둔 2012년 12월 이 의혹에 대한 수사 과정에서 성 회장을 소환조사도 하지 않고 무혐의 처분한 것으로 확인됐다.
21일 감사원 자료 등을 종합하면, 광물공사는 2006년 10월 국내 기업 7곳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의 암바토비 니켈사업에 1조9000여억원(전체 사업지분의 27.5%)을 투자하는 계약을 맺었다. 광물공사 지분은 14.3%, 경남기업은 2.75%였다.
컨소시엄 대표사인 광물공사는 경남기업이 자금 사정 악화로 투자비를 내지 않자 2008년께 171억여원을 대납해줬다. 2009년 5월부터는 투자비 납부의무를 5차례나 연장해주다, 12월30일까지 최종 납부시한을 정했다. 경남기업은 투자금 마련이 안 되자 납부기한 전에 지분을 아예 매각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컨소시엄의 ‘공동투자계약서’에 따라, 경남기업은 12월30일까지 투자금을 미납하면 그동안 투자한 돈의 25%만 받고 지분을 반납해야 했다.
성 회장은 납부기한 이틀 전인 2009년 12월28일 다급하게 김 전 사장 집무실에 찾아가 납부기한을 연장해주거나 지분을 매입해달라고 요구했다. 김 전 사장과 성 회장은 이 전 대통령 인수위에서 함께 근무했다. 이날 김 전 사장은 지분 매입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했다. 광물공사는 납부시한(12월30일)에 쫓긴 경남기업과 다음날인 29일 곧장 실무 협의를 했다. 이날은 토요일이었다.
협의 결과, 광물공사는 2010년 3월 성 회장의 요청대로 경남기업의 투자금 100%로 지분을 인수해줬다. 광물공사로선 경남기업의 납부시한만 넘기면 가만히 앉아서 경남기업 투자금의 25%(38억원)만 주고 지분을 인수할 수 있었음에도 투자금 100%(154억원)로 지분을 사들인 것이다. 김 전 사장의 이런 결정으로 공사에는 116억원 손실이 났다. 서로 ‘잘 모른다’는 이들 관계에 비춰 볼 때, 성 회장의 한마디로 선뜻 100억원대 편의를 봐준 김 전 사장의 결정에는 납득하기 어려운 구석이 많다. 이 때문에 이들의 ‘물밑 거래’에 권력 실세가 영향력을 행사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나오고 있다. 당시 컨소시엄의 한 관계자는 “참여사가 투자금을 납부기일에 못 낼 경우 곧장 지분을 몰취하는 것이 관례”라고 말했다.
김 전 사장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당시 성 회장 쪽이 아쉬운 부탁을 하고 싶다고 해서 만났다. 지분 매입을 검토하겠다고 한 것은 사실이다. 경남기업 지분을 몰취해도 결국 컨소시엄 부담이 된다. 국내 컨소시엄은 서로 동지애가 있어서 어려울 때 도왔다”고 말했다. 경남기업 관계자는 “김 전 사장과 협의를 하러 간 것일 뿐 지분 매입을 부탁한 적은 없다. 경남기업의 암바토비 니켈광산 지분매각은 당시 워크아웃 상태인 경남기업이 채권단과의 협약을 통한 자구이행 계획의 일환으로 추진됐다. 성 회장이 광물자원공사를 방문하기 전에 이미 회사 대 회사의 공식적인 검토를 통해 진행된 것으로 성 회장의 개인적 요청에 의해 물밑거래로 진행된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는 2012년 12월 김 전 사장의 배임 혐의를 수사했으나 불기소 처분했다. 성 회장 쪽은 “당시 검찰 조사를 받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유상범 서울중앙지검 3차장은 이와 관련해 “불기소 처분 사유는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말했다. 당시 사건을 담당한 원형문 검사(현 수원지검 성남지청)는 취재에 응하지 않았다.
김정필 최현준 기자 fermat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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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산업체인 씨앤케이(CNK)인터내셔널의 주가조작 사건은 정경유착에 놀아난 ‘이명박 자원외교’의 상징이다. 박영준 전 국무총리실 국무차장이 2010년 5월 카메룬 총리에게 ‘한국 기업의 다이아몬드 개발권 확보’를 요청하는 등 전면 지원했던 사업이다. 외교부는 그해 말 씨앤케이의 개발권 획득을 알리는 보도자료를 냈다. 덕택에 2009년 1500원짜리에 불과하던 씨앤케이 주식은 2011년 8월 장중 1만8500원을 찍었다. 2012년 1월 증권선물위원회는 주식 거래자들을 검찰에 고발했다. 정치인·관료 중엔 김은석 국무조정실 외교안보정책관만 유일하게 기소된 상태다. 주가 조작이 아닌, 허위 보도자료 배포 혐의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탐사기획] MB ‘31조 자원외교’ 대해부
1989년 경인에너지와 석유개발공사가 함께 중앙아메리카의 에콰도르에서 유전탐사에 나섰다. 이들은 정부로부터 1250만달러(약 140억원)의 성공불융자를 받았다. 자원탐사를 지원하는 제도인 성공불융자는, 실패할 경우 원리금을 전액 감면받고, 가능성이 높지 않지만 성공했을 때는 원리금보다 훨씬 많이 갚는다. 1990년 에콰도르 광구에서 석유가 발견됐지만 경제성이 낮았다. 사업은 실패했고, 결국 1995년 종료됐다. 융자금을 탕감받는 과정을 거쳐야 했으나, 기업도, 정부도 신경쓰지 않았다.
잊혀진 사업이 수면 위에 떠오른 것은 3년 전인 2012년이다. 산업통상자원부 규정이 바뀌어, 실패 사업에 대한 성공불융자 감면 신청 기한이 새로 생기면서다. 2006년 경인에너지를 인수한 에스케이(SK)이노베이션이 뒤늦게 해당 사업의 성공불융자에 대한 회계상 ‘감면’ 절차를 밟았다. 시간이 오래 지나 감면에 필요한 회계감사 보고서를 완전히 갖추지 못했지만 정부는 융자금의 99.7%를 감면해줬다. 돈이 제대로 쓰였는지, 엉뚱한 곳으로 새지는 않았는지 등은 철저하게 확인하지 못했다.
나랏돈이 100억원 넘게 지원된 사업이 성과 없이 종료됐지만, 기업은 물론 정부도 17년 동안 별다른 조처를 취하지 않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고세호 산업자원부 사무관은 “성공불융자 제도상 감면 신청 기한이 따로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제도상 정해진 기한이 없다 보니, 정부가 굳이 살펴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에스케이이노베이션 쪽은 “원래 우리 사업이 아니라 2006년 인수한 경인에너지 사업이었다. 인수 과정에서 이 사업이 제대로 이전되지 않은 것 같다”며 “정부가 2005년부터 2011년까지 감면 신청을 받지 않은 것도 (17년 만에 감면이 이뤄진) 또 다른 이유다”라고 말했다.
에콰도르 유전개발 실패
17년만에 융자금 99.7% 감면
현지 실사 대부분 시늉 그쳐 이렇게 정부의 방관과 기업의 무관심 속에 성공불융자는 ‘눈먼 돈’이라는 꼬리표를 달게 됐다. 앞서 2008년에는 아프리카 베냉 유전 개발 과정에서 석유공사 직원이 사업비를 부풀리는 방식 등으로 성공불융자를 빼돌린 사실이 드러나면서 불신의 골은 깊어졌다. 뒤늦게 정부는 2012년 ‘해외자원개발사업자금 융자 기준’에 감면 신청 기한을 2년으로 새로 규정했다. 사업 종료 뒤 2년 안에 감면 신청을 하도록 한 것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 격’이다. 성공불융자 사업은 여전히 빈 곳이 적지 않다. 무엇보다 자원 관련 공기업과 특정 대기업에 지원이 집중되고 있다. 정부는 이를 자원개발 사업의 특성 탓이라고 설명한다. 사업 규모가 워낙 크다 보니 받을 수 있는 기업이 한정돼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석유개발 융자를 받은 40여곳 중 석유공사와 에스케이이노베이션, 대우인터내셔널 등 3곳에 전체 지원금의 60% 이상이 집중돼 있다. 이들은 감면액에서도 80% 이상을 차지한다. 돈이 제대로 쓰이는지에 대한 확인도 제한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2011년 현지 실사 제도가 도입됐지만, 연간 두 차례씩 모두 8차례 이뤄졌을 뿐이다. 대부분 현장을 한번 방문하는 수준이다. 이름 밝히기를 꺼린 한 자원 관련 사업가는 “하루짜리 실사로는 알 수 있는 정보가 제한적이다. 수조원의 예산이 투입된 만큼 강도 높은 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성공불융자는 도입 이후 2013년까지 모두 27억달러(2조9300억원)가 지원됐고, 14억달러가 회수됐다. 감면액은 6억달러(6500억원)에 이른다. 최현준 기자 haojune@hani.co.kr
[탐사기획] MB ‘31조 자원외교’ 대해부
민유성(61) 나무코프(사모펀드 운용사) 회장이 한국산업은행 총재 시절 캐나다 투자금융회사인 아르시아이(RCI)캐피털을 국내 에너지 공기업에 소개해주기 전, 민 회장의 딸이 아르시아이캐피털과 고용계약을 맺었던 것으로 21일 드러났다. 또 민 회장은 산은 총재 때 1000억원대 투자협약을 맺은 사모투자펀드 운용사 티스톤에 재취업한 뒤 아르시아이캐피털과 3억달러(3260억여원) 규모의 합작펀드 조성을 추진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2008년 12월
‘Employment Agreement between RCI and Y Y Min.’ 2008년 12월8일, 아르시아이캐피털이 작성한 6쪽 분량의 고용계약서 제목이다. <한겨레>가 입수한 이 문건에 나오는 피고용자는 민아무개(33·여)씨다. 아르시아이는 당시 26살이었던 민씨에게 ‘한국 시장 애널리스트’란 명함을 줬다. 민씨는 대학·대학원에서 경제 분야를 전공한 적이 없다. 민씨의 급여는 월 3000캐나다달러(272만여원)였다. 이 문건이 불러온 ‘나비효과’가 훗날 광물자원공사의 손실로 이어질지는 당시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 민씨는 당시 국내 최대 국책은행 총재를 맡고 있던 민유성 회장의 딸이었다.
고용계약을 맺은 다음달인 2009년 1월15일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 이명박 전 대통령의 인맥으로 분류되는 두 사람이 해외자원개발사업 업무협약서를 함께 들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당시 산업은행 총재였던 민 회장과 김신종(65) 전 광물공사 사장이었다. 민 회장은 앞으로 광물공사에 금융 지원과 자문을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2009년 3월
두달 뒤인 3월31일. 서울 삼청각에선 주한 캐나다 대사까지 참석한 가운데 화려한 업무협약식이 열렸다. 양쪽 당사자는 산업은행과 아르시아이캐피털이었다. 이날 행사에 모습을 드러낸 아르시아이캐피털 사장은 뜻밖에 한국인이었다. 그의 이름은 존 박(한국명 박성준)이다. <한겨레>가 확보한 당시 아르시아이캐피털 방문 일정표를 보면, 산업은행은 존 박 사장에게 에너지 공기업 등 자원개발 관련 기관들을 대부분 소개해줬다.
2011년 6월
민씨의 고용계약서에서 비롯된 ‘민 회장-광물공사-존 박 사장’의 고리는 결국 2년여 뒤 광물공사의 칠레 산토도밍고 동광개발 사업으로 비극을 맞게 된다. 광물공사는 2011년 6월 아르시아이캐피털을 통해 캐나다 캡스톤사를 소개받았다. 광물공사와 캡스톤사는 산토도밍고 동광개발 사업권을 갖고 있던 파웨스트사를 인수했다. 이 사업은 광물공사가 정상 가격보다 5000만달러(543억5000만원)를 더 지급한 것으로 감사원 감사에서 밝혀졌다. 존 박 사장은 당시 광물공사를 알선한 대가로 캡스톤사에서 165만캐나다달러(약 15억원)를 받았다. 모양새만 따져놓고 보면, 이들 관계에서 피해를 본 건 물주 노릇만 한 광물공사였다. 민 회장과 존 박 사장은 각각 ‘딸 취업’과 ‘15억원’을 챙겼다. 국책은행의 ‘장’인 민 회장은 왜 투자금융시장에서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아르시아이캐피털이란 곳과 손을 잡은 것일까. 존 박 사장과는 어떤 관계일까.
<한겨레>는 아르시아이캐피털에서 부사장을 지낸 캐나다인 숀 라일리로부터 흥미로운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캐나다에 있는 그와 전자우편을 통해 들은 얘기를 종합하면, 민 회장은 2000년대 초반 아르시아이캐피털의 자회사인 투자이민업체 르네상스캐피털을 통해 캐나다 영주권을 얻었다. 민 회장은 투자이민 상담을 하다 존 박 사장을 알게 됐고 그때부터 오랫동안 ‘사업 파트너’ 관계를 유지해왔다고 한다. 이 전 대통령의 대표적 금융계 인맥인 민 회장이 2008년 이 전 대통령으로부터 산업은행 총재 자리를 약속받자, 민 회장은 캐나다 영주권을 포기하고 2008년 6월11일 산업은행 총재로 취임했다.
민 회장, 과거 파트너인 RCI에
딸 취업시키고 업무 협약
광물공사 끌어들여 투자 유치
‘500억 과다 지급’ 칠레 비극낳아 사모펀드 티스톤과 출자 약정하고
퇴직 뒤 그 회사 회장으로 취업도 라일리는 “민 회장은 존 박 사장을 캐나다에서 자원개발사업을 하는 유용한 창구로 봤다. 민 회장이 퇴임한 뒤 산업은행이 아르시아이캐피털과 맺은 업무협약은 끝났다”고 말했다. 그는 “아르시아이캐피털은 실체가 불분명한 회사다. 한국 방문 당시 존 박 사장은 캐나다 ‘투자은행’(IB)이라고 소개했으나 캐나다에서 단 한번도 투자은행으로 등록된 적이 없다. 자원개발 분야도 잘 모른다”고 말했다. 민 회장과 존 박 사장의 커넥션은 민 회장 퇴임 뒤 수상한 돈의 흐름과 궤적을 같이해 이어진다. 2011년 10월 2011년 10월4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장. “퇴직 후에 먹고살 자리를 미리 현직에 있을 때 만들어 놓고 회장으로 취임했는데,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 틀림없이 이 1470억원을 넣을 때 뒷거래가 있지 않았나 보고 있다.” 배영식 당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의원은 민 회장의 퇴임 전후 행적을 놓고 목소리를 높였다. 배 의원 얘기를 종합하면, 민 회장은 산업은행 총재 시절 사모펀드 운용사인 티스톤과 만든 사모펀드에 산업은행 돈 1470억원을 출자하기로 약정했다. 민 회장은 2011년 3월11일 퇴임한 뒤 곧장 티스톤 회장으로 취임했다. 2012년 5월 눈여겨볼 대목은 민 회장의 ‘동선’에 아르시아이캐피털이 또다시 등장한다는 점이다. 티스톤 회장 재직 때인 2012년 5월17일 민 회장은 아르시아이캐피털과 손잡고 3억달러 규모의 합작 펀드를 조성했다. 각각 1억5000만달러(1630억여원)씩 돈을 내기로 했다. 라일리는 “민 회장이 산업은행을 떠난 뒤 티스톤을 만든 자금은 어디서 온 것인지 궁금하다. 존 박 사장은 항상 현금이 넘쳐났다”고 말했다. 민 회장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딸 취업은 존 박 사장과 개인적인 친분에서 이뤄진 것으로 대가성은 전혀 없는 일이다. 실제 딸은 한달 인턴만 하고 그만뒀다. 존 박 사장은 캐나다 자원개발에 전문성이 높은 인물로, 그의 능력을 믿고 국내 에너지 공기업이 캐나다에 진출하는 데 도움을 주고자 업무협약을 맺은 것이다. 티스톤과 아르시아이캐피털의 합작 펀드도 결국 무산됐다. 존 박 사장과 금전 거래 등도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김정필 류이근 기자 fermata@hani.co.kr
[탐사기획] MB ‘31조 자원외교’ 대해부
<한겨레> 탐사기획팀의 석달 취재에도, 풀리지 않는 의혹들은 여전히 많다. 해외자원개발 사업이 이뤄진 시간(과거)과 공간(국외)의 제약 때문에 취재 결과물은 ‘미완성’ 상태다. 국회 해외자원개발 진상규명 국정조사특별위원회가 다뤄야 할 ‘미생’의 의혹들을 정리해봤다.
[탐사기획] MB ‘31조 자원외교’ 대해부
이에 대한 사전 해명 요청에 응하지 않던 기재부는 보도 직후인 22일 “사실과 다르다”며 정정보도를 요청했다. 강 사장 쪽도 “오후 ‘5시30분부터 5~10분 만났다’고 말했다”는 게 반박의 요지였다. 그러나 강 사장은 감사원 조사에서 ‘오후 4시부터 만났다’거나, 최 장관에게 보고한 까닭을 두고 인수하려는 하베스트의 자회사(정유시설)가 법적 사업 분야인지 해석하는 데 있어서 “의견을 구하고 싶었다”고도 말한 바 있다.
정부는 ‘자주개발률 부풀리기’ 의혹에 대해서도 반발했다. <한겨레>는 사비아페루 사업에 대해 페루 현지 취재를 통해, 석유공사에 석유처분권이 없으므로 ‘우리가 생산하는 비율’을 뜻하는 본래의 자주개발률에 포함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에 산업부는 석유공사 자료를 토대로 “(계약상) 우리가 광구 생산물에 대한 권리를 갖는다”고 반박했다. 잘못된 해명이었다. 지난해 말 석유공사는 김제남 정의당 의원실에 이미 “페루 국영 석유사가 생산물 처분권을 보유한다”고 보고했었다.
‘전-현 정부 고리’ 최경환
수시로 말바꾸기
‘자주개발률 부풀리기’ 산업부
원유 처분권 놓고 잘못 해명
공기업은 대부분 무대응 일관 여야 자원외교특위 출범 3주일
‘하나마나한 국정조사’ 가능성 산업부 자원개발전략과 담당 공무원은 취재진에게 욕도 했다. ‘유가스 처분권’에 대한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과정에서다. 의회도 제출받지 못한 행정부 자료가 넘친다. 국무총리실 주도의 ‘에너지협력외교 지원협의회 개최자료 및 회의록’도 그 가운데 하나다. <한겨레>의 정보공개청구에 총리실은 “공개될 경우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해할 우려가 있다”며 비공개했다. 여러 야당 의원의 요청도 번번이 거부됐다. 하베스트 인수계약 사흘 전인 2009년 10월19일 8차 에너지협력외교 지원협의회가 열렸다. 당시 주제가 ‘주요 현안사업 추진 경과 및 향후계획’이었다. 하베스트 사업이 지식경제부를 넘어, 범정부 차원에서 공유·논의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되지만 확인 불가다. 외교부는 2010년 12월17일 민간기업 씨앤케이(CNK)가 카메룬의 다이아몬드 개발사업권을 따냈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이후 씨앤케이 주가가 폭등했다. 주가조작 사건이었다. 외교부는 ‘씨앤케이 사업권’을 앞서 열린 13차 지원협의회(10월26일)에도 ‘자원외교 성과’로 보고했다. 당시 회의 참석자들과 논의 내용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공기업 대부분이 외부 비판을 수용하는 데에 지나치게 인색했다. 취재엔 철저히 무대응으로 맞섰다. 이라크 쿠르드 정부로부터 사례금을 받아 6개월가량 뒤 신고한 것이 문제라는 보도에, 사례금을 받았으나 ‘쿠르드 쪽 요청으로 받아 경고 조치만 했다’고 해명했다. 사실이 같은데 판단은 다르다. 전순옥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자원외교 관련 부패와 비리의 증거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는데, 정작 여당은 시간끌기, 산업부와 공기업은 자료 조작 및 은폐로 국정조사 방해 중”이라며 “국정조사를 제대로 하려면 수치 싸움이 아닌, 관련자 조사와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제남 정의당 의원은 “지난달 국회 현안질의에서 최경환 부총리가 사업성과 등을 내세웠는데, 이후 알고 보니 윤상직 산업부 장관이 지시해 만든 방어용 자료가 근거”였다며 “정부의 국조특위 조사권 방해는 박근혜 대통령의 ‘자원외교’ 인식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라고 말했다. 국조특위 새누리당 간사인 권성동 의원은 22일 “엠비 정부의 해외자원개발 정책은 참여정부 정책기조에 뿌리를 두고 있다”며 “현직 부총리(최경환)와 장관(윤상직)이라는 이유만으로 비리와 부정에 관련된 것처럼 (야당이) 정치공세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임인택 최현준 김정필 류이근 기자 imit@hani.co.kr
‘자원외교 탐사기획’ 후속 취재는 계속됩니다 <한겨레>가 지난 19일부터 다섯 차례에 걸쳐 보도한 ‘MB 31조 자원외교 대해부’를 23일치로 마칩니다. 지난 석달 동안의 탐사취재를 통해 새롭게 발굴한 사실과 현장, 새 관점으로 ‘이명박 자원외교’를 재구성했습니다. 해외자원개발 사업은 멈출 수 없는 과제입니다.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명박 자원외교’에 대한 평가와 교훈점은 시민의 이름으로 기록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더 많은 독자와 공유하고 고민해야 했습니다. <한겨레>가 보도에 앞서 뉴스 유통 실험(페이스북 검색창에 ‘자원외교’ 검색)을 기획한 까닭입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으로 뉴스를 전파하겠다는 독자의 약속(액션리더, Action Reader)을 모집했습니다. 행동하는 독자의 뉴스 유통을 희망했습니다. 각양각색의 호응과 격려, 제보를 받았습니다. 이를 토대로 국정조사가 마무리될 때까지 <한겨레> 탐사기획팀의 후속 취재도 계속 이어갈 예정입니다. 액션리더도 계속 모집합니다. 약속대로 페이스북을 통해 몇 분을 추첨해 ‘혜택’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기획 공동참여: 전순옥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실(박현숙 비서관), 김제남 정의당 의원실(서준섭 보좌관) 도와주신 분들: 고기영 한신대 교수, 김경율 회계사, 김형민 정책네트워크 내일 부소장, 숀 라일리 전 캐나다 RCI 부사장, 한병도 전 의원, 박범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실 백문영 보좌관, 박원석 정의당 의원실 김진욱 비서관, 홍영표 의원실 장철민 비서관, 부좌현 의원실 홍창훈 비서관, 김현 의원실 최일곤 보좌관, 전정희 의원실 김보람 비서관, 한정애 의원실 조선옥 보좌관 등 편집: 김원일 기자 그래픽: 이상호·이임정·노수민 기자 티저뉴스 연출: 이경주 피디(<한겨레TV> ‘추리의 시대’)
[탐사기획] MB ‘31조 자원외교’ 대해부
이명박 정부 시절 31조원이 투자된 해외자원개발 사업에서 부실의 증거들이 끊이지 않고 드러나고 있다. 집계된 손실만 3조9000여억원이고, 향후 몇조원의 손실이 더 발생할지 알 수 없다. 정책 입안자와 핵심 관련자들은 현재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국가 정책이라는 틀 속에 모두 ‘묻고 가자’는 식이다. 일각에서는 ‘자원외교’의 잘잘못을 캐는 행위가 자칫 자원개발 산업 전체를 망가뜨릴 수 있다는 걱정을 내놓는다.
하지만 자원개발이 초래한 손실은 국민이 떠안아야 할 비용으로 돌아온다. 책임을 물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다. 시행착오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필요한 일이다. <한겨레>는 ‘부실 자원외교’에 대해 반드시 답해야 할 10명을 추렸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 그의 형, 총리, 장관, 자원 공기업 사장들이 바로 그들이다.
자원외교 ‘피라미드’의 맨 꼭대기엔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있다. 2008년 취임 뒤 자원외교를 핵심 국정 과제로 내걸었고, 4%대의 에너지 자주개발률을 임기 내 25%까지 끌어올린다는 계획을 짰다. 그의 뜻에 따라 국가의 재정·행정·인력 등이 해외자원개발 사업에 총동원됐다. 그 역시 13차례 해외 순방에 나서, 자원개발 관련 양해각서를 24건이나 체결했다. 이 가운데 18건이 성과 없이 종료됐다. 이 전 대통령은 자원외교의 총기획자이자 정치적 최종 책임자이지만, 지난해 말 국정조사 증인 출석 여부를 묻는 질문에는 “구름 같은 이야기”라고 답했다.
이상득 전 의원과 박영준 전 총리실 국무차장은 피라미드의 둘째 칸에 위치한다. 대통령의 친형이기도 한 이 전 의원은 2009년부터 대통령을 대신하는 ‘특사’ 자격으로, 중남미와 아프리카 등을 9차례 누볐다. ‘대통령도 어려워할 정도’로 실세였던 탓에 그의 옆에는 늘 공기업과 사기업 관계자들로 붐볐다. 이 전 의원은 자원외교를 “인생의 3번째 전환기”라 표현하는 등 소명처럼 받아들였지만, 그의 행보 뒤에는 ‘8000달러 촌지 의혹’(<한겨레> 1월19일치 3면)과 돈만 낭비한 채 성과가 없다는 비판이 따른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의 1등 공신이었던 박영준 전 국무차장은 ‘미스터 아프리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아프리카 사업에 집중했다. ‘총리실 실세’라는 평가에 걸맞게 ‘에너지협력외교 지원협의회’ 등 해외자원개발 사업 전반을 지휘한 것으로 보인다. 총리실은 전 부처를 아우를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장소였다. 2010년 그가 관여했던 카메룬 다이아몬드 개발권 사업에서 발생한 씨앤케이(CNK) 주가조작 사건은 이명박 정부 자원외교의 가장 치욕적인 상징이기도 했다.
MB 총지휘 아래
국가재정·행정 책임자들 행동
공기업 사장들 나랏돈 날려 ‘자원외교 맞춤형 총리’로 영입된 한승수 전 총리 역시 정부 정책을 조율하고 조정하는 역할을 했다. 대통령 다음으로 높은 행정 수반으로서, 대통령이 가지 못하는 곳을 돌아다니며 자원외교를 폈다. 그는 총 4건의 양해각서를 맺었지만 3건이 성과 없이 종료됐다.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2009년부터 1년 남짓 해외자원개발 주무 부처인 지식경제부 장관을 지냈다. 그의 임기 동안 최소 21개의 해외자원개발 사업이 진행됐고 13조원가량의 돈이 투자됐다. 하지만 그는 “(자원외교는) 국무총리실이 주도했다”며 ‘발뺌’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실세 부총리이기도 해서, 현 정부의 자원외교에 대한 평가를 어렵게 만든다는 지적이 나온다. 피라미드의 아랫부분에는 석유·가스·광물 등 자원 관련 공기업이 존재한다. 이들 기업에는 이명박 전 대통령과 인연이 있는 실세 사장들이 배치됐다. 공사 사장들은 주로 산업부 출신 관료들이 ‘낙하산’으로 가는 게 관례였지만 이들은 좀 더 특별했다. 대우인터내셔널 출신인 강영원 전 석유공사 사장은 소망교회를 다녔다. 그는 석유공사 대형화 전략에 따라, 페루의 사비아페루사와 캐나다 하베스트사 인수 등 창사 이래 이뤄진 대부분의 대형 인수·투자 사업들을 진두지휘했다. 그러나 하베스트 사업에서만 이미 1조원 넘는 손실이 발생했다. 강 전 사장에게 책임을 묻는 작업은 이미 참여연대와 감사원 등이 검찰 고발 등을 통해 진행하고 있다. 2008~2009년 석유공사 부사장을 지낸 서문규 현 석유공사 사장은 사비아페루 인수를 주도하는 등 부실 투자의 또 다른 축이다. 고려대 출신에 대통령직 인수위원이었던 김신종 전 광물공사 사장은 이 전 대통령과 임기를 같이하며 볼레오 동광과 암바토비 니켈광 사업 등에 수조원을 투자했다. 이 과정에서 민간 기업에 수백억원의 특혜성 혜택을 줘, 배임 의혹도 받고 있다. 현대그룹 출신인 주강수 전 가스공사 사장은 캐나다 혼리버, 웨스트컷뱅크, 우미악 가스전 투자에 핵심적인 구실을 했다. 지금까지 세곳에 1조366억원(1월 현재)이 들어갔지만, 6050억원이 넘는 손실이 확정되는 등 공사에 커다란 손실을 끼쳤다. 가스공사의 첫 내부 사장 승진자인 장석효 전 가스공사 사장은 주강수 전 사장과 함께 이들 부실 사업 투자를 함께 했다. 그는 통영예선 대표로 있던 2012년 사적 용도로 법인카드를 쓴 혐의 등이 드러나 지난 20일 사장에서 물러났다. 최현준 류이근 임인택 김정필 기자 haojune@hani.co.kr
[단독] 산업부 ‘낙제점’ 평가해놓고 국정조사 논의되자 “성과”
[탐사 기획/MB ‘31조 자원 외교’ 대해부]
2013년 대외비보고서 ‘과오 커’
2014년 “석유개발 역량 강화해”
자원외교 사업을 주무한 산업통상자원부가 ‘이명박 자원외교’의 성과보다 과오가 컸다는 취지의 ‘대외비 보고서’를 2013년 말 내놨던 것으로 19일 확인됐다. 그러나 국정조사가 의제화된 지난해 말부터 다시 태도를 바꿔 “전반적 성적은 참여정부와 유사” “석유개발 역량 강화” 등의 논리로 자원외교의 성과와 취지를 내세우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산업부)의 대외비 보고서(‘에너지 공기업 재무구조 개선 방안’)는 이명박 정부에서 추진한 자원외교 사업의 대표적 결점으로 7가지를 꼽았다. △투자 절차의 객관성 미흡 △투자 효율성 악화 △역량강화 소홀 △지나친 재정·차입 의존 △국내 공기업간 과당경쟁 △포트폴리오 불균형 △구조조정 미흡 등으로 구체화했다. 이는 19일 <한겨레>가 전순옥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문서로, 각 전문가로 구성된 산업부 민관합동 총괄티에프(TF)가 5개월 활동 끝에 2013년 10월 채택한 최종 보고서다.
보고서는 스스로 사실상의 ‘낙제점’을 주며 이명박 정부의 해외자원개발 사업 방식을 폐기했다. ‘역량강화 소홀’을 주요 미비점으로 꼽았다. “외형적 규모 확대에 치중하여 장기적 성장에 필수적인 전문인력 확보와 기술역량 강화 등 질적 성장에 소홀”했다는 것이다. 석유공사와 광물공사는 세계 기술의 50~60%, 가스공사는 35% 수준, 기술연구 투자액은 매출액의 2% 수준에 불과한 점 등이 그 근거였다. 5년간 국민 세금 등 31조2000억원의 사업비를 투입한 결과치곤 초라했다.
보고서는 2008년 이후 충원인력이 대부분 초급 신규직원 위주였다는 사실도 지적했다. 사실 수익은 정부나 공사 논리대로 오랜 기간에 걸쳐 일부 만회될 수도 있다. 하지만 재정을 투입한 만큼의 선진 노하우 습득, 전문인력 양성이 무엇보다 이뤄지지 않았다.
또 보고서는 “탐사·개발·생산 등 단계별로 최적화된 포트폴리오 전략 없이 생산자산 위주의 비용·저수익형 투자에 집중”(‘포트폴리오 불균형’)하고, “가치 하락 등 저수익성 사업을 처리하는 노력에 소홀”(‘구조조정 미흡’)했다고 지적했다. 실패한 투자로 결국 석유·광물공사는 2008~2012년 부채가 갑절 이상 커졌다. 이는 본질적으로 “자주개발률 달성을 위해 단기간 인수합병 등 물량 위주의 양적 성장에 치중한 결과”(‘투자 효율성 악화’)라는 것이다.
보고서는 ‘자원외교’의 성과도 담았다. 자주개발률 확대, 공기업 대형화, 핵심지역 진출, 미래 성장잠재력 등 4가지다. 무리한 자주개발률, 양적 성장 정책이 사업 실패의 원인인데, 자주개발률 확대와 공기업 대형화는 실익이 됐다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 시도된 이명박 정부의 자원외교 추진 방식에 대한 ‘반성’은 지난해 말부터 부정되기 시작했다. 지난달 산업부가 국정조사를 대비해 여당인 새누리당에만 제출한 ‘해외자원개발 현황 및 주요 쟁점’ 보고서를 보면, ‘질적 성장’과 ‘공기업 부채’ 두 가지만 해외자원개발 사업의 보완 사항으로 꼽혀있다. 되레 “(2008년 이후) 해외 석유기업 M&A(인수합병) 등을 통해 대형화, 운영권 확보 등을 통한 석유개발 역량 강화”를 성과로 내세웠다. “양적 성장에 치중”해 자원개발 사업의 “역량 강화에 소홀”했다는 전년도 진단은 온데간데없다. △투자비 26조원(석유·광물·가스공사) 대비 30조원이 회수 전망되고, 이명박 대통령 등의 해외 순방 중 양해각서를 체결한 사업에서도 상당한 수익이 예상된다는 점 또한 부각됐다. 박근혜 정부 들어, 기존 사업방식을 애써 ‘폐기’한 이유마저 스스로 회칠한 격이다.
산업부는 비공식 정보나 현지 자문사에 주로 기대 탐사사업을 추진한 참여정부와 달리 이명박 정부에선 대형 자문사가 주로 활용되었다는 점도 치적으로 삼았다. 이에 전순옥 의원은 “3대 공사의 67개 사업 가운데 40건이 당초 민간사업자한테 제안받은 것이며, 수익이 바로 나야 하는 개발·생산 사업으로 대형 자문사가 관여한 24개 가운데 23개 사업의 회수율이 0%”라며 “최근 산업부의 자료는 상당 부분 왜곡·조작됐다”고 말했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뒷돈 받고 공금 유용까지…남은 사업비로 전직원에 TV 돌려
[탐사 기획/MB ‘31조 자원 외교’ 대해부]
28억 챙기다 적발된 석유공사 소장
골프장 법인회원권 가족끼리 사용
공기업, 이사회 승인 없이 상품권
기준 어기고 성과급 나눠갖기도
“공기업 경영진은 자기 임기 중 감사로 문제만 안 터지면 된다고 본다. 직원 대부분도 (정부의) 기관평가 잘 받고 그래서 성과급 잘 받으면 된다는 거다.”
해외자원개발사업 전선에 섰던 한 에너지 공기업 고위 임원이 20일 <한겨레>에 던진 푸념이다. 공기업들은 탐사·개발·생산에 걸쳐 여러 ‘공익’ 사업에서 실패했다. 그러나 자신들에게 직접 이득이 된 ‘돈맥’만은 놓치지 않았다.
석유공사의 류아무개(당시 1급)씨는 카자흐스탄사무소 법인장을 맡던 2011년 4월 골프장 법인회원권을 매입했다. 공사 예산 2700만원가량을 사용했다. 본사 승인 사항이지만 무시했고, 회원권 사용 대장도 만들지 않았다. 1년이 더 지난 뒤의 기관 자체감사 결과, 류 소장은 6개월 남짓 만에 가족과 함께 모두 20차례(18홀 기준) 골프를 즐긴 사실이 확인됐다. 한달 평균 세 차례 이상이다. 공사는 류 소장에게 감봉 1개월의 징계를 내렸다. 막상은 포상 실적을 이유로 견책만 줬다.
류 소장은 이듬해 3월 구속된다. 석유공사가 카자흐스탄 석유회사인 숨베사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현지 사무소장 신분으로 한 퇴직 동료와 함께 28억원가량을 챙기다 적발(<한겨레> 1월19일치 3면)된 탓이다. 2011년 8월 이명박 대통령이 강영원 석유공사 사장 등을 대동해 카자흐스탄을 방문했을 때도 류 소장이 현지 책임자였다.
개인 비리나 도덕적 해이로만 치부하기 어렵다. ‘자원외교’라는 거대한 물줄기에 다들 떠 있었기 때문이다.
카자흐스탄은 ‘이명박 자원외교’의 주요 거점이었다. 자원외교 총리를 자처했던 한승수 전 국무총리가 2008년 5월 방문한 이래, 이명박 대통령이 세 차례(2009·2011·2012년), 최경환 지식경제부 장관이 한 차례(2010년) 방문해 ‘자원’을 외치던 나라다. 공기업들이 달려들 수밖에 없었다. 비리도, 돈잔치도 이 줄기에서 배양된 셈이다.
정작 사업 결과는 초라했다. 무분별하게 해외사업을 사들이며, 가령 자산이 2007년 12조6000억원에서 2013년 43조7000억원으로 3.5배 커진 가스공사는 부채 또한 228%에서 389%로 커졌다.
공사들은 돈잔치를 위해 규정도 어겼다. 가스공사는 전년도 월평균 기본급이 성과급 기준이라는 규정을 어기고, 전년도 12월치 기본급을 기준으로 삼아 2012~2013년에만 5억9258만원의 성과급을 더 나눠 가졌다.
석유공사는 영국 다나사를 인수한 2010년 말부터 남은 사업비로 전 임직원 1025명에게 엘이디(LED) 티브이와 노트북을 ‘쐈다’. 13억원가량을 썼다. 이 돈들은 복리후생비로 쓸 수 없는 예산인데도 회사는 이사회 승인 없이 (강영원) 사장 결재로 집행했다. <한겨레> 확인 결과 비정규직은 티브이도, 노트북도, 상품권도 받지 못했다.
해외자원개발에 나선 공사들은 현지 파견 직원들의 어학 지원비나 통화비도 과다하게 지원했다.
민간기업이었다면 이처럼 쓸 수 없는 돈들이다. 대기업 소속으로 아시아 자원개발 사업차 파견 나가 있는 한 직원은 “공기업은 돈 번 사례가 거의 없지만, 우린 자원개발사업으로 돈을 벌고 있다. 사기업들은 돈이 안 되는 사업은 쳐다도 안 본다”며 “사업 명분이나 내용, 씀씀이도 다르다. (공기업들이 이라크 정부 등에 지급한 대가의 일부인) 서명 보너스도 관례라고 말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실제 사기업은 운명을 건다. 에스티엑스(STX)는 조선소, 자원개발 사업 실패 등을 거듭하다 끝내 법정관리에 내몰려 있다.
일본은 무리한 투자로 2조엔에 이르는 손실을 발생시킨 석유공단을 2004년 해체해버렸다.
임인택 김정필 기자
‘쿠르드 유전 문제될 게 뻔해’ 중동 담당 실무자 끝내…
[탐사 기획/MB ‘31조 자원 외교’ 대해부]
공사직원 ‘재해조사서·경찰기록’
“상사들은 임기끝나면 없을거고
결국 내가 다 뒤집어쓸수 있다”
상부질책과 사업확대 부담느껴
두번째 사표 반려뒤 극단적 선택
▶ 한 눈에 보는 ‘MB 31조 자원 외교’ 대해부
“(이라크) 쿠르드 사업이 나중에 분명히 문제가 될 거라 말했었습니다. 나중에 문제가 터졌을 때 상사들은 임기가 다 끝나서 회사에 없을 거고, 결국은 실무 담당했던 자신이 다 뒤집어쓸 수도 있다고 걱정했습니다.”
그의 아내가 세상에 전해준 말이다. 그 남편의 말을 직접 물을 수 없었다. 그는 2011년 6월3일 자신의 집 안방 화장실에서 삶을 접었다. 아침 7시30분께, 15년 출근길에 맸던 넥타이에 그가 매달려 있었다. 석유공사 중동탐사팀 배아무개 과장이다. 당시 마흔살, 두 자녀의 아빠였다.
당일 아침 남편의 부고를 회사에 알린 아내 임아무개(41)씨는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을 (회사는) 어느 정도 예견한 듯한 분위기였다. 화가 나고 미칠 것 같은 심정이었다”며 “정부가 사활을 걸고 뛰어든 사업에… 이런 말도 안 되고 힘든 환경에서 (남편은) 묵묵히 일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사실은 <한겨레>가 한정애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고 배 과장의 ‘재해조사서’(근로복지공단), 경찰조사 기록 등으로 확인된 내용이다.
유가족의 분노가 회사와 정부를 향한 데엔 까닭이 있다. 석유공사는 대학에서 지질학을 전공한 배 과장의 첫 직장이었다. 과묵하기로 정평 난 그가 “국내탐사팀에 근무할 때 행복했었다”고 한 말을 동료들은 기억한다. 배 과장은 2010년 12월부터 중동탐사팀에서 이라크 쿠르드 사업의 실무 책임을 맡았다. 불행의 시작이었다.
이라크 쿠르드 원유개발 사업은 ‘이명박 자원외교’의 첫 결실이었다. 2008년 2월 이명박 대통령 인수위원회가 개입해 쿠르드 지방정부를 상대로 19억배럴짜리 유전광구를 확보했다는 것이다. 막상 파보니 돈 되는 원유는 많지 않았다. 되레 공사는 약속한 건설투자(SOC)에 발목 잡혔다. 쿠르드 정부가 건설투자 사업이 부진하다며 애초 계약한 보상 원유량을 줄이고, 건설투자비를 아예 현금으로 달라고 계약 변경을 요청하면서다. 배 과장이 인사가 날 즈음인 2010년 말 해당 사업의 손실은 1조3000억원(감사원 감사 결과)에 육박했다.
‘이명박 자원외교’ 북소리에 맞춰, 석유공사는 암초 위에서도 노만 젓는 격이었다. 배 과장 쪽은 “현 정부의 자원외교 국책사업으로, 회사는 석유사업에 참여하는 대신 쿠르드 지역에 사회기반시설을 제공하기로 했으나 탐사가 기대에 못 미쳤다. 그럼에도 회사는 (오히려) 사업 범위를 확대했다”고 말했다.
실제 회사 법무팀의 고아무개 과장(변호사)은 “공사는 민간기업과 그 성격이 달라 (사업 내용에 대한) 일회성 정부 신고에 그치지 않고, 정부 요구 시 수시로 정보를 보고해야 하며, 사업 방향을 점검받아야 한다”며 “공사는 쿠르드 정부와 계약 수정을 통해 사업 범위를 확대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직장 동료는 “사장, 부사장으로부터 많은 지시나 질책을 받아 부담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닷새 중 평균 나흘을 야근하던 배 과장은 무너졌다. 업무 고충 위로 불안감이 포개졌다. 한 동료는 “이라크 사업 자체가 무리한 사업 추진으로 절차적, 법률적 모순이 많다고 (배 과장이) 토로”했다고 말한다. 집에선 수면유도제를 먹기 시작했다. 회사에선 “구속되겠다” “죽겠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언젠가 ‘감사받을 때 다 일러버릴까?’ 묻는 배 과장에게 아내는 “우리나라에선 내부고발자 삶은 너무 힘드니 그냥 자기가 그만두고 나오라고 했다”고만 말했다.
배 과장은 5월30일 사표를 제출했다. 목숨을 내던지기 나흘 전이고, 4월20일자 사표에 이어 두번째였다. 회사가 거부했다.
6월 들어 계약 협상을 위한 쿠르드 출장 준비가 배 과장에게 할당됐다. 강영원 사장, 김성훈 부사장 등이 동행할 참이었다.
그즈음이었다. 화장실 앞에서 쭈그린 채 우는 배 과장을 동료들은 보았다.
6월2일 아침 배 과장은 슬리퍼를 신고 출근했다가 한참 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밤 11시가 넘어 퇴근했다. 종일 회의였다. 귀가한 배 과장에게 아내는 부러 말을 아끼고 데워둔 홍삼즙만 건넸다. 자기 전 담배 피우러 집 밖으로 나가겠다는 배 과장은 속옷 차림이었다. 거실에서 자던 아내가 놀라 옷을 입혔다. 새벽 5시께 배 과장은 깼다. 다시 누웠다 6시30분께 또 깼다. 7시쯤 담배를 피우고 들어왔다. 그리고 배 과장은 영영 출근하지 않았다.
열달 뒤인 2012년 4월 석유공사는 내부보상심의를 열어 배 과장 유족 쪽에 보상금 1억5000만원(장의비 1200만원 별도)을 제공했다. 합의서엔 “(회사) 임직원에게 망인의 사망과 관련한 추가적인 민형사상 책임을 제기하지 아니한다”는 조항이 포함됐다.
사망 1년여 만인 2012년 7월 배 과장은 산재보상보험법상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는다. 가족은 석유공사에서 받은 보상금을 모두 반납했다. 그 또한 합의 사항이었다.
아내 임씨는 “당시 장례식장에 온 (강영원) 사장님에게 제 남동생이 ‘너무 화가 나고 참을 수가 없다’고 했더니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1주일마다 회의를 했는데 배 과장 힘들단 말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더란다”며 “5월30일 사직서가 책상 서랍에서 나왔단 말을 듣고 가슴이 찢어지고 아팠다”고 말했다.
배 과장은 유서도 남기지 않았다. 흑색 빼곡한, ‘자원외교’용 업무수첩만 가족에게 겨우 되돌아왔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자주개발률 1.8%p 올렸다고…석유공사 211억 성과급
[탐사 기획/MB ‘31조 자원 외교’ 대해부]
③ 재앙이 된 무능, 공기업
▶ 한 눈에 보는 ‘MB 31조 자원 외교’ 대해부
2009년 10월 한국석유공사의 캐나다 하베스트사 인수는 국가적으로 1조원이 넘는 손실을 떠안긴 재앙이었지만, 석유공사에는 ‘축복’이나 다름없었다. 석유공사는 이 거래로 자주개발률을 1.8%포인트 끌어올리며, ‘2009 정부 공공기관 경영 평가’에서 비(B)등급을 맞았다. 그해 석유공사는 임직원 성과급을 211억6600만원 챙길 수 있었다. 시(C)등급으로 116억원을 받았던 2008년보다 한 계단 더 상승했다. 전체 임직원 1인당 평균 1800만원에 가까운 액수였고, 강영원 전 사장은 1억1500만원을 받았다. 당시 석유공사는 하베스트사와 사비아페루 등 바로 생산 가능해 자주개발률을 끌어올릴 수 있는 생산유전을 여럿 인수했다.
정부가 준 당근책으로 ‘돈잔치’가스공사는 2011년 196억 받아
자원개발 앞장선 공사 사장들
MB와 학연·지연 등으로 얽혀 석유공사뿐이 아니었다. 가스공사는 2010~2011년 캐나다 혼리버, 오스트레일리아 시엘엔지(CLNG) 등 8개 사업에 수조원의 투자금을 쏟아부은 뒤 공공기관 평가에서 전년도보다 한 단계 높은 비(B)등급을 맞고, 각각 184억원과 196억원의 성과급을 받았다. 광물공사도 2009, 2010년 멕시코 볼레오 동광과 마다가스카르의 암바토비에 각각 수천억원의 ‘부실 투자’를 진행했지만, 모두 100억원이 넘는 성과급을 수령했다. 이들 공사를 ‘성과급 잔치’로 이끈 열쇠는 바로 자주개발률 상승이었다. 2008년도 자원 관련 공기업 평가부터 ‘전체 에너지 수입량 중 우리가 직접 생산하는 비율’을 뜻하는 자주개발률이 주요 평가 항목으로 포함됐다. 자주개발률이 공기업 평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점점 높아졌다. 석유공사의 경우 2008년 100점 만점 중 3점에서 2010년 8점까지 치솟았다. 이런 유인장치로 인해 자주개발률은 2008년 5.1%에서 2011년 12.9%로 두 배 이상 급증했다. 자주개발률 제고를 통한 성과급 지급은 다른 한편으로 ‘채찍’이나 다름없었다. 자주개발률을 목표만큼 달성하지 못해 경영 평가에서 나쁜 평가를 받을 경우 사장은 책임을 져야 했다. 직원들이 받는 성과급도 크게 줄어들 수 있었다. 한 공기업 임원은 “책임지지 않는 ‘무데뽀’ 정신”이라고 얘기했다. 본인 임기 안에만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면 목표 달성을 위해 어떤 일이든 강행한다는 것이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 인연이 있는 실세 사장들은 거침없이 내달렸다. 대우인터내셔널 출신인 강영원 전 석유공사 사장은 소망교회를 다녔고, 김신종 광물자원공사 사장은 경북 안동 출신에 고려대를 졸업했다. 주강수 전 가스공사 사장은 현대종합상사에서 잔뼈가 굵은 현대 인맥이다. 이들은 때로는 이사회를 무력화하고(하베스트사 인수), 때로는 해당 국가 대통령의 경고(사비아페루 인수)를 무시하면서 오로지 자주개발률 상승을 위해 돌진했다. 감독 책임이 있는 옛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는 총리실과 청와대에 책임을 떠넘긴 채 ‘모르쇠’로 일관했다. 2009년 9월부터 지경부 장관을 1년 반 가까이 지낸 최경환 현 경제부총리는 지난해 10월 기획재정부 국정감사에서 ‘당시 지경부 장관으로서 책임을 느껴야 한다’는 지적에 “국무총리실에서 주도하고 범정부 차원에서 진행된 일을 개인한테 책임을 물을 상황은 아니다”라고 답했다. 다른 산업부 간부는 “우리는 사실상 자원외교에서 제껴져 있었다”며 “청와대와 총리실 등이 자원 관련 공기업과 직접적인 통로를 갖고 사업을 진행했다”고 말했다. 최현준 임인택 기자 haojune@hani.co.kr
비리 공사직원 11명만 징계받아… 감사원 지적받아도 내부서 감경
[탐사 기획/MB ‘31조 자원 외교’ 대해부]
‘이명박 자원외교’에 나섰던 에너지 공기업을 상대로 취재하긴 쉽지 않았다. 취재에 무대응하거나, 때로 방해까지 했다. 이들 공기업 대부분 외부 비판을 수용하는 데엔 지나치게 인색했고, 자신들을 두둔하고 옹호하는 데엔 관대했다. 이 대목에선 노조도 한몸이었다. 소나기만 일단 피하자는 태도처럼 보였다. 강영원 전 석유공사 사장은 지난달 <월간중앙>과의 인터뷰에서 “지금까지의 해외자원개발 사업이 국민 동의없이 임의로 추진된 것인 양 오해를 사고 있다. 감사원의 감사도 그런 기조에 입각해 진행돼왔다”며 감사원도 비판했다.
실패한 쿠르드 바지안 사업…최규선은 440억 수상한 돈챙겨
이명박 전 대통령이 2008년 2월14일 서울 통의동 접견실에서 네치르반 바르자니 쿠르드 자치정부 총리와 악수를 하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바르자니 총리와 악수하는 최규선씨. 사진공동취재단, 유아이에너지 누리집 갈무리 |
[탐사기획] MB ‘31조 자원외교’ 대해부
④ 눈먼 돈의 비극, 정경유착
2007년 11월 초. 한국석유공사에 한통의 전자우편이 도착했다. 당시 석유공사는 이라크 쿠르드 자치정부와 바지안 탐사광구에 대한 ‘생산물분배계약’(PSC)을 맺기 직전이었다. 전자우편 발신자는 쿠르드 천연자원부 장관이었다. 천연부 장관의 어투는 단호했다.
‘우리가 유아이(UI) 문제만 해결할 수 있다면 바지안이 블록(Block)이 될 수도 있다. 유아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바지안 생산물분배계약에 유아이를 포함시키는 것이다.’
여기서 언급된 유아이는 국내 에너지개발 전문업체인 ‘유아이에너지’였다. 유아이에너지를 석유공사 컨소시엄에 끼워줘야 계약서에 서명하겠다는 뜻이었다.
석유공사 이사회에선 그동안 유아이에너지 사업 참여를 극구 반대해왔다. 겉으론 컨소시엄에 참여한 다른 민간기업에 비해 규모가 작아 못 미더운 탓도 컸지만, 사실 속내는 다른 데 있었다. 유아이에너지 회장이 바로 김대중 정부 시절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최규선(55)씨였기 때문이다.
쿠르드 정부, 석유공사와 계약전최씨 회사 컨소시엄 포함 요구 그런데 석유공사가 쿠르드 천연부 장관에게 보낸 답변은 뜻밖이었다. 석유공사는 ‘유아이에너지로부터 의무이행각서를 받고 컨소시엄 회사로부터 지분 할당에 대한 동의를 구한 후 광권계약에 포함시켜줬다’고 했다. 의무이행각서의 내용은 파격적이었다. 국내 은행이 발행한 250만달러(27억여원)짜리 보증신용장을 공사에 제출하는 것이었다. 서명보너스만 2억달러(2176억여원)가 들어간 사업인 점을 고려하면 특혜에 가까운 조처였다.
최씨 계좌로 2차례 4천만달러 입금 <한겨레>가 박범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석유공사의 이라크 사무소 해외 송/입금 내역’을 보면, 유아이에너지는 바지안 광구 시추 비용도 제때 못 내 10차례나 지연이자를 물었다. 그런데도 정작 최씨 계좌에는 쿠르드에서 돈이 송금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최씨와 함께 사업을 했던 유아이에너지의 한 관계자는 “2012년 5월 어느 날 최씨가 회장실로 불러서 갔더니 ‘국외로 100억원을 반출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느냐’고 해서 어렵다고 거절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최씨와 쿠르드의 수상한 돈거래 의혹을 뒷받침하는 관련 증언도 나왔다.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고 요구한 한 회계사는 “유아이에너지 한 임원이 ‘쿠르드 쪽에서 돈이 계속 들어오는데 최씨가 5억원, 10억원씩 들고 나가서는 안 갖고 오는데 비용처리를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조언을 구해 이상하게 생각했다. 돈은 들어오는데 어딘가로 새고, 비용처리는 안 되는 구조로 보였다”고 말했다. 이라크 사정을 잘 아는 한병도 전 의원(현 한국-이라크우호재단 이사장)은 “쿠르드 자치정부 인사들은 정부돈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다. 일단 쿠르드 자치정부로 돈이 들어간 순간 그 돈이 누구의 것인지, 어디로 가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석유공사가 쿠르드에 보낸 서명보너스가 누구 계좌로 송금됐는지, 최종적으로 어디에 갔는지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파트너에 ‘국외 반출 방법’ 물어봐
최씨 작년 “수년전부터 추진 사업” 전순옥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실이 석유공사에서 제출받아 공개한 ‘쿠르드 서명보너스 지급내역 영수증’ 자료를 보면, 석유공사가 바지안 광구 개발을 위한 서명보너스 등 명목으로 쿠르드 천연자원부 장관이 지정한 계좌에 지급한 돈은 3000만달러(323억여원)이다. 석유공사는 5개 광구 계약을 대가로 총 3회의 서명보너스를 지급했는데, 이 가운데 2건은 독일의 중개은행을 통해 이라크 쿠르드 정부로 입금된 증명서가 확인이 됐지만 바지안 광구 계약을 대가로 지급한 서명보너스의 최종 송금 계좌는 중개은행인 영국 에이치에스비시(HSBC)은행이었다. <한겨레>는 최씨에게 돈을 송금한 내역과 관련해 쿠르드 정부 쪽에 전자우편으로 질의서를 보냈으나 답을 받지 못했다. 석유공사의 쿠르드 사업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자원외교 ‘1호 작품’으로 꼽힌다. 석유공사는 이라크 중앙정부 경고를 무시하고 쿠르드와 독자적으로 계약을 맺었다가 중앙정부 사업 입찰에 제한을 받았다. 쿠르드 5개 광구 탐사·개발에 지금까지 8494억원이 투자됐으나, 광구 3개는 원유 발견에 실패하고 사업을 철수했다. 확정된 손실액만 3755억원이다. 김정필 임인택 기자 fermata@hani.co.kr
[단독] ‘회장님’ 부탁에…116억 손실 떠안은 광물공사
[탐사기획] MB ‘31조 자원외교’ 대해부
④ 눈먼 돈의 비극, 정경유착
(왼쪽부터) 성완종, 김신종 |
김신종 한국광물자원공사 사장이 2009년 서울 대방동 공군회관에서 열린 CI 선포식에서 사기를 전달받고 있다.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
‘정경유착 상징’ CNK 주가조작 사건
[탐사기획] MB ‘31조 자원외교’ 대해부
④ 눈먼 돈의 비극, 정경유착
광산업체인 씨앤케이(CNK)인터내셔널의 주가조작 사건은 정경유착에 놀아난 ‘이명박 자원외교’의 상징이다. 박영준 전 국무총리실 국무차장이 2010년 5월 카메룬 총리에게 ‘한국 기업의 다이아몬드 개발권 확보’를 요청하는 등 전면 지원했던 사업이다. 외교부는 그해 말 씨앤케이의 개발권 획득을 알리는 보도자료를 냈다. 덕택에 2009년 1500원짜리에 불과하던 씨앤케이 주식은 2011년 8월 장중 1만8500원을 찍었다. 2012년 1월 증권선물위원회는 주식 거래자들을 검찰에 고발했다. 정치인·관료 중엔 김은석 국무조정실 외교안보정책관만 유일하게 기소된 상태다. 주가 조작이 아닌, 허위 보도자료 배포 혐의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탐사 실패해도 전액 감면 ‘성공불융자’…대기업 돈창구
[탐사기획] MB ‘31조 자원외교’ 대해부
④ 눈먼 돈의 비극, 정경유착
1989년 경인에너지와 석유개발공사가 함께 중앙아메리카의 에콰도르에서 유전탐사에 나섰다. 이들은 정부로부터 1250만달러(약 140억원)의 성공불융자를 받았다. 자원탐사를 지원하는 제도인 성공불융자는, 실패할 경우 원리금을 전액 감면받고, 가능성이 높지 않지만 성공했을 때는 원리금보다 훨씬 많이 갚는다. 1990년 에콰도르 광구에서 석유가 발견됐지만 경제성이 낮았다. 사업은 실패했고, 결국 1995년 종료됐다. 융자금을 탕감받는 과정을 거쳐야 했으나, 기업도, 정부도 신경쓰지 않았다.
잊혀진 사업이 수면 위에 떠오른 것은 3년 전인 2012년이다. 산업통상자원부 규정이 바뀌어, 실패 사업에 대한 성공불융자 감면 신청 기한이 새로 생기면서다. 2006년 경인에너지를 인수한 에스케이(SK)이노베이션이 뒤늦게 해당 사업의 성공불융자에 대한 회계상 ‘감면’ 절차를 밟았다. 시간이 오래 지나 감면에 필요한 회계감사 보고서를 완전히 갖추지 못했지만 정부는 융자금의 99.7%를 감면해줬다. 돈이 제대로 쓰였는지, 엉뚱한 곳으로 새지는 않았는지 등은 철저하게 확인하지 못했다.
나랏돈이 100억원 넘게 지원된 사업이 성과 없이 종료됐지만, 기업은 물론 정부도 17년 동안 별다른 조처를 취하지 않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고세호 산업자원부 사무관은 “성공불융자 제도상 감면 신청 기한이 따로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제도상 정해진 기한이 없다 보니, 정부가 굳이 살펴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에스케이이노베이션 쪽은 “원래 우리 사업이 아니라 2006년 인수한 경인에너지 사업이었다. 인수 과정에서 이 사업이 제대로 이전되지 않은 것 같다”며 “정부가 2005년부터 2011년까지 감면 신청을 받지 않은 것도 (17년 만에 감면이 이뤄진) 또 다른 이유다”라고 말했다.
에콰도르 유전개발 실패17년만에 융자금 99.7% 감면
현지 실사 대부분 시늉 그쳐 이렇게 정부의 방관과 기업의 무관심 속에 성공불융자는 ‘눈먼 돈’이라는 꼬리표를 달게 됐다. 앞서 2008년에는 아프리카 베냉 유전 개발 과정에서 석유공사 직원이 사업비를 부풀리는 방식 등으로 성공불융자를 빼돌린 사실이 드러나면서 불신의 골은 깊어졌다. 뒤늦게 정부는 2012년 ‘해외자원개발사업자금 융자 기준’에 감면 신청 기한을 2년으로 새로 규정했다. 사업 종료 뒤 2년 안에 감면 신청을 하도록 한 것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 격’이다. 성공불융자 사업은 여전히 빈 곳이 적지 않다. 무엇보다 자원 관련 공기업과 특정 대기업에 지원이 집중되고 있다. 정부는 이를 자원개발 사업의 특성 탓이라고 설명한다. 사업 규모가 워낙 크다 보니 받을 수 있는 기업이 한정돼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석유개발 융자를 받은 40여곳 중 석유공사와 에스케이이노베이션, 대우인터내셔널 등 3곳에 전체 지원금의 60% 이상이 집중돼 있다. 이들은 감면액에서도 80% 이상을 차지한다. 돈이 제대로 쓰이는지에 대한 확인도 제한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2011년 현지 실사 제도가 도입됐지만, 연간 두 차례씩 모두 8차례 이뤄졌을 뿐이다. 대부분 현장을 한번 방문하는 수준이다. 이름 밝히기를 꺼린 한 자원 관련 사업가는 “하루짜리 실사로는 알 수 있는 정보가 제한적이다. 수조원의 예산이 투입된 만큼 강도 높은 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성공불융자는 도입 이후 2013년까지 모두 27억달러(2조9300억원)가 지원됐고, 14억달러가 회수됐다. 감면액은 6억달러(6500억원)에 이른다. 최현준 기자 haojune@hani.co.kr
산업은행 총재 딸 채용한 뒤에…캐나다 투자사 ‘횡재’
민유성 나무코프 회장의 2008년 산업은행 총재 취임식 장면. 산업은행은 이후 자원외교 금융 지원에 중요한 구실을 했다. 연합뉴스 |
[탐사기획] MB ‘31조 자원외교’ 대해부
④ 눈먼 돈의 비극, 정경유착
민유성(61) 나무코프(사모펀드 운용사) 회장이 한국산업은행 총재 시절 캐나다 투자금융회사인 아르시아이(RCI)캐피털을 국내 에너지 공기업에 소개해주기 전, 민 회장의 딸이 아르시아이캐피털과 고용계약을 맺었던 것으로 21일 드러났다. 또 민 회장은 산은 총재 때 1000억원대 투자협약을 맺은 사모투자펀드 운용사 티스톤에 재취업한 뒤 아르시아이캐피털과 3억달러(3260억여원) 규모의 합작펀드 조성을 추진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2008년 12월
‘Employment Agreement between RCI and Y Y Min.’ 2008년 12월8일, 아르시아이캐피털이 작성한 6쪽 분량의 고용계약서 제목이다. <한겨레>가 입수한 이 문건에 나오는 피고용자는 민아무개(33·여)씨다. 아르시아이는 당시 26살이었던 민씨에게 ‘한국 시장 애널리스트’란 명함을 줬다. 민씨는 대학·대학원에서 경제 분야를 전공한 적이 없다. 민씨의 급여는 월 3000캐나다달러(272만여원)였다. 이 문건이 불러온 ‘나비효과’가 훗날 광물자원공사의 손실로 이어질지는 당시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 민씨는 당시 국내 최대 국책은행 총재를 맡고 있던 민유성 회장의 딸이었다.
딸 취업시키고 업무 협약
광물공사 끌어들여 투자 유치
‘500억 과다 지급’ 칠레 비극낳아 사모펀드 티스톤과 출자 약정하고
퇴직 뒤 그 회사 회장으로 취업도 라일리는 “민 회장은 존 박 사장을 캐나다에서 자원개발사업을 하는 유용한 창구로 봤다. 민 회장이 퇴임한 뒤 산업은행이 아르시아이캐피털과 맺은 업무협약은 끝났다”고 말했다. 그는 “아르시아이캐피털은 실체가 불분명한 회사다. 한국 방문 당시 존 박 사장은 캐나다 ‘투자은행’(IB)이라고 소개했으나 캐나다에서 단 한번도 투자은행으로 등록된 적이 없다. 자원개발 분야도 잘 모른다”고 말했다. 민 회장과 존 박 사장의 커넥션은 민 회장 퇴임 뒤 수상한 돈의 흐름과 궤적을 같이해 이어진다. 2011년 10월 2011년 10월4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장. “퇴직 후에 먹고살 자리를 미리 현직에 있을 때 만들어 놓고 회장으로 취임했는데,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 틀림없이 이 1470억원을 넣을 때 뒷거래가 있지 않았나 보고 있다.” 배영식 당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의원은 민 회장의 퇴임 전후 행적을 놓고 목소리를 높였다. 배 의원 얘기를 종합하면, 민 회장은 산업은행 총재 시절 사모펀드 운용사인 티스톤과 만든 사모펀드에 산업은행 돈 1470억원을 출자하기로 약정했다. 민 회장은 2011년 3월11일 퇴임한 뒤 곧장 티스톤 회장으로 취임했다. 2012년 5월 눈여겨볼 대목은 민 회장의 ‘동선’에 아르시아이캐피털이 또다시 등장한다는 점이다. 티스톤 회장 재직 때인 2012년 5월17일 민 회장은 아르시아이캐피털과 손잡고 3억달러 규모의 합작 펀드를 조성했다. 각각 1억5000만달러(1630억여원)씩 돈을 내기로 했다. 라일리는 “민 회장이 산업은행을 떠난 뒤 티스톤을 만든 자금은 어디서 온 것인지 궁금하다. 존 박 사장은 항상 현금이 넘쳐났다”고 말했다. 민 회장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딸 취업은 존 박 사장과 개인적인 친분에서 이뤄진 것으로 대가성은 전혀 없는 일이다. 실제 딸은 한달 인턴만 하고 그만뒀다. 존 박 사장은 캐나다 자원개발에 전문성이 높은 인물로, 그의 능력을 믿고 국내 에너지 공기업이 캐나다에 진출하는 데 도움을 주고자 업무협약을 맺은 것이다. 티스톤과 아르시아이캐피털의 합작 펀드도 결국 무산됐다. 존 박 사장과 금전 거래 등도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김정필 류이근 기자 fermata@hani.co.kr
풀어야할 5가지 의문
[탐사기획] MB ‘31조 자원외교’ 대해부
(5) 증발한 수조원, 의문과 책임
<한겨레> 탐사기획팀의 석달 취재에도, 풀리지 않는 의혹들은 여전히 많다. 해외자원개발 사업이 이뤄진 시간(과거)과 공간(국외)의 제약 때문에 취재 결과물은 ‘미완성’ 상태다. 국회 해외자원개발 진상규명 국정조사특별위원회가 다뤄야 할 ‘미생’의 의혹들을 정리해봤다.
멕시코 볼레오 동광. <한겨레> 자료사진 |
① ‘볼레오’에 투입됐다던 3962억원은 어디로 갔나 ■ 볼레오·쿠르드 ‘사라진 돈’ 광물자원공사의 멕시코 볼레오 사업 채권은행이던 미국 수출입은행 보고서에는 ‘현장은 관리도 되지 않고 횡령 사고가 발생했다’는 기록이 있다. 2012년 투입됐다고 장부에 나타난 금액은 3962억원이다. 공사가 제대로 진척되지 않은 상황에서 장부상 지출된 이 돈은 어디로 갔을까. 김경율 회계사는 “자금 유용 사건과 공사 차질이 빚어지는 등 실제 투자금이 제대로 쓰였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석유공사의 이라크 쿠르드 사업에서는, 공사가 쿠르드 천연자원부 장관 계좌로 송금한 세차례의 서명 보너스 가운데 한건은 쿠르드가 아닌 영국 런던 소재의 에이치에스비시(HSBC) 은행 계좌로 들어갔다. 검찰 특수부 출신의 한 변호사는 “국외로 돈이 나가면 추적이 어렵다. 국외 수사기관과 협조해 오랜 시간 자금 추적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볼레오동광 노천 채굴 장면. <한겨레> 자료사진 |
② 자원테마주 널뛰기, 주가조작? ■ 자원 테마주 ‘주가 조작’ ‘씨앤케이(CNK) 주가 조작’ 사건의 뼈대는 ‘정부의 허위 매장량(다이아몬드) 발표→주가 띄우기→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공무원 시세차익’이다. 이는 씨앤케이 사업에만 국한됐다고 보기 어렵다. 옛날 방식으로 뒷돈을 받는 건 위험성도 크고 법적 처벌도 무겁다. 반면 ‘주가 조작→시세차익’은 노출 우려도 적고 상대적으로 처벌 수위도 낮다. 공사의 사전 투자정보를 알고 있는 위치라면, 미리 관련 주식을 사놨다가 엠오유(MOU) 발표로 주가가 출렁일 때 팔아치우면 쉽게 돈을 벌 수 있다. 최규선 유아이에너지 대표는 자원개발 사업 관련 주가를 조작한 혐의로 기소돼 재판 중이다. 한 정치권 인사는 “해외자원개발 사업 정보가 집중된 이명박 정부 핵심 인사들과 담당 공무원, 그들의 친인척 주식거래 현황을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메릴린치의 석유공사 자문 보고서 표지. <한겨레> 자료사진 |
③ 248억 메릴린치 자문료, 뒷거래? ■ ‘돈잔치’ 메릴린치의 축복 이명박 정부의 해외자원개발 사업으로 투자자문사엔 큰 시장이 열린 셈이었다. 에너지 공기업은 투자 결정 전 투자자문사의 자문을 받았다. 수천억원에서 조 단위 사업들이 많다 보니 자문료 규모도 컸다. 석유공사가 2008~2010년 신규 투자한 18조원의 자원개발 사업 가운데 12조원에 이르는 4건의 대형 국외투자 사업이 메릴린치의 자문을 거쳤다. 자문료는 248억원이었다. 메릴린치 서울지점장은 이 전 대통령의 집사로 불리던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의 아들인 김형찬씨였다. 메릴린치 자문사 선정 과정에 특혜는 없었는지, 자문 내용이 실제 가치가 있었는지 등이 의혹으로 남아 있다.
캐나다 하베스트사 생산 현장. <한겨레> 자료사진 |
④ 하베스트 인수, 누구 책임? ■ ‘하베스트’ 최경환 책임론 석유공사의 캐나다 하베스트 인수는 ‘이명박 자원외교’의 최대 재앙이다. 석유공사가 메릴린치에 하베스트 경제성 평가를 맡긴 지 사실상 사흘 만에 인수 가격이 뚝딱 나왔다. 12시간 만에 그 인수 가격보다 많은 최종 인수 가격이 확정됐다. 당시 강영원 석유공사 사장과 최경환 지식경제부 장관은 대통령 수행 출장 중이었다. 최 장관은 더 구체적으로 보고받았을 가능성이 있다는 <한겨레> 보도에 정정보도를 요청했다. 최 장관은 하베스트 인수 직후인 2009년 11월 국정감사에서 “(인수 가격이) 리즈너블(적정)했다”고 말했다. 주무 장관이던 그는 이제 와서 ‘나는 책임이 없다’는 태도로 일관한다. “청와대와 국무총리실이 주도했다”는 것이다.
미국 이글포드 광구 현장. <한겨레> 자료사진 |
⑤ 삼성물산에 원금 보장, 특혜? ■ ‘석유공사-삼성물산-국민연금’ 수상한 거래 미국 이글포드 사업에선 석유공사와 삼성물산이 2011년 2월11일 컨소시엄을 구성했다. 삼성물산의 지분은 20%였다. 당시 합의서를 보면, 통상의 합의서와 달리 탈퇴 당사자에게 유리한 조항들이 여럿 들어 있다. “(컨소시엄) 탈퇴를 이유로 다른 참여사는 탈퇴 당사자에게 손해배상 등 청구를 하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삼성물산은 예정이라도 한 듯 합의서 작성 17일 만인 2월28일 탈퇴하고, 그 자리에 국민연금이 간접투자 방식으로 1년 뒤 들어왔다. 삼성물산이 이런 이해할 수 없는 태도를 보인 배경은 무엇일까. 왜 이런 ‘의문의 거래’를 했는지 쉽게 이해 가지 않는 대목이다. 김정필 류이근 임인택 최현준 기자 fermata@hani.co.kr
“여당은 시간끌기·정부는 왜곡”…국정조사가 위기다
[탐사기획] MB ‘31조 자원외교’ 대해부
(5) 증발한 수조원, 의문과 책임
자원외교 국정조사위 여야 간사가 22일 협상을 벌이고 있다. 왼쪽은 홍영표 새정치민주연합, 오른쪽은 권성동 새누리당 의원.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
여야가 합의한 자원외교 국정조사를 앞두고, 정부와 공공기관들이 의회의 국정조사권조차 무력화하고 있다. 의회가 요구한 정책, 사업 정보를 숨기거나 왜곡하는 일이 적지 않다는 주장이다. 뒤틀린 자료들은 ‘자원외교’의 성패와 교훈점, 대안을 따지려는 국정조사에서 정부의 대응 논리로 고스란히 활용될 전망이다. ‘하나 마나 한 국정조사’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지난 석달 동안 <한겨레> 취재에 ‘모르쇠 또는 은폐’로 대하던 이들이, 막상 보도가 나가자 ‘동어반복 식의 반박 또는 거짓 해명’을 되풀이했다. 정부는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 대한 ‘자원외교 책임론’에 가장 예민해했다. 현 정부와의 거의 유일한 ‘고리’인 탓으로 보인다. 최 부총리는 지난해 10월까지 지식경제부 장관 시절 하베스트 인수 계약을 앞두고 석유공사 강영원 사장의 보고를 따로 받은 적이 없다고 국회에서 증언했다. 다음달 “보고(는) 받았다”고 말을 바꿨다. 대신 “5~10분 정도 보고”에 방점을 찍었다. 하지만 여러 문서와 기록을 토대로, 최 장관과 강영원 사장이 만난 날은 2009년 10월17일이 아닌 10월18일로, 강 사장이 하베스트 현지 협상 출장을 마치고 돌아온 직후의 직보였으며, 대면 시간도 1시간 안팎일 가능성이 제기됐다.
수시로 말바꾸기
‘자주개발률 부풀리기’ 산업부
원유 처분권 놓고 잘못 해명
공기업은 대부분 무대응 일관 여야 자원외교특위 출범 3주일
‘하나마나한 국정조사’ 가능성 산업부 자원개발전략과 담당 공무원은 취재진에게 욕도 했다. ‘유가스 처분권’에 대한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과정에서다. 의회도 제출받지 못한 행정부 자료가 넘친다. 국무총리실 주도의 ‘에너지협력외교 지원협의회 개최자료 및 회의록’도 그 가운데 하나다. <한겨레>의 정보공개청구에 총리실은 “공개될 경우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해할 우려가 있다”며 비공개했다. 여러 야당 의원의 요청도 번번이 거부됐다. 하베스트 인수계약 사흘 전인 2009년 10월19일 8차 에너지협력외교 지원협의회가 열렸다. 당시 주제가 ‘주요 현안사업 추진 경과 및 향후계획’이었다. 하베스트 사업이 지식경제부를 넘어, 범정부 차원에서 공유·논의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되지만 확인 불가다. 외교부는 2010년 12월17일 민간기업 씨앤케이(CNK)가 카메룬의 다이아몬드 개발사업권을 따냈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이후 씨앤케이 주가가 폭등했다. 주가조작 사건이었다. 외교부는 ‘씨앤케이 사업권’을 앞서 열린 13차 지원협의회(10월26일)에도 ‘자원외교 성과’로 보고했다. 당시 회의 참석자들과 논의 내용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공기업 대부분이 외부 비판을 수용하는 데에 지나치게 인색했다. 취재엔 철저히 무대응으로 맞섰다. 이라크 쿠르드 정부로부터 사례금을 받아 6개월가량 뒤 신고한 것이 문제라는 보도에, 사례금을 받았으나 ‘쿠르드 쪽 요청으로 받아 경고 조치만 했다’고 해명했다. 사실이 같은데 판단은 다르다. 전순옥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자원외교 관련 부패와 비리의 증거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는데, 정작 여당은 시간끌기, 산업부와 공기업은 자료 조작 및 은폐로 국정조사 방해 중”이라며 “국정조사를 제대로 하려면 수치 싸움이 아닌, 관련자 조사와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제남 정의당 의원은 “지난달 국회 현안질의에서 최경환 부총리가 사업성과 등을 내세웠는데, 이후 알고 보니 윤상직 산업부 장관이 지시해 만든 방어용 자료가 근거”였다며 “정부의 국조특위 조사권 방해는 박근혜 대통령의 ‘자원외교’ 인식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라고 말했다. 국조특위 새누리당 간사인 권성동 의원은 22일 “엠비 정부의 해외자원개발 정책은 참여정부 정책기조에 뿌리를 두고 있다”며 “현직 부총리(최경환)와 장관(윤상직)이라는 이유만으로 비리와 부정에 관련된 것처럼 (야당이) 정치공세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임인택 최현준 김정필 류이근 기자 imit@hani.co.kr
‘자원외교 탐사기획’ 후속 취재는 계속됩니다 <한겨레>가 지난 19일부터 다섯 차례에 걸쳐 보도한 ‘MB 31조 자원외교 대해부’를 23일치로 마칩니다. 지난 석달 동안의 탐사취재를 통해 새롭게 발굴한 사실과 현장, 새 관점으로 ‘이명박 자원외교’를 재구성했습니다. 해외자원개발 사업은 멈출 수 없는 과제입니다.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명박 자원외교’에 대한 평가와 교훈점은 시민의 이름으로 기록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더 많은 독자와 공유하고 고민해야 했습니다. <한겨레>가 보도에 앞서 뉴스 유통 실험(페이스북 검색창에 ‘자원외교’ 검색)을 기획한 까닭입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으로 뉴스를 전파하겠다는 독자의 약속(액션리더, Action Reader)을 모집했습니다. 행동하는 독자의 뉴스 유통을 희망했습니다. 각양각색의 호응과 격려, 제보를 받았습니다. 이를 토대로 국정조사가 마무리될 때까지 <한겨레> 탐사기획팀의 후속 취재도 계속 이어갈 예정입니다. 액션리더도 계속 모집합니다. 약속대로 페이스북을 통해 몇 분을 추첨해 ‘혜택’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기획 공동참여: 전순옥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실(박현숙 비서관), 김제남 정의당 의원실(서준섭 보좌관) 도와주신 분들: 고기영 한신대 교수, 김경율 회계사, 김형민 정책네트워크 내일 부소장, 숀 라일리 전 캐나다 RCI 부사장, 한병도 전 의원, 박범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실 백문영 보좌관, 박원석 정의당 의원실 김진욱 비서관, 홍영표 의원실 장철민 비서관, 부좌현 의원실 홍창훈 비서관, 김현 의원실 최일곤 보좌관, 전정희 의원실 김보람 비서관, 한정애 의원실 조선옥 보좌관 등 편집: 김원일 기자 그래픽: 이상호·이임정·노수민 기자 티저뉴스 연출: 이경주 피디(<한겨레TV> ‘추리의 시대’)
자원외교 의혹 ‘10인’은 답하라
[탐사기획] MB ‘31조 자원외교’ 대해부
(5) 증발한 수조원, 의문과 책임
이명박 정부 시절 31조원이 투자된 해외자원개발 사업에서 부실의 증거들이 끊이지 않고 드러나고 있다. 집계된 손실만 3조9000여억원이고, 향후 몇조원의 손실이 더 발생할지 알 수 없다. 정책 입안자와 핵심 관련자들은 현재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국가 정책이라는 틀 속에 모두 ‘묻고 가자’는 식이다. 일각에서는 ‘자원외교’의 잘잘못을 캐는 행위가 자칫 자원개발 산업 전체를 망가뜨릴 수 있다는 걱정을 내놓는다.
하지만 자원개발이 초래한 손실은 국민이 떠안아야 할 비용으로 돌아온다. 책임을 물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다. 시행착오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필요한 일이다. <한겨레>는 ‘부실 자원외교’에 대해 반드시 답해야 할 10명을 추렸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 그의 형, 총리, 장관, 자원 공기업 사장들이 바로 그들이다.
자원외교 ‘피라미드’의 맨 꼭대기엔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있다. 2008년 취임 뒤 자원외교를 핵심 국정 과제로 내걸었고, 4%대의 에너지 자주개발률을 임기 내 25%까지 끌어올린다는 계획을 짰다. 그의 뜻에 따라 국가의 재정·행정·인력 등이 해외자원개발 사업에 총동원됐다. 그 역시 13차례 해외 순방에 나서, 자원개발 관련 양해각서를 24건이나 체결했다. 이 가운데 18건이 성과 없이 종료됐다. 이 전 대통령은 자원외교의 총기획자이자 정치적 최종 책임자이지만, 지난해 말 국정조사 증인 출석 여부를 묻는 질문에는 “구름 같은 이야기”라고 답했다.
이상득 전 의원과 박영준 전 총리실 국무차장은 피라미드의 둘째 칸에 위치한다. 대통령의 친형이기도 한 이 전 의원은 2009년부터 대통령을 대신하는 ‘특사’ 자격으로, 중남미와 아프리카 등을 9차례 누볐다. ‘대통령도 어려워할 정도’로 실세였던 탓에 그의 옆에는 늘 공기업과 사기업 관계자들로 붐볐다. 이 전 의원은 자원외교를 “인생의 3번째 전환기”라 표현하는 등 소명처럼 받아들였지만, 그의 행보 뒤에는 ‘8000달러 촌지 의혹’(<한겨레> 1월19일치 3면)과 돈만 낭비한 채 성과가 없다는 비판이 따른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의 1등 공신이었던 박영준 전 국무차장은 ‘미스터 아프리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아프리카 사업에 집중했다. ‘총리실 실세’라는 평가에 걸맞게 ‘에너지협력외교 지원협의회’ 등 해외자원개발 사업 전반을 지휘한 것으로 보인다. 총리실은 전 부처를 아우를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장소였다. 2010년 그가 관여했던 카메룬 다이아몬드 개발권 사업에서 발생한 씨앤케이(CNK) 주가조작 사건은 이명박 정부 자원외교의 가장 치욕적인 상징이기도 했다.
MB 총지휘 아래국가재정·행정 책임자들 행동
공기업 사장들 나랏돈 날려 ‘자원외교 맞춤형 총리’로 영입된 한승수 전 총리 역시 정부 정책을 조율하고 조정하는 역할을 했다. 대통령 다음으로 높은 행정 수반으로서, 대통령이 가지 못하는 곳을 돌아다니며 자원외교를 폈다. 그는 총 4건의 양해각서를 맺었지만 3건이 성과 없이 종료됐다.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2009년부터 1년 남짓 해외자원개발 주무 부처인 지식경제부 장관을 지냈다. 그의 임기 동안 최소 21개의 해외자원개발 사업이 진행됐고 13조원가량의 돈이 투자됐다. 하지만 그는 “(자원외교는) 국무총리실이 주도했다”며 ‘발뺌’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실세 부총리이기도 해서, 현 정부의 자원외교에 대한 평가를 어렵게 만든다는 지적이 나온다. 피라미드의 아랫부분에는 석유·가스·광물 등 자원 관련 공기업이 존재한다. 이들 기업에는 이명박 전 대통령과 인연이 있는 실세 사장들이 배치됐다. 공사 사장들은 주로 산업부 출신 관료들이 ‘낙하산’으로 가는 게 관례였지만 이들은 좀 더 특별했다. 대우인터내셔널 출신인 강영원 전 석유공사 사장은 소망교회를 다녔다. 그는 석유공사 대형화 전략에 따라, 페루의 사비아페루사와 캐나다 하베스트사 인수 등 창사 이래 이뤄진 대부분의 대형 인수·투자 사업들을 진두지휘했다. 그러나 하베스트 사업에서만 이미 1조원 넘는 손실이 발생했다. 강 전 사장에게 책임을 묻는 작업은 이미 참여연대와 감사원 등이 검찰 고발 등을 통해 진행하고 있다. 2008~2009년 석유공사 부사장을 지낸 서문규 현 석유공사 사장은 사비아페루 인수를 주도하는 등 부실 투자의 또 다른 축이다. 고려대 출신에 대통령직 인수위원이었던 김신종 전 광물공사 사장은 이 전 대통령과 임기를 같이하며 볼레오 동광과 암바토비 니켈광 사업 등에 수조원을 투자했다. 이 과정에서 민간 기업에 수백억원의 특혜성 혜택을 줘, 배임 의혹도 받고 있다. 현대그룹 출신인 주강수 전 가스공사 사장은 캐나다 혼리버, 웨스트컷뱅크, 우미악 가스전 투자에 핵심적인 구실을 했다. 지금까지 세곳에 1조366억원(1월 현재)이 들어갔지만, 6050억원이 넘는 손실이 확정되는 등 공사에 커다란 손실을 끼쳤다. 가스공사의 첫 내부 사장 승진자인 장석효 전 가스공사 사장은 주강수 전 사장과 함께 이들 부실 사업 투자를 함께 했다. 그는 통영예선 대표로 있던 2012년 사적 용도로 법인카드를 쓴 혐의 등이 드러나 지난 20일 사장에서 물러났다. 최현준 류이근 임인택 김정필 기자 haojune@hani.co.kr